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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풍남문과 복원

후백제 시절 전주성은 기린봉 밑에서 전주고 뒤쪽으로 이어지는 공간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일제초기에도 성벽의 돌이나 토성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후백제의 성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적어도 통일신라시대부터는 전주성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제시대에 전주성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고려시대에는 지금의 전주시 구도심인 평지에 성이 있었다. 기록에 공양왕 원년 1398년에 전라관찰사인 최유경이 전주성과 4대문을 축성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자세한 기록이 없어 언제부터 전주의 중심이 평지로 내려왔는지, 그리고 고려 중기에도 평지에 성이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정유왜란(1597년) 때, 왜군에 의해 전주성과 성문이 일부 파손된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전라감사 조현명은 영조 9년(1733년)에 시작해서 다음해까지 전주성을 재건하였다. 이때 문루를 3층으로 지어 명견루라고 불렀다. 1767년 전주성내를 휩쓴 대화재로 명견루도 소실되었다. 1768년 전라감사 홍낙인이 다시 지으면서 2층으로 중건하였고 지금의 이름인 풍남문으로 개칭하였다. 태조의 출향지라는 풍패지향의 풍자와 남쪽문이라는 남문을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전주성은 동학혁명의 와중에서 동학군과 관군이 전투를 하면서 많이 무너졌다. 특히 서문 쪽이 크게 부서졌다. 1905년 일본의 감독 하에 있던 통감부는 폐성령을 내려 전국의 성들을 파괴하기 시작하여 전주성 서편이 철거되었다. 1911년부터 동편도 철거되어 풍남문을 제외하고 전주성의 모든 흔적이 사라졌다. 풍남문은 1978년 보수공사를 통해 포루, 종각, 옹성을 갖춘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되었다.

 

이번에 발견된 築城啓草(축성계초)는 1733년에서 1734년까지 2년에 걸친 전주성의 재건 과정을 전라감사인 조현명이 기록한 내용이다. 이 때 풍남문을 재건하면서 옹성을 없앤 것으로 드러나, 현재의 풍남문이 잘못 복원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사적을 복원할 때, 함부로 복원할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현재도 미륵사나 후백제 전주성의 일부를 복원하자는 주장이 있다. 미륵사 동탑도 복원했지만 아무도 원래 모습을 모른다. 모르면서 복원했으니 거짓 복원한 셈이다. 원래 모습을 모르면 복원을 하지 않는 것 낫다. 잘못된 복원은 사적지를 파괴하는 것이다. 정 필요하면 인근에 재건이나 중창을 하는 방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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