나는 이때가 좋다. 모내기를 하기위해 물을 잡아 놓은 너른 들녘을 보노라면 나 자신이 그 만큼 넉넉해진다. 또 그런 하루 중에서도 해질녘이면 황홀경이다.
모를 맞이한 무논이 석양의 노을빛까지 담아내니 그야말로 완전한 세상이다.
우리가 만개한 봄꽃들을 보며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들녘은 우리의 일상을 위해 소리 없이 가을까지의 긴 여정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잠깐이다. 해는 어김없이 지고 어둠이 깔린다. 지는 해를 길게 보니 마침 전주 쪽이다. 어디 전주로 간 것이 해 뿐일까. 사실 전라북도 안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전주로 간다. 전주는 도청소재지이기도하지만 사회 각 분야의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는 서울을 향해 상대적 빈곤을 이야기한다. 소외되었다며 분개하면서 결국 배려를 호소하는 대상은 전주 뿐이다. 서울 집중의 상황을 타박하면서도 다시 전주 집중화를 꾀하는 것은 자신이 비판해온 권위와 권력으로 군림하고자하는 자기모순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전라북도의 근간인 도내 시군의 주 산업인 농업을 부끄러워한다. 농촌인 것을, 농도(農道)인 것을 불편해하고 농업이 전주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고 불평한다.
화려했던 전주의 문화축제가 끝이 났다. 전주의 문화축제가 열리는 기간은 농부들이 들에서 허리 굽혀 일하고 있는 때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전주문화는 이 노동 위에 형성되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 문화축제는 오로지 전주를 위한 축제일 뿐 이다. 이같은 환경은 전라북도의 맏형격인 전주의 도리가 아니다.
전주는 홀로 이루어진 도시가 아니다. 전주는 스스로 전주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전주문화가 주변문화의 유입과 재정립과정을 통해 형성 되었듯이 혼자 갈 수 없는 것이다. 주변 지역문화의 오랜 전통을 파악하지 않고 당장의 전주만의 문화로 나아갈 때 그 한계는 분명해진다. 더구나 다른 시군의 삶이 농업의 위기로 총체적으로 무너져가고 있는 것을 외면한다면 전주문화는 그 바탕을 잃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근래 열정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전통문화중심도시’만들기의 과정만해도 지나치게 전주만을 위한, 전주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지는 해를 따라가 보면 해가 전주에서는 계란 노른자위 형상을 하고 있음을 자주 보게 된다. 계란이 노른자만으로 온전할 수 없듯이 전주 또한 전주만으로 이름값을 하기 어렵다. 전주의 존재는 이제 서울과 전주의 구도 속에서만 찾아서는 안된다. 전주와 기타 시군들과의 수평적 연계와 연대를 구축할때 비로소 전주는 가장 전주다워질 수 있다. 함께 사는 아름다운 도시가 되는 일은 전주의 선택이다. 전주는 이제 그 고민을 해야 한다.
/이현배(옹기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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