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미국에서 들려오는 골프 낭자들의 우승 소식에 삶의 활력을 얻게 된 지도 여러 해 째다. 그리고 박찬호, 김병현 등의 야구 선수들이 승리를 쌓을 때마다 듣는 우리의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을 감출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지난 2002년에는 이러한 스포츠 감동의 카타르시스라고 할 만한 월드컵 4강 진출의 기적을 경험 하기도 했다.
근래에 들어서는 국가대표 축구팀의 경기가 새벽잠을 설치게 했지만 투자한 만큼 보람이 있었던, 그래서 무척 가슴 후련한 감동을 맛보았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 그런데 엊그제 청소년 대표팀의 경기가 또 새벽에 있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정확하게는 관람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까지 포함한 축구팬들은 스포츠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또 한 번 경험하였다. 한 점을 잃어 패색이 짙었던 우리 팀이 경기 종료 직전 거푸 두 점을 얻으면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이런 스포츠의 감동을 경험하면서 문득 80년대의 스포츠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5공화국 시절 스포츠는 민중에게 순수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짙게 깔려 있었다. 이름하여 3S라고 불리던 스크린(Screen), 성(Sex) 그리고 스포츠(Sports)가 바로 5공화국에서 즐겨 활용하였던 정권보전용 도구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풍문은 얼마전 방영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꼭지에서 좀더 객관적으로 조명된 바도 있다.
스포츠가 어두운 역사를 경험했다고 해서 스포츠가 아닌 것은 아니다. 스포츠는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다.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도 그 이하의 의미도 그리고 다른 의미도 담고 있지 않다. 이런 스포츠를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이 나쁜 의도로 이용한 적이 있었을 뿐이다.
요즈음의 스포츠 묘미는 걸출한 스타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박주영이란 선수는 여러 모로 칭찬일색일 수 밖에 없는, 아주 보기 드문 선수인 듯하다. 그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기대 이상의 참신함을 경험하게 된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경기 내용을 보면서 우리는 축구에 관한 생각의 지경(地境)을 넓히고는 하기 때문이다.
공부만 잘 하고 운동을 못 하는 학생이나 공부는 못 하고 운동만 잘 하는 학생이나 한가지라는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균형 잡힌 삶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