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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논술과 독서 - 정수완

정수완(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지난 일요일 수시 대학 입시 논술 고사 채점위원으로 하루 종일 학생들의 논술 고사 채점을 했다. 빽빽이 써내려간 많은 아이들의 답안지를 채점하면서 논술이라는 제도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암기식, 주입식의 현 교육제도의 한계를 보안하고,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언젠가부터 각 대학들은 앞다투어 입시에서 논술 고사의 비중을 강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긴 문장 읽기와 오래 생각하기를 힘들어하게 된 아이들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 있다는 점에서 논술은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치 모범답안지를 외워 쓴 듯한 120명 입시생들의 똑같은 답안지를 보면서 과연 논술 고사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사실 논술 고사가 대학 입시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며 호들갑을 떨며 논술 학원을 보내고, 논술 과외를 시키는 주위의 학부형 친구들을 보면서 논술이 창조적인 아이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어, 수학 등 많은 과외 수업에 힘겨워하는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짐을 지게 하는 것은 아닌가하고 걱정하곤 했다. 자기 생각을 하는 창조적인 아이들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생긴 논술 고사가 오히려 아이들을 정형화되고 기계적인 사고를 하는 로봇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며칠 전 외국어고등학교 입시를 마친 아들을 둔 친구가 입시 논술 시험에 자신이 예상해준 문제가 그대로 나와 아들이 시험을 잘 보았다고 자랑하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아들이 자신이 만들어준 모범답안대로 잘 쓰고 나왔다는 것이다. 친구 아들이 좋은 학교에 합격할 수 있다면 축하해줄 일이지만, 그 말을 듣는 나는 어딘지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은 책 한권, 영화 한편을 제대로 볼 시간이 없다고 한다. 논술에 대비해 고전들을 읽긴 읽어야 하는데 두꺼운 고전을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어 고전을 쉽게 풀이하여 간단하게 정리해 놓은 다이제스트판 고전을 읽는다고 한다. 심지어 영화의 자막 읽는 일을 귀찮아하여 외국 영화 대신에 한국 영화만 보는 아이들 덕택에 한국 영화 산업이 유지되고 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창조적인 아이들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논술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책읽기와 생각하기의 즐거움과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일요일 내린 비로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 같던 가을이 끝이 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될 모양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 가을 학생들이 시험의 부담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한권의 책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중학교 때 처음 읽었던 <제인에어> 와 <데미안> 이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힘이 되는지를 생각해보면, 이번 가을 학생들이 그들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한권의 책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정수완(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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