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옥(서울대 평의원회 의장·지리학과 교수)
현재 세계 각국이 겪고 있는 경제위기가 바로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세계화의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잘 보여준다. 세계경제를 위기에 몰아넣은 미국발 금융위기는 그동안 미국의 신자유주의식 경제운영과 금융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미국주도의 세계경제질서에 대한 회의를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아시아의 세기(Asian Century)', '차세대 세계화'라는 어구는 바로 이러한 비판을 함축하고 있다. 이번 세계경제위기를 계기로 미국의 세계경제 리더쉽이 상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의 세계경제질서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전과 같지 않고 세계경제는 새로운 형태로 재편될 것이라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세계경제가 어떻게 재편될 것인가에 대해서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세계경제에서 아시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21세기를 '아시아의 세기'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왜냐하면 지난 10여년동안 아시아 경제의 급성장은 중국경제의 급성장에 힘입은 바 크고, 중국경제의 급성장은 다국적기업의 투자와 밀접히 관련되어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시아는 세계의 공장지역에 불과하며, '아시아의 세기'가 아니라 '다국적 기업의 세기'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아시아지역이 세계의 공장지역에 불과하며 아시아의 세기는 틀린 것인가? 필자는 달리 본다. 이는 앞으로 변화를 이끌 기술지식의 창출을 나타내는 특허자료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각국의 특허자료를 신빙성 있게 비교하기 위하여 미국, EU, 일본에 공동으로 특허등록을 한 특허건수를 살펴보면, 1995년에 미국이 세계의 34%, 유럽은 세계의 36%를, 아시아지역은 세계의 26%를 차지하고 있어서 아시아지역은 크게 뒤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10년후인 2005년에는 미국과 유럽은 각각 그 비중이 31%이고 아시아지역은36%로 이제 세 지역에서 가장 큰 비중이다. 이는 아시아지역은 이제 단순히 다국적기업의 투자를 통한 세계의 생산지역으로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경제구조가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이러한 아시아의 기술지식 급성장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나라는 어디인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1995년에 미국, EU, 일본 3개지역에 공동의 특허등록을 한 세계특허등록건수의 0.9%밖에 차지하지 못했으나 10년후인 2005년에는 5.4%를 차지하여 미국, 일본 독일에 이은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유지된다면 한국은 세계경제구조재편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창출을 통한 새로운 산업의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술지식 창출의 능력은 바로 자원, 인구, 국토면적에서 보잘 것 없지만 현제 세계 13대 경제대국에 속하고 앞으로 세계 10대 경제대국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현재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인하여 수많은 국민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 어려움은 곧 지나갈 수 있다. 현재의 위기 극복과 더불어 앞으로 세계경제재편에서 한국이 해야 할 역할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한국이 앞으로 소위 '아시아 세기'를 현실화시키고 세계경제재편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이제 경제력이나 지적 재산권의 위상에 맞는 정책이 필요하다.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의 인재들뿐만 아니라 외국인재들이 마음 놓고 한국에서 일하고 생활할 수 있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즉, 인재의 국제적 순환이 활성화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그 인재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지방으로도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인재들이 지방으로 돌아올 수 있는 공간, 지방에서 살기 원하는 공간, 지방에서 일하기 원하는 공간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지방의 교육과 주거환경의 획기적인 개선과 더불어 지역혁신환경이 이루어져야 가능할 것이다.
/박삼옥(서울대 평의원회 의장·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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