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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역사는 흐른다 - 김년균

김년균(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광복절이 다가온다. 해마다 이맘때면 일제 강점기를 되돌아보게 된다. 사람 모습을 지니고서도 짐승보다 못되게 굴던 일본인들. 훔치고, 빼앗고, 짓밟고, 죽이고, 온갖 못된 짓을 일삼던 그들의 만행에 진저리를 친다. 그들은 그만큼 잔인한 민족이었을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일본인을 개별적으로 만나보면 그렇지 않게 느껴져서 마음이 헷갈린다. 겉과 속이 달라서일까. 그들은 여전한데 내 마음만 흔들린 것일까.

 

얼마전 일본의 오사카에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일본 속의 백제문화를 살펴보자는 것이었는데, 관심있는 문인 수십명이 동참했다. 옛부터 백제인이 모여 살던 '구다라스(百濟洲)'여서인지, 백제의 유적지가 널려 있는 곳이다. 백제문화가 얼마나 찬란했던가를 짐작케 한다.

 

맨먼저 찾아간 곳은, 백제 무령왕이 일본 왕실의 친동생 오호도 왕자(계체왕)에게 보낸 '인물화상경'(국보)이 보관되어 있는 와카야마현의 '스다하치만신사'였다. 그곳의 강당에서 백제의 문화를 찬양하는 '백제시 낭송회'를 가졌다. 일본땅에서 이런 행사를 갖는 일도 처음이다.

 

다음으로 오쓰신궁을 찾았을 때는 사토 히사다나 궁사(宮使)가 반갑게 맞아주며, '우리들의 방문을 신에게 알리는' 신궁의식까지 치러주었다. 그리고 접대실로 초대하여 차를 대접해주었다. 궁사는 '백제가 나당 연합군과 싸울 때 이 지방에서 27만명의 지원병을 보냈고, 백제가 멸망할 땐 피난민들을 일본이 받아주었다'면서 '백제사람들은 잘생기고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다'고 했다. '당신도 백제의 피를 받았느냐'고 일행이 묻자 궁사는 빙긋이 웃기만 했다. 은연중 인정한 셈이다.

 

그 다음으로 다카시노신사에 들렀을 땐, 건물의 위용에 압도되었다. 백제인들이 세웠다는 이 거대한 건물 안에 들어앉은 목조의 불상은 너무도 웅장하고 장엄하여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부처의 주위를 한바퀴 돌고나서 한쪽 구석의 가게에 이르자, 지붕을 덮는 기왓장을 팔고 있었다. 한 장을 사서 거기에 '百濟萬歲'라고 썼다. 이 기왓장은 이제 신사의 지붕에 올려져 하늘과 마주보리라. 백제만세. 하늘도 박수치며 기뻐하리라.

 

똑같은 일본인이면서도, 백제를 '구다라(큰나라)'라고 칭송하는 지식인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한국인을 비하하며 역사의 사실조차 숨기려는 옹졸한 사람이 있고, 한발 더 나아가 우리땅(독도)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극우세력이 있다. 일본사회의 복잡한 의식세계를 엿보게 한다.

 

일본은 지금 세계의 경제대국이다. 그러나 과거엔 백제 때문에 일어선 나라이다. 백제의 왕인(王仁) 선생이 '천자문'과 '논어' 등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그들을 가르치지 않았더라면, 백제인들이 그 땅에서 문화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일본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일본의 왕족도 백제인이라고 한다. 일본의 아키히토 천왕이 '내 몸에도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말한 것은 매우 정직하다.

 

역사는 흐른다. 모두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남겨놓고 흐른다. 역사는 감추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고, 되돌아보고, 배우고, 깨닫는 것이다.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으면 아름다운 세계가 열린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광복절이 일본인에게는 자성의 기회가 되기 바란다.

 

/김년균(한국문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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