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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여암 신경준 학문적 유산 활용 계승을

국립전주박물관은 고령 신씨 귀래정공파 문중에서 기탁한 귀중한 문화유산을 보관 중이다. 조선왕실의 기록문화를 조명하는 테마전 “기록의 보고를 열다”를 기획하면서 오랜만에 기탁 유물에 포함된 지도를 전시했다. 지도란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인 ‘땅’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지금 전시되고 있는 것은 <북방강역도>이다. 민족의 영산, 한반도 백두대간의 종주인 백두산의 웅혼하고 장쾌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북방강역도>는 <강화도이북해역도>와 함께 조선후기 학자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제작했다고 전한다. 두 지도를 비롯하여 문중에서 보전된 신경준의 저술들은 1934년 정인보(鄭寅普, 1893-1950)가 순창의 여암고택을 방문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정인보는 호남을 주유 중이었는데, 1934년 7월 31일부터 9월 29일까지 <남유기신(南遊寄信)>이라는 제목으로 총 43편의 여행기를 동아일보에 연재했다. 25~28편에 해당하는 <신여암고택방문기(申旅庵古宅訪問記)1~4>에는 이 자료들을 처음 마주한 정인보의 감격이 생생하다. 정인보는 이어 <남유기신> 29편에서 여암고택이 자리한 순창 남산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남산대 산 위 정자가 옛날 귀래정 자리인데, 고적(古蹟)에 승경을 겸한 곳으로 고송(古松) 사이로 보이는 탁 트인 경치가 제일이라고 한 것이다. 지금도 순창 귀래정은 여행객의 발길과 눈길을 사로잡는 핫플이다. 귀래정은 신경준의 10대조인 신말주(申末舟, 1429-1503)가 낙향하여 지은 정자다. 순창은 신말주의 부인 설씨(薛氏)의 고향으로, 귀래정공파 기탁품 중에는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던 설씨부인이 사찰 건립을 위해 만든 <권선문첩(勸善文帖)>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낙향한 신말주의 행적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십로계(十老契) 활동이다. 70세 이상 열명의 노인 모임을 만들고 소박한 음식과 술, 시를 통해 서로 노닐며 우아한 풍류를 즐겼던 것이다. 신말주는 십로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고 모임에서 지은 각자의 시를 써 넣은 <십로계축(十老契軸)>을 만들어 이를 기념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십로계축>은 없어지고, 임진왜란 후 중건된 귀래정과 남산대 고택을 다시 경영한 것은 신경준의 조부 대였다. 신경준은 이 곳에서 태어났고, 늦은 나이에 관직에 올라 고향을 떠났다가 낙향하여 이 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그는 잃어버린 <십로계축>의 이본을 우연찮게 얻어 신말주의 십로계 행적을 소환하고 귀래정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현재 전하는 <십로계축>의 이본 한 점은 귀래정공파 문중 기탁품에, 또 한 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되어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2023년 특별전에 이 두 점을 전시한 바 있다. 여암고택 방문 이후 정인보의 주도로 <여암전서(旅菴全書)>가 간행되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이 조명되고 실학자로서의 위상이 정립되었다. 다만 지리학, 음운학, 역사학 등 학문의 갈래에 따라 따로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점은 아쉽다. 지역에서, 지역만의 고유한 시각으로 신경준의 위상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귀래정’이라는 지역의 공간을 중심으로, 가전 유물과 함께 <십로계축> 등 박물관 소장 자료를 종합적으로 연구, 소개하고 그의 방대한 학문적 유산을 지역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확장 계승할 것인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지역학은 이렇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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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6.15 19:19

[문화마주보기] 질문의 시대, 역설로 망하는 중

고대 아테네에서는 질문을 많이 하면 사회를 망친다고 믿었다. 사회가 그 정도로 단순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질문을 많이 해대는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고 법정에 끌려갔다. 그의 질문 때문에 젊은이들이 본질을 생각하기 시작한 거라 본 것이다. 젊은이들이 주로 기존 권위를 의심하고, 당연한 것을 물었다. 툭하면 ‘왜?’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그러니, 기득권은 불편해졌고 위험하다고까지 여겼다.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바로 질문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크라테스에게 독약을 먹였다. 아주 간단하고 효율적인 통제 방식이었다. 그로부터 수천 년이 흘렀다. 이제 이 시대에 이르러서는 질문을 억압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권장한다. AI가 생겨난 뒤 질문이 제일 중요하다고 까지 말한다. 기계에게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지며 지식을 과소비한다. 검색창에 넣고 버튼을 살짝 누르면, 3초 안에 답을 토해낸다. 이 얼마나 편리한 문명인가. 질문 차단용 재판이나 독약은 어느 시대 무슨 이야기인지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질문은 줄지 않았는데, 질문하는 인간이 사라졌다. 예전 소크라테스 시대에는 어쩌다 묻는 질문이 위험해서 제거했지만, 지금은 질문과 대답이 쉽고 편해져서 별 충격이나 의미가 없게 된 때문이다. 질문은 넘치는데, 질문하는 이가 없는 이유는 정말로 답이 널리 널려있기 때문인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정확히는 답처럼 보이는 것이 많기 널려있기 때문이다. 깊이 없는 답, 맥락 없는 정보, 생각 없는 문장들. 우리는 그것을 ‘지식’이라 부르며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복사해 붙여놓은 명품 글(?) 들이 클릭해주기를 줄서서 기다린다. 소크라테스가 이 질문과 답들을 마구마구 퍼나른다면 어떤 죄명으로 재판을 받을까. 그런데 생각해보자. 시대는 바뀌었지만 본질은 결국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에는 여전히 제대로 된 질문이 필요한데, 질문에 해당되는 이들은 질문을 두려워한다. 다만 AI 등장으로 그 방식이 편리해졌을 뿐이다. 예전에는 질문자를 간단히 제거했고, 지금은 질문 자체를 가볍게 여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가 넘치니 꽤 달콤씁쓸하다. 오늘도 우리는 묻는다. 하지만 정말 질문을 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정해진 답을 불러내는 걸까. 아니면 ‘좋아요 어쩌고 하는 3형제’를 애태우며 기다리는 걸까.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죽은 소크라테스를 다시 죽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훨씬 조용하고, 더 깔끔한 방식으로. 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에서는 질문다운 질문, 질문에 대답하는 기회조차 보기 어려웠다. 질문의 시대 가치를 모독하고, 질문 없이 흠집 내기에만 눈을 휘번덕거리는 정상배들이 날뛰었다. 콩잎이나 먹고 사는 유권자들은 모처럼 목에 힘 좀 줄 이벤트가 많은 기회였지만, 속만 뒤집힌 채 끝났다. 이제, 우리 앞에는 곽식자가 육식자를 걱정하는 일들이 줄줄이 등장할 것이다. 그러면서 세상은 더 어지럽게 바뀌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해도 될까모르겠다. 누구 말마따나,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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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6.08 18:24

[문화마주보기]사람과 서사, 문화를 품은 로컬창업의 가치

지방 소멸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우리는 습관처럼 과거의 정답을 찾곤 한다. ‘수천억 원을 들여 대규모 산업단지를 짓고, 굴지의 대기업을 유치하면 다시 경제가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이다. 하지만, 이제 지역을 살리는 힘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지역 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단단하게 뿌리내리는 ‘사람’에게서 찾아야 한다. 서울의 ‘MBC 시사교양국 PD’는 어느날 연고도 없는 김제에 내려와 폐가를 고치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바라온 로컬은 인프라가 부족하고 낡은 ‘결핍’의 공간이지만, 기획자였던 그의 눈에 비친 김제는 자본으로도 살 수 없는 ‘여백’과 ‘독보적인 오리지널리티’를 지닌 곳이었다. 탁 트인 너른 마당, 지평선이 보이는 풍경, 100년의 이야기가 담긴 촌집.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버틸 수 있는 도시를 떠나, 그는 마음껏 스케치할 수 있는 로컬이라는 거대한 캔버스를 발견하고, 기록했다. 그 진정성은 28만의 구독자를 생기게 했다. 한 사람의 진실한 서사가 공간에 뿌리내리자, 놀라운 화학 작용이 일어났다. 빈집을 개조한 ‘오느른 오피스’와 논 한가운데 ‘오느른 책밭’은 전국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강력한 앵커 스토어가 되었다. 이 매력적인 거점이 생겨나자, 청년 창업가들이 모여들었다. 자수 공방, 베이커리, 로컬 와인숍 등 각자의 색깔을 가진 스몰 브랜드들이 낡은 거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거대 자본이 억지로 조성한 상권이 아니라, 결이 맞는 로컬창업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구축해 낸 것이다. 개인의 치유 기록으로 시작된 그의 시도는 이제 본격적인 로컬 비즈니스로 다시 출발선에 섰다. 2026년 청년마을 ‘논논’ 을 통해 마을 방송국을 세우고, 더 많은 청년들이 지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다음 스텝을 밟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 겪은 것 이상의 현실적인 벽과 수많은 고난이 있을 것이다. 자본의 한계, 인력 확보의 어려움, 지역 사회와의 끊임없는 조율 등 넘어야 할 산이 숱하게 많다. 하지만 큰 자본이나 기업의 유치라는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는 더 이상 지역의 소멸을 막을 수 없다. ‘사람’의 체온이 담긴 진실한 삶과 공간이 결합할 때 비로소 지역이 변화할 수 있음을, 우리는 이 기업의 서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역가치를 내재한 지역성과 기업성, 가치의 확장성은 혼자의 힘으로는 너무 어렵다. 이때 필요한 것이 나보다 한 단계 위의 기업가들과 생태계 조성자들인 다양한 투자사, 마케터, 기획자, 기관 등과의 다양한 밀도 있는 만남이다. 장기적 생태계에 대한 선배들의 헌신 속에서 만남은 기회를 만들고, 기회는 성장과 확장의 계기가 되며, 서로를 이끌어주는 힘이 된다. 더 많은 창업가들이 전북에서 지역의 이야기와 자원으로 안심하고 다양한 실험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정책은 한발 앞서야 한다. 기존 산업의 빠른 성장과 대규모 확장의 전제 속에서 지금 그 성과는 과연 어디에 어떻게 축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 로컬의 창업생태계를 성장시키기 위한 집단지능을 키우고, 매력적인 전북의 자원을 활용할 인재와 기업가를 키우고, 유입하여, 성장과 협력의 기반을 만들고 장기적 스케일업을 지원하는 사업과 펀드를 든든하게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산업 정책으로 ‘로컬 창업’을 한 축으로 확실히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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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6.01 18:40

[문화마주보기] 기후 위기의 시대, 예술의 존재방식

기후 위기는 흔히 환경 문제로 이해된다. 그러나 오늘의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날씨나 탄소 배출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과 에너지, 자원과 식량, 국경과 이주가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현실이다. 지금 우리는 인간의 활동이 생물의 멸종을 가속화하는 ‘인류세’ 시대, 즉 문제들이 서로 연결되고 증폭되는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긴장은 미술계에서도 드러난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 대표적 사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가자 전쟁 이후의 갈등 속에서 일부 국제 미술계 인사들은 특정 국가관의 운영과 심사 과정에 문제를 제기했고, 사퇴와 항의가 이어졌다. 작품의 미적 차원을 넘어 예술의 정치적 책임이 논쟁의 중심에 놓인 것이다. 이는 단지 국제정세의 반영만은 아니다. 기후 위기처럼 자원과 영토, 에너지 패권, 이동과 생존의 문제와 깊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아이스 워치(Ice Watch)》는 북극의 빙하를 도시로 옮겨와 기후 위기를 몸으로 체감하게 했다. 관람자는 손끝에서 녹아내리는 얼음을 통해 위기를 데이터가 아닌 감각으로 경험한다. 그러나 이 작업은 빙하 운송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로 비판받기도 했다. 기후 위기를 경고하기 위해 또 다른 탄소를 배출하는 역설. 이는 한 작품의 모순을 넘어 인류세 시대 예술이 직면한 딜레마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최근 리움미술관에서 소개된 티노 세갈(Tino Sehgal)의 작업에 주목해보자. 세갈은 설치물이나 영상, 오브제도 없이 사람의 몸과 목소리, 움직임만으로 작품을 구성한다. 소비 가능한 물질 대신 관계와 시간의 경험만이 남는다. 그의 작업은 예술이 반드시 더 많은 생산과 이동을 통해 존재해야 하는가를 되묻는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 미술은 무엇을 더 만들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덜 생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다. 기후 위기는 또한 이주의 문제로 연결된다. 가뭄과 해수면 상승, 전쟁과 식량 위기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을 삶의 터전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기후 난민’은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이다. 기후 난민 역시 정치와 생태, 생존의 조건이 교차한 결과이다. 결국 기후 위기는 인간의 삶과 공동체,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까지 뒤흔드는 문제다. 전북의 현실도 이 거대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달라진 계절의 리듬, 불안정한 강우, 농업 환경의 변화는 이미 지역의 삶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익숙한 일상의 배경 정도로 받아들이곤 한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해답은 무엇을 더 생산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덜 만들고 어떻게 그리고 다르게 존재할 것인가에 있을지 모른다. 더 큰 설치와 더 많은 이동, 더 많은 소비가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 온 관계와 책임을 감각하게 하는 일 말이다. 전북도립미술관을 중심으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과 전북 도내 공립미술관들이 많은 것을 양산하는 전시 관행을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덜 만들어내면서도 좋은 전시를 만들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댄 적이 있다. 물론 이러한 반성과 실천만으로 예술이 세계를 구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생물이 왜 멸종의 위기에 놓이게 될 것인지, 어떤 삶들이 이미 위기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지를 외면하지 못하게 만들 수는 있다. 그것이 인류세 시대 예술의 윤리이며, 오늘의 미술이 다시 질문해야 할 미술의 존재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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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5.25 18:49

[문화마주보기] 민화의 유쾌한 감성, 전시 콘텐츠로 개발을

2025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를 계기로 우리 민화 호작도(虎鵲圖)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최신 트렌드인 K-팝과 한국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주된 이유겠지만, 호작도가 품고 있는 조형적 매력이 감각과 마음을 건드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미술이란 그런 것이다. 전혀 모르는 낯선 작품이 문득 마음에 들어오는 경험,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전통미술을 소재로 한 다양한 문화상품 가운데 호작도 굿즈는 유독 친근하게 다가온다. 민화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조형과 감성이 일상의 맛깔난 양념 한 스푼이 된다. 민화 자체가 일상의 살림살이와 아주 가까운 장르이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 부쩍 늘어난 민화 그리기 강좌의 인기 또한 민화가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갤러리나 아트페어에서 민화의 모티프를 원용한 현대 작품을 만날 때는 더 반갑다. 알게 모르게 우리 삶 속에 각인된 문화 DNA가 작용하는 것이리라. 민화는 19세기 중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왕실이나 상류층의 고급 수요와는 달리 민간의 수요에 맞춰 성장하였다. 심오한 의미를 함축한 우의적(寓意的) 표현, 개인이나 한정된 수요자를 위한 맞춤 제작,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제작 공정 등은 민화의 몫이 아니다. 기복(祈福)과 액막이의 원초적인 상징, 강렬한 조형, 기성 이미지의 반복적 다량 생산, 쉽게 구매하고 빠르게 소비되는 유통 구조 등이 민화를 만들었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민화는 상업 기반이 갖추어진 도시 공간에서 형성되고 향유되는 대중문화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다. 전주는 전북의 중심지로서 오랫동안 역사를 이어온 만큼, 전통에서 근대도시로 이행의 자취가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다. 그 자취는 민화의 시대와 겹쳐진다. 이 시기에 꽃 피어난 완판본 인쇄물, 판소리 등 전통 대중문화는 민화와 상통한다. 민화가 전주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지역의 중요한 문화 자산을 돋보이게 만들고 공통의 시대성을 드러내는 시각미술 아이템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지역 관련 민화 자료도 있다. 1837년에 태어나 전주에서 활동했다고 알려진 민화 화가 장산파(長山波)의 존재는 전라도 지역 민화의 양상과 특징을 파악하는 단서이다. 민화는 작가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분야이기에 특히 중요하다. 전북 임실에서 제작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간 낙화(烙畫) 역시 지역 민화의 양상을 알려준다. 1세대 민화 수집가이자 연구자인 소호(小好) 김철순(金哲淳, 1931-2004) 선생의 민화 컬렉션은 전주역사박물관에 기증되어 소장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전주에서 민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근거와 자산은 있지만, 민화에 대한 학술적 관심과 접근이 여전히 더디고, 실물 작품의 조사연구 성과 부족, 개념 정립의 과제 등으로 인해 활용의 폭이 넓지 않았던 아쉬움 또한 있다. 다행히 활용과 관련하여 민화는 확장의 여지가 크다는 장점이 있다. 공예품이나 복식, 장신구 등의 문양, 자수, 건축 등 의식주의 여러 세부 영역에서 민화와 공통된 모티프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도시문화와 대중문화의 한 갈래로, 생활미술의 영역에서, 한국적인 독특한 조형과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유쾌한 감성을 전시 콘텐츠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민화 작품에 대한 현황 파악과 조사가 시급하다. 국립전주박물관을 비롯하여, 지역 공사립, 대학 박물관의 역할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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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5.18 19:04

[문화마주보기] LA 은대구 조림

LA 한인 지역에 가면 서울에 없는 은대구 조림을 꼭 먹어보라는 말을 따라서 은대구탕과 조림을 맛보았다. 한입 떠 넣으면서 단순한 요리를 넘어서 하나의 문화 실험을 생각하게 된다. 북태평양 깊은 바다에서 건져 올린 은대구는 한식 간장조림의 깊이를 거쳐, LA라는 다문화 도시의 감각 속에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 시원한 탕이나 조림 맛은 문화적 변용과 적응의 산물이다. LA의 은대구 조림은 이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이민자의 노곤함과 향수로 졸여낸 은대구는 갈치의 대체이자 확장으로 시작되었음직 하다. 오늘날 K컬처의 지속적 확장은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 날개를 펼쳐야 한다. 정체성의 보존과 현지화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은대구 조림처럼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끊임없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변형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지키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 움직이게 하느냐이다. 문화는 문류(文流)다. 음악은 특정한 언어와 감정의 결을 지니지만,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보편적 울림을 가진다. 한국적 선율과 정서는 각 지역의 리듬과 만나며 변주될 때, 비로소 세계인의 감각 속에 스며든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원형의 고수’가 아니라 ‘변형의 역량’이다. 이는 일방적 문화수출이 아닌, 문화 본연의 유기적 생존 전략이다. K-컬쳐 역시 이제 한 방향으로 흘려보내기 보다 확산을 지켜볼 때다. BTS가 보여준 글로벌 저력을 바탕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레게톤과의 리듬적 혼종을, 동남아에서는 현지 정서와의 감성적 융합으로 새로운 문화적 하이브리드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한국 음악성의 본질을 희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본질을 더 풍부하고 보편적인 것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이다. 우리 음악이 세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단순한 수출 모델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각 지역의 리듬, 언어, 감정 구조와 접속하며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문화로 기능을 한다. 이는 ‘현지화’라는 단어로 환원되기에는 부족하다. 오히려 그것은 서로 다른 문화가 긴장과 공명을 반복하며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가는 공진화의 과정이다. 문화는 살아 있는 유기체다. 본토의 뿌리를 견고히 하면서도 현지의 기후와 감수성에 창조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고사한다.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문화적 공진화’다. K-컬처가 현지 문화를 받아들이고 재해석하면, 현지 문화 또한 K-컬처를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다. 이는 일방적 전파가 아닌, 서로를 고양시키는 상호 창조의 장이다. 그러나 혼종화가 지나치면 정체성 상실로 이어진다. 한편, 소극적 적응에 머문다면 시장의 한계로 이어질 수 있다. 핵심은 정교한 균형 감각이다. 한국성의 핵심 가치에 진솔한 감정, 정교한 퍼포먼스, 강렬한 스토리텔링을 유지하면서도 현지 청중의 심미적·문화적 코드를 존중하고 승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K-컬처가 글로벌 문화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으려면, LA 은대구 조림이 보여준 그 고급진 맛내기의 지혜가 절실하다. 한국 음악이 세계 곳곳에서 ‘집밥처럼’ 깊이 스며드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의 미래는 이동과 접촉 속에서 열린다. 본토와 글로벌은 서로를 확장시키는 관계다. 은대구 조림 한 접시에 스며든 그 깊은 맛처럼, K컬처 역시 세계의 다양한 감각과 만나며 더 넓은 생태계로 진화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문화 확장의 길이며, 공진화 시대의 진정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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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5.11 18:50

[문화마주보기] 뇌 썩음의 시대, 인류의 ‘사유 근육’을 키우자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2024년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을 선정했다. 소셜 미디어의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와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파편화된 정보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인지 능력이 저하되고, 문해력이 고갈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도파민에 중독되어 사유의 깊이를 잃어가는 현대인의 정신적 위기를 날카롭게 지적한 말이다. 이제는 단순한 디지털 휴식을 넘어 인간으로써 인지적 재건의 쉼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해답의 실마리는 수백년간 지식의 심장이자 출판의 성지였던 이곳, 전북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전북은 예로부터 한반도 지식 유통의 핵심 기지였다. 조선 시대 서울의 ‘경판본’에 맞서, 대중 문학의 꽃을 피웠던 전주의 ‘완판본’은 물론, 정읍 역시 독자적인 판본을 찍어내던 ‘태인본’의 중심지였다. 특히 태인은 호남 지역 서적 출판의 중추적 역할을 하며, 영남의 안동과 더불어, 영호남 출판 문화를 양분했던 곳이다. 기록하고 공유하며, 사유를 확장해 온 전북의 역사는 오늘날 디지털 황무지 속에서 ‘깊이 읽기’의 가치를 복원할 가장 강력한 토양이 된다. 전북의 출판 자산은 박제된 역사가 아니다. 전주시는 최근 조선 시대 서적 중개인이였던 ‘책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책쾌’는 단순히 책을 파는 장사꾼이 아니었다. 독자의 지적 수준과 취향, 심지어 고민까지 파악해 가장 필요한 책을 골라 배달하던 ‘지식의 큐레이터’였다. AI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편향을 강화해 사고를 가두는 ‘필터 버블’을 만든다면, 책쾌는 독자의 성장을 고민하며, 낯설지만, 삶에 꼭 필요한 문장을 건넨다. 이들의 느린 호흡과 정교한 추천은 스마트폰에 지친 현대인의 뇌를 치유하는 처방전이다. 현재 전주에는 대한민국 출판 정책의 컨트롤 타워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자리 잡고 있어, 국가 출판 행정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전주 곳곳의 도서관과, 로컬 청년 서점지기, 고창의 서점마을을 운영하는 사람들로 새로운 활력을 더한다. 청년들이 책을 매개로 지역에 정착하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이 실험은, 책 읽기가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뇌 썩음 시대를 극복할 가장 트렌디한 저항임을 보여준다. 전북은 단순한 책의 도시를 넘어, 이 시대 사유를 구원할 ‘리딩 랜드마크’로 자리 잡아가야 한다. 완판본과 태인본의 역사적 자산, 정책 기관 및 고창 서점 마을, 전주 책쾌가 보여주는 현대적 감각은 전북을 하나의 거대한 ‘열린 도서관’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전주의 고즈넉한 도서관에서, 정읍의 유서 깊은 서원 곁에서, 고창의 푸른 서점 마을에서 인류는 비로소 무분별한 디지털의 노예 상태를 벗어나 ‘인간다운 사유’를 회복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전북의 로컬 서사가 담긴 설화나 지역문학, 마을 기록 등의 지식 재산권을 활용한 출판 콘텐츠 활성화, 그리고 이를 위한 로컬 출판 창업을 위한 펀딩, 인재육성, 디지털 출판 등의 지역출판을 위한 새로운 혁신모델을 선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주 도서관여행을 전북으로 확장하여, 전주 도서관, 남원의 고전문학, 정읍의 태인 방각본, 고창의 책 마을과 서점마을 등을 연계한 전북 책 여행과 북 스테이를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보자. 지식의 뿌리가 깊은 땅 전북에서, 우리는 다시 깊게 읽고, 넓게 생각하는 법을 배울 준비가 되었다. 뇌가 썩어가는 시대, 전북의 문장들이 인류의 정신을 깨우는 첫 번째 섬광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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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4.27 17:41

[문화마주보기] 춘향다움, 오늘의 ‘춘향’을 상상하는 일

매년 봄, 전북 남원에는 춘향제가 어김없이 찾아온다. 올해도 다음 주 30일부터 일주일간 이어진다. 1931년 춘향을 기리는 제향에서 출발한 이 축제는 해방 이후 공연과 퍼레이드가 더해지고, 1970~80년대에는 대중참여 프로그램으로 확장되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축제로 자리 잡았다. 춘향이 실존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엇갈린다. 실화에 기반한 인물로 보기도 하고, 조선 후기 고전소설 춘향전의 허구적 주인공으로 보기도 한다. 다만 제향의 대상이 되어온 사실은, 춘향이 이야기 속 인물을 넘어 상징적 존재로 받아들여져 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춘향제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남원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춘향을 만나고 있는가. 우리에게 익숙한 춘향은 정절과 순애의 상징일까. 사랑을 향해 변함없이 기다리는 마음, 권력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절개는 오랫동안 미덕으로 칭송받아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에 머무르는 순간, 춘향은 더 이상 현재와 호흡하지 못하는 인물로 굳어진다.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묻는다면, 춘향은 과연 ‘기다리는 여성’이었을까. 오히려 춘향은 능동적인 존재였다. 스스로 사랑을 택했고, 그 선택에 끝까지 책임을 졌다. 변학도의 강요와 폭력 앞에서도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며 타협하지 않았다. 당시 여성이라는 조건과 신분적 제약이라는 이중의 한계 속에서도 권력에 맞섰다는 점에서, 춘향은 순응의 인물이 아니라 질서에 균열을 내는 존재였다. 우리는 여기서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말한 ‘신화’ 개념을 떠올린다. 신화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사회가 의미를 부여하며 만들어내는 일종의 기호다. 바르트가 신화를 언급한 것은 고대 이야기가 대중문화 속에서 지배이데올로기로 자연스럽게 포장되고 소비되는 과정을 비판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논의는, 이야기와 상징이 시대와 맥락에 따라 새롭게 의미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여준다. 춘향 역시 실존 여부를 넘어 시대마다 다른 가치가 덧입혀진 상징으로 읽힌다. 한때는 정절의 표상이었고, 오늘날에는 선택과 저항의 주체로 재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오늘날 ‘춘향다움’이란 더 이상 예쁜 외모나 순응의 여성상이 아니다. 이는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 지닌 의미를 오늘의 언어로 확장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춘향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분명해진다. 바르트가 지적했듯 신화가 특정 가치와 질서를 고착시키는 장치로 작동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 춘향을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불러내는 일, 곧 기존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입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춘향은 도시의 정체성과 연결되고 현재의 삶과 맞닿는 유의미한 존재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축제 역시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고 공유할 것인가를 묻는 담론의 장이 될 수 있다. 이 봄, 제96회 춘향제를 맞아 오늘의 춘향을 상상하는 일, 그리고 그 상상이 우리의 현재와 만나는 순간, 춘향은 다시 태어난다. 이를테면 오늘의 춘향은 세상을 바라보는 식견과 인문학적 깊이, 말솜씨와 예술적 ‘끼’를 겸비한 인물이면 어떤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 침묵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로 세계와 관계 맺는 사람. 그 새로운 ‘춘향다움’을 발견할 때, 춘향제는 전통을 넘어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미래로 세계로 이어지는 문화로 확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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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4.20 17:19

[문화마주보기] 석전 황욱 선생의 서예

국립전주박물관에는 서예가 석전(石田) 황욱(黃旭, 1898-1993) 선생의 전시실이 있다. 박물관에 기증하신 선생의 유품을 전시한다. 전통 문화유산의 한 갈래로 ‘서예’라는 분야가 엄연하고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데 소홀히 할 수 없는 역사적 성취가 시대별로 있건만, 지필묵과 한문에서 멀어진 관람객들이 옛 글씨의 멋과 맛을 누리는 것은 쉽지 않다. 이해에 앞서 무언가 보이고 느껴져야 알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겠는가 싶은데, 서예는 유난히 낯설다. 눈앞에 벽이 있는 것 같다. 한데, 황욱 선생의 글씨는 좀 다르다. 석전 전시실은 어린이박물관과 함께 있어 가족 관람객의 발길이 가끔 닿는다. 젊은 부모와 아이가 선생의 글씨 앞으로 자연스럽게 걸어가 ‘신기하게’ 작품을 보며 글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대부분 글씨의 형태를 이야기하는데, 그만큼 개성 있는 글씨인 건가 싶어 눈여겨보곤 한다. 황욱 선생의 글씨는 ‘악필(握筆)’이라고 부르는, 흔하지 않은 붓 잡는 법에서 완성되었다. 네 손가락으로 붓대를 움켜쥐고 엄지로 위를 꾹 눌러 힘을 주고 팔을 움직여서 글씨를 쓴다. 힘 있는 서체를 위해 일부러 이렇게 쓴다고도 하나, 석전 선생의 악필법은 환갑 넘어 얻은 수전증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전북 고창에서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의 7세손으로 태어난 선생은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고 서예를 익혔다. 일찍이 뛰어난 필력을 인정받기도 했으나, 손떨림으로 점차 글씨 쓰는 것이 어려워지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악필법(握筆法)을 시도했다. 68세 무렵이었는데, 글씨와 시, 음률로 자오(自娛)했던 선생의 삶이 ‘서예가’의 일로(一路)에 들어선 것도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오른손으로 악필법을 구사했으나, 이조차 어려워지자 87세 무렵부터는 왼손 악필법으로 마침내 자신의 서예 세계를 일구었다. 선생의 글씨는 수전증이 오기 전은 물론, 오른손 악필의 시기가 다르고 왼손 악필의 시기가 또 다르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붓 잡는 힘이 약해져 가는 노년의 세월, 매 순간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도전하고 도전했던 놀라운 시간이 글씨에 그대로 나타난다. ‘여든 살 밭 가는 늙은이 석전[八十畊叟 石田]’이라고 낙관을 쓴 팔십 대의 작품이 여러 점 있다. 수십 년 악필법의 시간이야말로 석전 선생 그 자신이었음을 드러내는 낙관이다. 하루하루 묵묵히 밭을 갈며 수확에 이르는 고된 시간을 기어이 내것으로 만드는, 서예가로서의 오직 한 길이 거기에 있다. 서론(書論)에 의하면 붓을 움켜쥐는 악필은 힘이 있어서 강직함을 보여야 하는 글이나 큰 글씨 등에 강점이 있다고 한다. 전북의 명소 곳곳에는 선생의 글씨로 된 현판이 많다. 만년에도 현판 크기 그대로의 큰 글씨를 쓰셨기에, 몇 시간 동안 팔이 아프도록 먹을 갈아드렸다는 기증자 가족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적당한 크기로 쓴 글씨를 확대하는 요령을 용납하지 않은 선생의 기개 또한 악필의 오묘한 법을 체득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서예의 매체인 붓을 쥐는 손이 떨린다는 것, 그것도 육십 노년에 이르러 만난 벽 앞에서 시작한 선생의 길은 아흔이 넘은 나이에 이르러, 타고난 재능을 칭송받던 젊은 날의 글씨보다도 더 또렷한 자신만의 세계를 이루었다. 어린이박물관에 온 아이들의 눈에도 그것이 보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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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4.13 19:01

[문화마주보기] 트럼프와 장자

이번 이란전에서 트럼프의 강경노선은 미국경제의 실리 추구라는 틀로 해석할수있다. 중동 지역의 긴장을 관리함으로써 에너지 시장을 장악하고, 금융 패권과 지정학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계산이 깔려있다. 이런 접근은 현실주의적 국제정치 논리 속에서는 일정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단순히 이익을 얻기 위한 전략적 선택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장자』 <인간세>편 3장에는 명예와 실리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명예라는 것은 동서 구분 없이 예나 지금이나 워낙 유혹이 큰지라 현자나 성군들도 그것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옛날에 성군인 요임금은 총지(叢枝)지역과 서오(胥敖)지역을 정벌했고, 또 우임금은 유호(有扈)지역을 공격하여 정벌했다. 그 지역은 폐허가 되었고, 그 지역 군주들은 죽임을 당했다. 이처럼 그들이 전쟁을 멈추지 않고 계속했던 것(用兵不止)은 그 전쟁으로 얻게 되는 명예와 실리를 탐했기(求實無己) 때문이다. ,,,, 안회(顔回)여! 명예와 실리라는 것은 성인도 그 유혹을 이겨내기 어려운 법(名實者 聖人之所不能勝也)인데, 너에게 있어서야,,,” 여기서 “안회여!”를 “트럼프여!”로 바꿔놓고 한숨 돌려보자. 트럼프식 강경노선과 장자의 관점은 서로 충돌한다. 트럼프의 전략은 군사적 압박과 긴장을 하나의 정책 도구로 간주한다. 제재와 타격, 긴장 고조는 협상력을 높이고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산된다. 전쟁 혹은 준전쟁 상태를 관리 가능한 선택지로 보는 것이다. 현대 전쟁은 반드시 전면전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지속적인 긴장, 제한적 충돌, 제재와 압박이 결합 된 상태로 장기화 된다. 그러나 장자의 기준에서 보면 형태만 달라질 뿐, 개입이 개입을 낳고 긴장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구조는 동일하다. 한 번 개입한 국가는 계속해서 개입을 요구받고, 그 과정에서 점점 더 많은 자원을 동원하며 엮이게 된다. 결국, 이익의 크기가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이 문제다. 장자가 보기에 ‘좋은 질서’란 더 많은 것을 얻기보다, 스스로를 덜 소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패권을 유지하려는 경제적 실리는 지속적으로 개입하며 긴장을 일으키며 유지된다. 장자는 인간세에서, 억지로 세상을 교정하려 드는 안회를 걱정한다. 스스로를 해치는 결과에 이를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전쟁 또한 마찬가지다. 외부의 혼란을 바로잡겠다는 명분(전쟁을 끝내기 위한 마지막 전쟁이라는)을 끈으로 개입하지만, 그 과정에서 더 큰 반작용을 낳는다. 이는 단순한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흐름의 문제다. 세계는 유기적 연관으로 이뤄져있는데, 특정 행위자가 이를 힘으로 재단하려 할 때 전체의 균형은 오히려 깨진다. 국제사회는 상호의존 속에서 진화한다. 경제, 문화, 기술은 서로 얽히며 공진화해 왔다. 갈등조차도 협상으로 조정되어 왔다. 그런데 트럼프의 보안관식 접근은 이 흐름을 거스른다. 복잡한 관계망을 단순한 힘의 문제로 환원하고, 다원적 협력을 일방적 압박으로 대체한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성과처럼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신뢰를 소모시키고 협력기반을 약화시킨다. 그러니 장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하며(有爲), 조용히 흘러갈 것을 억지로 흔드는 꼴이다. 진정으로 능력있다면, 개입을 최소화하고, 스스로 조화를 만들어야 한다. 보안관 놀이에는 끊임없이 사건이 필요하다. 사건이 있어야 개입이 가능하고, 개입이 있어야 존재가 증명되기 때문이다. 계산이 지배하는 질서가 어떻게 공진화를 이끌어 내고, 지속발전가능하겠는가. 보안관을 자처하는 트럼프가 세우려는 질서는 과연 질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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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4.06 18:41

[문화마주보기] 전북 혁신가들이 그리는 로컬 스케일업의 새 지도

전주의 어느 이름 없는 작업실에서 디자이너의 손끝을 거친 한복과 전통 장신구가 방탄소년단의 몸짓을 타고 전 세계로 발신되고 있다. 고창의 붉은 황토 위에서 농민의 땀으로 맺힌 땅콩은 고소한 땅콩버터가 되어 국경 너머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무주의 청년들은 덕유산과 지장산, 대덕산의 굽이치는 능선을 전국 백패커들이 열망하는 성지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최근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는 전북만의 자산을 비즈니스로 확장시킬 중소벤처기업부 ‘로컬창업 기업 육성’ 전북권 주관기관으로 선정되며, 연간 50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하고, 그동안 자체적인 로컬 스케일업 사업이 없던 전북에 숨통을 트이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번 사업은 특히 전북만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 서사를 중심으로, 단순한 창업지원이 아닌, 로컬 기반 앵커 기업 육성을 통한 생태계 기반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북의 로컬창업 기업 육성사업은 전북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세 가지 키워드에 집중하여 ‘전북다움’을 비즈니스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첫째, 문화유산(K-Heritage)이다. 천년의 시간을 품은 전주와 익산 등의 역사와 전통문화, 장인정신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동시대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살아 숨 쉬게 하고자 한다. 둘째, 농업(Agriculture)이다, 한국 농생명의 심장부로서 고창, 익산, 김제 등의 생산 역량을 푸드테크와 결합하여,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혁신적 먹거리 비즈니스를 육성한다. 셋째, 자연(Nature)이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인 남원, 장수, 무주의 산세 등 천혜의 생태 자원을 활용, 지속 가능한 관광 콘텐츠와 아웃도어 비즈니스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한다. 전북은 이미 ‘로컬 창업의 성지’가 될 완벽한 토양을 갖추고 있다. 농촌진흥청과 한국식품연구원 등 국가급 연구기관이 집결해 있고, 국가식품클러스터와 스마트팜 혁신밸리 같은 강력한 생산 인프라가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구슬도 꿰어야 보배이듯, 뛰어난 연구 성과와 인프라가 창의적 비즈니스 현장으로 물 흐르듯 이어지지 못하는 연계의 부족은 여전한 숙제이다. 기술적 문턱을 낮추고, 연구기관의 지식 자산을 기업의 스케일업 동력으로 전환하는 연결의 미학이 절실하다. 전북을 진정한 로컬 벤처의 요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정책적 혁신 사다리 관점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바로, 창업가와 연구자의 언어를 이어줄 중간 지원조직의 전문화이다. 특화 액셀러레이터를 육성, 연계하여 해당 기술 이전과 사업화의 가교 역할을 강화해야 하고, 관련기관의 인프라와 기술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벽을 허물고, 공동 프로젝트를 활성화해야 한다. 그리고, 로컬 전용 펀드를 확대 조성하고, 전북의 관광, 농업, 브랜드에 집중 투자하는 민간 주도 펀드를 강화하여, 유망한 기업들이 자금의 가뭄 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로컬창업은 단순히 지역 내에서의 생존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역 고유의 로컬리티를 뿌리 삼아, 혁신적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하고, 국경을 넘나드는 확장성을 증명해 내는 과정이다. 전북만의 창의적 감각과 생산성을 동시에 품고, 흩어진 자원들을 하나로 꿰어내는 정책의 힘이 더해질 때, 전북의 문화, 농업, 자연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날 것이다. 도시와 농촌, 산촌의 모든 혁신가들이 주인공이 되는 전북의 새로운 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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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30 18:41

[문화마주보기] 디스토피아의 문턱에서, 인간의 윤리를 묻다

오늘날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술이 인간의 삶을 재편하고, 권력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세계를 조직하는 시대에 여전히 예술은 그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 아니,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예술이 가장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순간이 아닐까. 서울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민 간 윤진미 작가가 제1회 김병종미술상을 수상한 소식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 읽힌다. 윤진미는 오랜 시간 군사문화와 국가 권력, 감시 체계가 개인의 신체와 기억에 어떻게 각인되는지를 탐구해 온 작가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기술과 권력이 결합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통제의 구조를 추적한다. 특히 이미지와 영상, 퍼포먼스를 통해 구성되는 그의 작업 세계는 ‘안보’와 ‘질서’라는 이름 아래 작동하는 권력의 메커니즘을 가시화한다. 더 나아가 그는 기술과 권력이 결합할 때 형성되는 잠재된 디스토피아를 드러내며,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시스템을 낯설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비판을 넘어 관객 스스로 질문하도록 만드는 장치이다. 결국 그의 작업은 묻는다. 기술과 권력의 시대에 인간의 생명과 자유는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를. 이 질문은 예술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공지능 ‘클로드(Claude)’ 개발사인 앤트로픽(Anthropic)의 기술 사용 중단을 지시한 사건은 기술과 윤리의 문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미국방부가 최근 중동지역의 군사적 충돌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인공지능의 군사적 활용 확대를 요구했지만, 앤트로픽은 이를 거부했다. 그 배경에는 분명 윤리적 판단이 있었다. 오늘날 인공지능 기술은 국제사회의 질서를 재편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안전하고 책임 있는 인공지능’을 내세우며 기술의 활용 범위를 스스로 제한하려는 앤트로픽의 태도는 기술이 지향해야 할 하나의 기준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기업의 선택을 넘어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경계하는 윤리적 실천이다. 이처럼 기술이 스스로의 한계를 성찰할 때, 예술 역시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요구받는다. 윤진미의 작업이 시사하듯, 예술은 기술과 권력이 결합하는 지점을 비판적으로 드러내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감각을 일깨운다. 결국 인공지능 기업의 윤리적 선택과 동시대 미술의 비판적 실천은 서로 다른 영역에 놓여 있으면서도 동일한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고 있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지금 우리는 그 변화의 방향을 예술과 함께 성찰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올해 11월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서 열리는 제1회 김병종미술상 수상자 전시는 단순한 지역 행사를 넘어 사회적 질문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공론의 장이 될 것이다. 미술관은 동시대의 문제들을 사유하는 작가들과 함께 시대와 호흡하는 담론의 장을 형성한다. 지역과 세계를 잇는 교류, 새로운 매체 기반 전시의 확장, 동시대 이슈를 반영한 기획은 미술관이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한 중요한 시도다. 지역성과 세계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고유한 정체성을 구축하며 국제적 담론에 참여하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기술과 권력의 결합이 치밀하게 구조화돼 가는 오늘날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디스토피아의 문턱에 서 있는 지금, 이러한 질문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의 역할이자 미술관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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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23 18:01

[문화마주보기] 초상화, 시간을 넘어선 공감의 순간

1713년, 조선 19대 임금 숙종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렸다. 임진왜란 이후, 살아 있는 왕의 얼굴을 직접 보고 초상화를 그리는 일은 처음이었기에 그 진행 과정이 녹록하지는 않았겠지만 비교적 매끄럽게 이루어졌다. 25년 전인 1688년에 경기전의 태조어진을 모사하는 사업을 했었는데, 그 과정이 <태조어진모사도감의궤>(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상세히 기록된 덕분에 참고가 되었기 때문이다. 1688년 경기전의 태조어진은 1410년에 그려진 것이었다. 경기전에서 한양으로 이안(移安)하여 모사한 뒤 완성본을 영희전에 모셨다. 세월이 흘러 영희전 어진이 퇴색하자 1872년에 다시 모사 사업을 벌였는데, 예전에 원본이 되었던 경기전의 어진 또한 오래되어 낡았으므로 한 본을 더 모사하여 경기전에 봉안하고 구 어진은 세초(洗草)하여 묻었다. 이 때 새로 봉안된 초상화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태조어진〉(어진박물관)이다. 전신상으로 온전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왕의 초상화, 건국 초기에 제작되어 두 번의 모사를 통해 전승된 역사의 산물이며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이 초상화 덕분에 무려 600여 년 전의 인물인 태조의 실제 모습을 지금 우리가 마주한다. 〈태조어진〉의 이성계는 조선의 창업군주로서 화려하고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당하게 정면을 직시하는 모습은 한 치의 고민도, 흔들림도 없는 군왕의 카리스마를 내보이며, 그의 왕조가 영원토록 굳건할 것임을 웅변한다. 소매가 좁은 청색 포(袍)에 금실로 직조한 용보(龍補)는 고려의 영향이 남아 있는 복제(服制)이다. 반복적인 무늬와 색채가 돋보이는 채전(彩氈), 금빛 용을 그려 넣은 어탑(御榻) 등은 정치하고 세련된 화가의 솜씨다. 원본을 거의 그대로 옮겨 그리는 초상화 모사의 전통을 생각해 볼 때 1688년, 숙종 시기 어진의 품격 또한 유추할 수 있다. 어진 제작은 지금의 사업추진단이나 집행위원회 격인 한시적 조직 ‘도감(都監)’을 설치하여 진행한 큰 사업이었다. 그런 만큼 사업을 벌인 연유가 단지 ‘초상화가 낡아서’만은 아니었을 터다. 어진을 모사하기 위해 원본을 한양으로, 완성본을 다시 봉안처로 이안하는 행렬은 예를 갖춘 위엄 있고 웅장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림 그리는 일을 넘어서는 정치적 기획이었고, 행렬을 직접 보는 신하와 백성들의 반응을 의식했을 거라는 이야기다. 창업군주의 위엄을 빌어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려는 후대 왕들의 기대를 짐작할 수 있다. 태조의 어진은 숙종과 고종이 기대했을 완벽한 왕의 초상화로 완성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우리는 고뇌를 가진 한 사람으로서 이성계(1335~1408)의 삶 또한 알고 있다. 그는 73년의 생애 중 왕으로 7년, 형제들의 골육상잔을 겪은 뒤 상왕과 태상왕으로 10년을 보내고 세상을 떠났다. 조선시대의 뛰어난 초상화는 사람의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까지도 표출할 것을 요구받았다.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마주하고 성찰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적 아픔이 다 감추인 채 흠결 없는 군주의 모습으로 정좌한 〈태조어진〉은 어찌 보면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린 슬픈 초상화가 아닐까. 그 순간 정면을 직시하는 시선이 따뜻해 보인다. 눈이 마주친 듯, 과거의 유산이 말을 걸어오는 놀라운 순간이다. 세상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열일 중인 왕의 초상화 앞에서 왜인지 모를 뜻밖의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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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16 18:23

[문화마주보기] 기심과 인심

『장자』의 ‘천지’편에는 자공이 남쪽을 여행하다가 한 노인을 만나 나눈 이야기가 있다. 그 노인은 물동이를 안고 우물 속을 오르내리며 물을 길어 밭에 붓고 있었다. 힘만 들뿐 성과는 뻔했다. 자공은 도르래와 지렛대로 두레박을 쓰면 훨씬 수월할 것이라며 권유했다. 그러자 노인은 말한다. “기계가 있으면 기계로 할 일(機事)이 생기고, 그 일이 쌓이면 기계에 기대는 마음, 곧 기심(機心)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마침내는 순백한 마음이 온전하지 못하고, 정신(神)의 생성이 안정되지 못한다.” 이 짧은 대화는 기술사용에 따른 사람의 마음과 태도를 잘 나타낸다. 이 대화에서 기심이란 단순히 도구를 사용하는 태도보다 더 넓게 해석한다. 계산, 효율, 통제, 성과를 우선으로 삼는 습관적 사고까지 포괄한다고 본다. 세상의 일과 방법을 관계의 장이 아니라 조작 가능한 효율 만능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하여 노인의 말을 빌려서 경계한다. 그런데 장자에서 경계한 것은 편리함이 아니라, 편리함이 가져오는 심성의 방향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AI라고 하는 사회기술 ‘두레박’을 쓰고 있다. 여기서 알고리즘은 판단을 보조하고, 데이터는 결정을 빠르게 하도록 돕는다. 의료, 금융, 교육, 예술에 이르기까지 AI는 인간생활에 깊숙이 들어 왔다. 편리해진 것은 분명히 진보다. 그러나 지나치게 의존하면 사고의 근육이 약해지고, 책임 감각도 흐려진다. AI가 추천한 것을 의심 없이 따르고, 자동화된 평가를 객관적이라 믿으면, 우리는 기심의 체계 안으로 서서히 끌려 들어가는 꼴이다. 효율은 커지지만 성찰은 줄어든다. 이에 맞서는 태도를 인심(人心)이라고 보자. 이는 인간의 숙고와 공감을 중심에 두는 마음이다. 인간 중심의 독선이 아니다. 이때도 기술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속도를 즐기되 방향을 점검한다. 숫자를 참고하되 그 의미를 질문한다. 인심은 자동화의 흐름 속에서 잠시 서서 묻는 힘이다. “이 결정이 우리를 과연 더 인간답게 만드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기심과 인심은 적대가 아니라 긴장 속에서 이뤄내는 균형이다. 기술을 요모조모로 쓰지만 마음의 주권은 꼭 움켜주고 있어야 한다. 기계를 다루되, 기계에 마음을 맡기지 않도록 훈련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인간성을 확장하는 매개가 된다. 땀을 뻘뻘흘리며 우물을 드나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물을 길어 올릴 때 갖는 마음의 방향이다. 여기서 인심이 뜻하는 바는 AI윤리에 닿는다. AI 윤리는 따라서 기술 통제의 목록이 아니라 마음의 훈련이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기사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는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알고리즘의 결정이라 할지라도 설명하고 수정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그 다음은, 데이터와 모델의 한계를 공개하는 투명성이 필요하다. 완벽한 예측이라는 환상을 걷어낼 때, 인심이 산다. 끝으로 관계적 관점이 중요하다. 기술은 인간을 고립된 사용자로 만드는 대신, 상호 신뢰를 증진하는 매개가 되어야 한다. 『장자집석』을 펴낸 곽경번은 책 서문에서 “오늘날 기계와 기교는 두레박보다 만 배나 더 많다. 만약 장자가 이를 보았다면 어떠했겠는가”라고 개탄을 한다. 노인은 두레박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마음이 도구에 예속되는 상태를 우려했다. AI 역시 거부의 대상이 아니라 성찰의 대상이다. 우리는 속도를 늦추지 못하더라도, 방향을 점검할 수는 있다. 무엇을 더 많이 생산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공동체를 형성할 것인가를 묻는 태도, 기심을 넘어서서 공진화하는 윤리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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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09 19:13

[문화마주보기] 장수 트레일레이스와 ‘산촌 산업혁명’

장수군의 험준한 산맥과 굽이치는 능선은 오랫동안 ‘단절’의 상징이였다. 하지만, 지금 장수의 능선은 수천 년의 시간이 축적된 가야 문화의 숨결과 태고의 원시림을 잇는 가장 뜨거운 ‘기회의 길’로 변모하고 있다. 18세기 증기기관이 기계의 힘으로 자본주의의 꽃을 피웠다면, 21세기 장수는 인간의 정직한 발걸음을 동력 삼아 새로운 형태의 ‘산촌 산업혁명’을 준비 중이다. 이 혁명의 중심에는 오직 달리기에 미친 젊은 청년의 도전이 있었다. 모두가 고개를 저을 때 장수의 거친 지형을 지역 소멸의 원인이 아닌, 세계 어디에도 없는 ‘천연 자산’으로 통찰했다. 그가 일궈낸 ‘장수 트레일레이스’는 2022년 9월 첫 대회 이후 4년 만에 대한민국 아웃도어의 판도를 바꿨다. 매년 신청 개시 수 분 만에 3,000명의 유료 참가자가 매진되고, 연간 1만명 이상의 유동 인구가 장수를 찾는다. 세계 최고 권위인 UTMB 인덱스 대회로 공인받으며, 이제 장수의 길은 전 세계 트레일러들이 열광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의 길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는 모타니 고스케가 이야기한 ‘산촌 자본론’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외부의 거대 자본에 의존하는 대신, 지역의 숲과 물, 그리고 ‘시간’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활용해 경제적 자립을 이루는 모델이다. 특히, 최근의 건강지능(HQ)의 시대는 장수에 거대한 기회를 제공한다. AI가 지능과 감성을 대체하는 시대에, 현대인들은 역설적으로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날것의 감각’에 열광한다. 자신의 근육이 비명 지르는 소리에 집중하고, 흙 내음을 맡으며 건강 지능을 높이려는 욕구는 장수의 험준한 산악 지형을 가장 비싼 체험 상품으로 탈바꿈 시키고 있다. 이제 장수군은 이 레이스의 성공을 실질적인 ‘산촌 산업혁명’으로 연결해야 한다. 스페인 ‘제가마’가 트레일 레이스를 마을 모두의 연례 행사로 준비하며, 1등만이 아닌, 마지막 선수가 들어올 때 샴페인을 터트리고, 축제가 시작되듯이, 장수군 모두의 축제로 준비해야 한다. 또한, 산업적 측면에서는 프랑스의 ‘샤모니’가 UTMB를 통해 노스페이스, 살로몬 등 글로벌 브랜드의 R&D 거점이 되었듯, 장수 역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선 ‘비즈니스 생태계’ 구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국내외 유수의 업체들이 장수를 주목하는 지금이 적기이다. 대기업과 아웃도어 실증랩을 통해, 장수의 지형을 테스트베드 삼아 웨어러블 기기와 장비를 개발할 수 있는 연구소와 스타트업 단지를 유치하고, 장수형 K-바이오 푸드를 통해 장수 레드 푸드를 스포츠 영양학적 관점의 고기능성 에너지 젤 및 헬스 케어 음료로 고도화 해야 한다. 또한 로컬 웰니스 스테이 특구를 조성하여, 빈집을 리모델링하고, 1년 내내 트레일러들이 머물며 훈련하고, 재활할 수 있는 전문 캠프 인프라를 확충함으로써 관계 인구를 정주 인구 수준의 경제 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장수가 주도하는 산촌 산업혁명은 기계 문명에 지친 인류에게 건강한 대안을 제시하는 동시에 지역 소멸의 위기를 돌파하는 로컬 비즈니스의 교과서가 될 것이다. 장수의 산등성이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겁고 건강하게 고동치는 심장이다. /이수영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특화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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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02 18:55

[문화마주보기] 인공지능 시대, 예술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이미지는 넘쳐난다. 몇 개의 단어만 입력하면 인공지능은 순식간에 그럴듯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속도는 놀랍고 결과는 정교하다. 알고리즘은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형상을 추출한다. 우리는 그 기술의 편리함과 효율성에 감탄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항상 질문이 남는다. 그렇게 생성된 이미지는 과연 ‘예술’일까. 내달 초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김병종의 드로잉: 그럼에도》는 이 물음에 대한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드로잉은 단순한 선(線)이 아니라, 오랜 사유와 반복된 몸짓이 겹겹이 스며 있는 시간의 흔적임을 보여준다. 일필휘지로 그어진 한 줄의 선은 순간의 번뜩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십 년에 걸친 수행과 숙련의 세월이 응축돼 있다. 그것은 계산된 결과가 아니라 사유의 깊이를, 속도가 아니라 밀도를 드러낸다. 나는 오래전 한 평론에서 드로잉을 “몸이 기억하는 언어”라고 쓴 적이 있다. 생각이 완성된 뒤에 그려지는 선이 아니라, 그리는 과정 속에서 사유가 형태를 얻는 행위라는 뜻이었다. 손은 머리의 지시만을 따르지 않는다. 축적된 시간과 감각이 손끝에서 스스로 길을 찾는다. 그래서 한 줄의 선에는 주저함과 결단, 망설임과 비약이 동시에 스며 있다. 그 복합적인 시간의 결이 화면 위에 고스란히 남는다.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조합해 이미지를 산출한다면, 인간의 손은 체험과 감각, 망설임과 결단을 거쳐야만 작품을 남긴다. 화면에 남은 미세한 압력의 차이, 호흡의 흔들림, 멈칫한 흔적들은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생생하고 가치 있다. 그 불완전성은 오류가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다. 예술은 데이터의 축적만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예술은 손의 밀도가 켜켜이 스며든 자리에서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이른바 ‘손맛’이 살아 있는 작품에는 한 인간이 살아온 시간의 층위와 감각의 온도가 담겨있다. 그 온도는 보는 이의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켜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을 주고, 때로는 위로와 치유를 안겨준다. 감동을 주지 못하는 예술은 아무리 형식이 완결되어 있어도 생명력이 없다. 생명력이 있는 예술만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우리 내면의 결을 다시 다듬는다. 기술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인간의 표현 방식을 모방한다. 그러나 예술의 출발점은 여전히 인간의 몸에 있다. 손끝의 감각은 계산될 수 없는 생명의 떨림을 만들고, 그 떨림은 단순한 형상을 넘어 생기를 획득한다. 닫히지 않은 형상은 미완이 아니라 생성의 과정이며, 여백은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을 품은 사유의 장이다. 이는 채움보다 비움을 통해 본질에 다가가려는 한국적 미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물론 기술을 거부할 수는 없다. 알고리즘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었고, 예술 은 언제나 동시대 매체와 호흡해왔다. 인공지능은 붓이나 물감처럼 예술가가 다루는 또 하나의 창작 도구일 뿐이다. 백남준이 당대의 보편적 기술이던 영상과 텔레비전을 새로운 예술언어로 전환했듯, 예술가가 디지털 시대는 디지털 기술을 인공지능 시대는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예술가가 동시대의 기술로 창작에 임할 때 동시대의 삶과 당면 문제를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술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예술의 출발점이다. 예술은 계산에서 비롯되는가, 아니면 몸짓과 사유가 축적된 손의 밀도에서 시작되는가. 인공지능이 아무리 정교한 이미지를 생산할지라도, 한 줄의 선에 깃든 인간의 떨림까지 재현할 수 있을까.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의 《김병종의 드로잉: 그럼에도》는 ‘생명의 화가’ 김병종의 드로잉을 통해 예술의 기원을 다시 묻는다. 예술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그 시작은 속도나 계산이 아니라 시간과 사유가 켜켜이 쌓인 손의 밀도에 있음을. 그리고 그 한 줄의 선이야말로 존재의 깊이를 드러내는 자리임을 말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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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23 19:09

[문화마주보기]순간이 쌓여 역사가 된다

지금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대한국인 안중근 쓰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형 집행을 앞두고 옥중에서 쓴 안중근 의사의 서예 작품을 통해 그의 일생과 신념을 살펴보는 전시다. 전시의 마지막에 관람객은 안중근의 글씨가 아닌 한국 천주교의 첫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의 도자기 지석을 마주하게 된다. 두 사람은 1791년(신해년) 전주 남문 밖, 지금의 전동성당 터에서 순교했다. 신앙과 순교의 지고함 속에서, 죽음 앞에서도 초연했던 안중근 의사의 신념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박물관은 첫 순교자가 나온 땅, 전북 지역의 천주교 역사를 바탕으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오버랩하는 전시로 이 특별전을 기획했다. 역사는 1791년의 순교 사건을 신해박해라 부른다. 도자기 지석은 2021년 완주에 있는 초남이 성지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두 순교자의 지석과 유해가 발굴되는 과정은 놀라웠다. 묘소가 어딘지 위치조차 잃어버린 박해의 역사 속에서, 이름과 태어난 해, 본관, 매장 일시 등을 적은 열여덟 글자의 귀한 기록이 살아남아 유해의 주인이 윤지충과 권상연, 두 순교자임을 증언했다. 다른 지석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도 눈에 띈다. 윤지충의 지석과 권상연의 지석에 각각 적혀 있는 “권공묘재좌(權公墓在左, 권상연 공의 묘가 왼쪽에 있다)”, “윤공묘재우(尹公墓在右, 윤지충 공의 묘가 오른쪽에 있다)”. 이 다섯 글자는 한날 한 시에 함께 순교한 사람이 옆에 묻혀 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기록이다. 두 사람은 내외종간으로 윤지충의 어머니는 권상연의 아버지와 남매간이다. 순교자의 묘소와 유해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랐던 상황에서, 땅속 깊이 묻힌 유해가 혹여라도 드러나게 되었을 때 가까운 친척인 두 사람이 함께 발견될 수 있도록 안배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 애틋하다. 사실 누군가 비장해 오던 선조의 편지라든가 외국의 작은 박물관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된 우리 옛 서화, 땅속에 묻혀 있거나 심지어 바다 깊이 잠들어 있다가 발굴되는 수백 년 전의 도자기 등 어느 시대든지 역사의 ‘새로운’ 조각이 갑자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 있다. 전주만 하더라도 청동기를 만들던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전북 지역의 중심지라는 지위를 놓은 적이 없는 역사적인 도시다. 그만큼 언제 어디서든 새로운 자료가 불쑥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후백제 도성 유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종광대만 해도 그렇다. 조금씩 드러나는 시대의 흔적들을 모아 역사를 복원하고 맥락을 밝혀 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쌓아 올리는 것이 박물관의 역할이기에 새로운 자료의 출현은 늘 절실하다. 어느 시기의 무엇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지만, 지금도 어디선가는 새로운 유적이 드러나고 유물이 발견된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지역의 역사를 증언하는 자료이자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는 보물이 될 귀한 유산이다. 박물관에서는 두고두고 무한대로 활용할 소장품이며, 현대의 눈높이에 맞는 문화 콘텐츠로 개발하여 후대에 물려줄 미래 자산이기도 하다.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적처럼 살아남은 종광대가 그렇듯이 200년이 넘은 전북의 천주교 역사도 머지않은 어느 날 우리 역사의 한 갈래로 박물관 전시실에 새롭게 자리 잡을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는 역사가 된다. 박물관 전시도 켜켜이 그 시간을 쌓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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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9 17:42

[문화마주보기] HAI 시대, 지역사회 감응에도 주목

출판을 앞두고 작업 중인 시집에 추천서를 써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시인이 아닐뿐더러 그 작가를 알지도 못하는 나더러 왜 쓰라고 하는지 물었다. 이 책은 시인이 시를 쓰고, 시 하나하나마다 AI가 평론을 하는 독특한 방식인데 내가 적합할 것으로 생각되어 부탁한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움을 싸맨 채 며칠간 생각을 쥐어짜고 있다. 요즘 시간개념으로는 꽤 오래 된 8년전, 나는 ‘4차산업과 소셜디자인 문화전략’에서 인간지능과 인공지능이 결합된 형태(HAI)가 어떻게 진화할 지를 3단계로 설명한바 있다. 대략 양적인 확장 -> 인간활동 대체 -> 위임과 같은 외부화로 진화할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지금 이 시집은 바로 HAI 합작품으로 구성됐고, 마지막 단계인 AI에 위임해 외부화된 평론이 당당하게 함께 자리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 우리는 매우 ‘숙련’되고 ‘보편화’된 AI를 끼고 산다. 많은 일들을 AI에 맡기고 있다. 컴퓨터가 두뇌를, 로봇이 몸 대신 위임받은 일을 잘 해준다. 이처럼 누구나 편히 쓰는 범용인공지능(AGI) 시대를 누리려면 인간의 창의성과 통합해서 수행하도록 세심히 관리해야 한다. 인간지능(HI)과 인공지능(AI)이 결합한 ‘HAI의 공진화’로 나아가는 지능사회를 위해 투명하고 책임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일상생활의 인지보조, 스마트홈, 웨어러블에서 HAI 통합이 이뤄질수록 신뢰는 더욱 절실해진다. 지속발전을 위해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협업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 특히 지역사회에서라면 이런 사회적 관계망의 중심에서 공동 대응을 할 협력구조가 핵심 아닐까? 특히 분산형 협력의 기술적 토대인 디지털 플랫폼은 지리・언어・문화적 경계를 넘어 다양한 주체가 지식・자원・기술을 공유 협력하는 새로운 사회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뒤에 원격 협업 시스템, 온라인 공동창작, 오픈소스 기반 프로젝트가 급속 확대됐다. 시간・공간・인간에 구애받지 않는 ‘협력공진화’ 모델이 현실적으로 가능함을 잘 봤다. 지금 이 같은 AI전환의 시대에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혁신과 신뢰의 균형이다. 신뢰를 위한 활동 주체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이처럼 우리는 인간과 기술이 서로의 숨결을 감지하는 시대에 산다. 앞에서 말한 HAI와는 다른 HAI(Human–AI Integration)가 요구된다. 그저 말장난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기술융합을 넘어, 인간 사회 전체의 감응체계가 다시 짜여지는 조용한 혁명을 맞고 있다는 말이다. 앞에서 말한 1, 2단계에서의 AI는 효율과 예측의 도구로 여겼다. 이제 그 역할은 훨씬 더 섬세하고 관계적이며, 사회적 감정의 층위까지 비추는 ‘조감 장치’가 되어가고 있다. 기술이 인간의 감각을 대신하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의 감응을 확장시키는 시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감응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지역사회적 감응이라면, 한 지역사회가 변화의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감정으로 해석하며, 어떤 방식으로 공동의 행동을 선택하는가를 뜻한다. 이는 경제나 제도의 문제를 넘어, 사회의 결을 이루는 정서적 지능이다. ‘휘몰이 충격’의 구조적 변화는 모두 감정의 파동을 동반한다. 그러니 감응을 읽지 못하는 지역사회는 변화를 관리할 수 없고, 감응을 외면한 정책은 설득력을 잃는다. 이제 시대는 숫자보다 정동을, 통계보다 감응을 보라고 말한다. 언제까지 소멸 타령이나 하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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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2 19:03

[문화마주보기] 전북 문화기업의 성공조건: 인내자본과 문화액셀러레이터

우리가 평소에 접하는 물건들은 저마다 ‘가격표’를 달고 있다. 편의점에서 사는 생수 한병, 서점의 베스트셀러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단순히 가격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를 품고 있다, 낡은 고택, 명창의 판소리 공연, 혹은 방탄소년단(BTS)의 뮤직비디오가 그렇다.세계적인 문화경제학자 데이비드 트로스비는 문화가 가진 이 특별한 비밀을 두 개의 가치라는 틀로 명쾌하게 설명했다. 바로 가격표 뒤에 숨겨진 또 다른 가치를 설명한 것이다. 트로스비는 문화상품에는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문화적 가치’가 하나 더 있다고 말했다. 이는 크게 다섯가지 요소로 나뉜다. 미적가치는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며, 영적 가치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정신적인 풍요를 주는 힘이다. 사회적 가치는 공동체에 소속감을 주고 서로를 연결한다. 역사적 가치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정체성의 뿌리 역할을 한다. 상징적 가치는 특정 시대나 정신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트로스비 이론의 또 다른 핵심은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이다. 보통 자본은 은행의 예금, 공장의 기계를 떠올리지만, 문화 역시 자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문화적 가치가 꾸준히 쌓이면 하나의 커다란 ’자산‘이 된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통유산이 오늘날 K-콘텐츠의 뿌리가 되어 거대한 경제적 이득을 창출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즉, 지금 우리가 문화를 보존하고 향유하는 행위는 단순히 돈을 쓰는 소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투자인 셈이다. 전북은 자타가 공인하는 문화적 인프라가 뛰어난 지역이지만, 정작, 지역을 대표할 만한 ’문화 유니콘 기업‘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지역 내 문화 자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경제적 자본으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죽음의 계곡‘을 건너게 해줄 통합적 지원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적 가치는 아카이빙과 진정성을 통해 서서히 문화자본이 되지만, 시장이 요구하는 경제적 가치는 즉각적인 매출과 지표로 증명되어야 한다. 문화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는 시간차가 있다. 이 시간의 간극을 견디지 못할 때, 잠재력 있는 문화기업들은 스케일업의 문턱에서 좌절하게 된다. 전주에서 무형문화재의 서사를 현대적 콘텐츠로 기록하면서 창업과 초기 투자유치도 성공했던 한 문화기업은 이후 매출 등의 지표를 중요하게 여기는 후기 투자로 넘어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이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기업은 브랜드의 깊이를 만드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일반적인 벤처캐피탈, 액셀러레이터들은 단기적 회수율을 더 요구한다. 결국, 문화적 자본이 경제적 자산으로 완전히 만개하기 전, 투자의 시계가 멈춰버리는 셈이다. 전북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단순히 창업지원금을 주는 것이 아니다. 문화적 가치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며, 경제적 가치가 궤도에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는 ’문화 특화 액셀러레이터‘와 ’인내자본‘인 것이다. 진정한 문화수도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기업이 가진 이중적 가치를 품어주는 통합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 가치를 알아주는 ’인내하는 파트너‘가 많아질 때 전북의 문화는 비로소 지역의 부(富)로 피어 날 것이다. 이수영 본부장은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미래전략본부장,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투자육성팀장, 전주 동문예술거리추진단 기획팀장, 삼천문화의집 관장, 이수영 음치클리닉 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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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26 18:44

[문화마주보기]사랑의 도시, 예술의 도시, 남원

오늘날의 도시들은 하나같이 풍요와 속도를 말한다. 더 높은 빌딩, 더 많은 인구와 자동차, 더 빠른 기술과 산업. 경쟁과 효율, 첨단이라는 단어가 도시의 가치를 대신한다. 그러나 모든 도시가 같은 방향으로 달려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어떤 도시는 그 흐름에서 한 발 비켜 있을 때, 가장 그 도시다운 얼굴을 드러내며 그것이 곧 경쟁력이 된다. 남원은 바로 그런 도시다. 남원을 ‘사랑의 도시, 예술의 도시’로 부르고 싶다. 이는 새로 만들어낸 슬로건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 땅에 축적되어 온 정체성이다. 성춘향과 이도령의 사랑 이야기는 단순한 연애담이 아니다. 그 안에는 절개와 신의, 권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간의 존엄이 담겨 있다. 남원은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품은 도시이며,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사랑의 서사를 일상의 공기로 간직한 곳이다. 남원이 지향해야 할 미래는 첨단기술산업도시의 모방이 아니다. 속도를 늦추는 용기, 느림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빠르게 통과하는 도시가 아니라 천천히 걸을 수 있는 도시, 소비하며 스쳐 가는 공간이 아니라 머물며 사유하는 공간. 남원은 산책의 도시가 되어야 한다. 걷는 동안 자연과 역사, 그리고 자기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도시 말이다. 또한 남원은 판소리가 살아 숨 쉬는 예술의 도시다. 동편제 판소리의 본향으로서 남원은 소리와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희로애락을 전승해왔다. 판소리는 전통 예술을 넘어 시간을 견뎌온 삶의 방식이자 공동체의 기억이다. 이 예술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울려 퍼질 때, 남원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잇는 문화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이런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반 또한 남원은 갖추고 있다. KTX를 통해 수도권과 남해안 권역을 잇고, 동서를 연결하는 88고속도로와 남북을 관통하는 순천–완주 고속도로는 남원의 접근성을 높인다. 한옥을 개조한 현대식 숙박시설, 지리산 자락과 섬진강 유역의 식재료로 완성되는 한정식과 추어탕은 자연의 섭리를 체감하게 하는 남원의 뿌리깊은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준다. 광한루와 만인의총 같은 전통 유산, 국립민속국악원과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같은 현대 문화시설도 공존하며, 지금 조성되고 있는 함파우 예술특화지구에는 소리체험관과 천문관이 있고, 옷칠공예와 도자체험 시설도 더해진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 지난 해 18만 명이 다녀갔다는 사실은 남원의 문화적 잠재력을 분명히 보여준다. 인구 7만이라는 수치는 한계가 아니다. 세계에는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문화 정체성으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도시들이 많다. 성 프란치스코의 도시로 알려진 인구 2만의 이탈리아 아시시(Assisi)와 바그너의 도시로 유명한 인구 7만의 독일 바이로이트(Bayreuth)처럼, 남원 역시 사랑의 서사와 예술의 전통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으로 세계와 만날 수 있다. 작지만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성장할 충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남원은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사랑의 서사, 예술의 유산, 느린 산책이 허락되는 자연풍경. 이를 정성껏 가꾸고 계승한다면, 남원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도시가 될 것이다. 사랑이 전통이 되고, 느림이 경쟁력이 되며, 예술이 일상이 되는 도시. 남원은 그렇게 자신의 길을 가면 된다. 그것이 가장 남원다운 길이다. 허정선 관장은 영남대학교 미술사학 박사를 받았다. 울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를 역임했고 동국대학교 경주 캠퍼스 겸임교수를 지내고 경북대학교, 영남대학교 등서 13년간 강의를 진행했다. 영남대학교 미학 및 미술사학 박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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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1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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