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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운 전 김제군수

"수입개방 이익, 위기의 축산농가에 돌아가야"

오랜 공직에서 물러나 소를 키우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정희운 전 김제군수가 위기를 맞은 축산업의 문제와 해법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안봉주(bjahn@jjan.kr)

김제시 죽산면 옥성리에 있는 동천농장 주인 정희운씨(76). 기자가 방문한 11일 그는 추리닝 바지에 발목 짧은 장화를 신고 외양간을 연방 드나들었다. 한우 70마리에게 간식을 주기 위해서였다. 사료를 보고도 누렁이들은 물러섰다. 사육 두수가 줄어들면서 외부인을 경계하는 거란다. 두엄냄새가 여간 아니었다. 손가락 굵은 뼈마디와 햇빛에 그을린 피부. 여느 농사꾼과 다름없다.

 

세월은 한 인생을 이토록 확 바꿔 놓았다. 16년 전 번듯하고 쾌적한 사무실 환경은 생각할 엄두를 못 낸다. 전라북도 국장과 일선 군수직을 잇따라 연임한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지방관가에서는 묵묵하고 성실했던 인물로만 기억된다. 지금은 화려했던 행적은 과거에 묻고 억센 새 삶터에서 현장을 가꾸고 있다.

김제시 죽산면 옥성리 동천농에서 만난 정희운 전 김제군수(왼쪽)와 최동성 기자가 우거진 수풀을 배경으로 귀농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desk@jjan.kr)

 

인터뷰 대상으로 '정희운'을 떠올린 것은 요직을 거친 관료 출신이 고향으로 돌아와 제2의 삶에서 성공을 거둔 귀농 축산인이기 때문이다. 현재 밀어닥친 축산업계의 위기와 함께 지역의 미래를 행정권 밖에 있는 고관 출신의 눈으로 읽어내는 데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나이에 소 키우느라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소 키우는 데 많은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건강해서 할 만합니다."

 

-축산업에 뛰어든 건 언제인가요.

 

"1995년5월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나서지요. 그해 6월 있었던 민선 초대 김제시장 선거에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 후보로 차출돼 출마했다가 호남권의 '민주당 싹쓸이 판'에 낙선하고 이 길로 접어든 겁니다."

 

-미리 준비는 했습니까.

 

"아닙니다. 소 사육은 낙선 후 6개월간 두문불출하다가 결심했습니다. 물론 공직에 있으면서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지요. 오래 전부터 가슴에 묻어둔 꿈이었습니다."

 

-군수 출신이 소 키우겠다고 했을 때 주위 반응은 어땠습니까.

 

"다들 비웃었어요. 불안한 거죠. '선거에서 망하고 소 키워서 끝장 보려고 그러느냐'며 길을 막았습니다. 어머니도 눈물로 한사코 만류했지요.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꼭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선 남의 도움 없이 직접 귀촌의 터를 닦았지요. 그건 귀농인이 농촌 사람들의 눈높이에 다가가는 일이었습니다."

 

-선거 후유증으로 시작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며) 그렇습니다. 선거 치르느라 퇴직금과 연금을 다 날렸으니까요. 빈털터리였어요. 그대로 주저앉게 될 판이었습니다. 그러나 8남매 중 장남이 그럴 순 없었죠. 농협에서 3,000만원을 대출받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밭 3,000평에 축사 120평을 지었습니다. 1996년7월까지 암소 20마리를 입식했어요."

 

-혼자 그런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내와 단둘이 해 왔어요. 하는 일이 어느 정도 기계화되어 크게 힘들진 않습니다. 시작 3년 반 만에 110마리로 늘렸고, 많게는 120마리까지 길렀습니다. 한해에 보통 송아지 40여 마리를 생산했네요."

 

-그러면 이제 한우에 대해선 전문가 수준이겠습니다.

 

"웬만한 예방접종과 출산 방법은 알고 있지요. 그동안 행정기관의 각종 교육과 견학을 통해 배웠습니다. 기른 소 대부분 1등급 판정을 받았고, 한 때 육우 챔피언을 차지했을 정도입니다."

 

-공직 경험이 소 사육에 도움이 됐나요.

 

"소 키울 때 공무원 정신으로 일했어요. 책임감 가지고 잘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정말 자부심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공직경험을 살려 직접 농부로서 성공사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축산업의 어떤 점이 문제인가요.

 

"구제역 파동과 소 값 하락입니다. 소 값이 곤두박질치는 건 자유무역협정(FTA) 등 수입개방 확대가 주원인입니다. 가장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가 바로 축산업 아닙니까. 축산업 붕괴 위기는 결국 농촌경제의 파탄을 예고하는 겁니다. 소비둔화에 사육두수는 늘어나 정상적인 수급이 이뤄지지 않아요. 축산 농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입개방으로 얻은 이익은 일부나마 마땅히 축산 농가에 돌아가야죠. 한우 암소 23마리를 출하해 총 8천3백49만원의 소득을 올렸어도 손해가 만만치 않아요. 연간 사료 6,600만원과 볏짚 1,500만원의 지출액 8,100만원을 감안하면 생산비도 못 건지는 형편입니다. 한우 산지가격도 600㎏기준으로 작년 말 보다 37% 내려갔어요. 그래서 파동 전보다 연간 수익이 절반가량 줄었습니다."

 

-그런데 소비자 가격은 왜 떨어지질 않는가요.

 

"유통구조에 원인이 있습니다. 소 등급 값의 16등급이란 세분화가 문제입니다. 두 세 등급 간에 무려 100만원 이상 경락 차익이 발생합니다. 이 때문에 저등급이 높은 등급으로 둔갑해 음식점과 정육점으로 유통되거든요. 소비자 시장에서도 이대로 16등급으로 판매됩니까. 현행 쇠고기 등급제는 그 보다 적은 5단계로 하고 있어요. 그러니 비싼 가격 때문에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지요. 이런 구조로는 소비자들이 싼값에 먹을 수 없다고 봅니다. 한쪽에선 값 싼 쇠고기가 수입된다는데 한우가 내키겠어요."

 

-수급과 유통 질서를 잡는데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건가요.

 

"당연하죠. 그러면 누가 조절하고 질서를 세웁니까. 남아도는 소를 보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입니다. 소비 촉진을 위해 통조림 등 가공식품을 값싸게 식탁에 올릴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합니다. 각 기관 단체에서도 '소 먹는 날'을 만들어 문제를 풀어가야지요. 정부는 우리나라 농업생산액 대비 농업보조금이 매우 낮다는 걸 알고 있을 거네요. 유럽 연합(EU) 가입국이 22.3%이고, 미국 14.6%, 일본은 5.4%인데, 우리나라는 4.6%에 불과해요. 보조금을 확대하고 축산 직불금제 도입도 알아봐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들이 소를 키우겠다면 허용하겠습니까.

 

"일단 여건이 안 됩니다. 그러나 현재처럼 정부에서 농촌을 등한시 한다면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얘기를 바꿔보죠. 인생 2막의 '바꿔 살기'에서 무엇을 가장 중시했나요.

 

"일의 연속입니다. 인생의 가치는 태어나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중요해요. 적성에 맞는 일을 하게 되면 더욱 만족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노인이라고 해서 일하지 않으면 국가나 사회에 배반하는 것과 다름없어요. 일의 끈을 쉽게 놓아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직의 삶과 축산인으로서 길은 어떻게 다른가요.

 

"힘들기는 마찬가지예요. 축산은 몸이 고되지만 정신이 편합니다. 공직생활은 그 반대입니다."

 

-지방자치 부활 20년을 맞아 제도권 밖에서 본 행정이 궁금합니다.

 

"제대로 하는 게 문제지요. 집행부와 의회의 두 바퀴가 하모니를 이뤄 지역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선거로 책임자를 뽑다보니까 능력 없는 인물이 맡을 때는 그 부담이 주민들에게 돌아가곤 합니다. 간혹 관선 때가 좋았다는 말은 사전에 인물검증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 아닌가요. 그런 게 좀 미흡한 것 같습니다. 유권자들의 의식이 어느 때 보다 강조되는 건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또 행정은 농촌 살리기에 역점을 둬야 해요. 도시에만 공장을 유치할 게 아니라 농촌에도 공장 건립으로 농업소득과 공장 근로소득이 있게 해야지요. 소득이 없는데 누가 농촌에 남겠습니까. 말로만 그러지들 않았으면 합니다."

 

-새만금간척지원사업소장을 역임했습니다. 새만금 행정구역의 설정에 대한 합리적인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요.

 

"(잠시 말을 멈추고) 새만금 단독의 특구는 반대합니다. 대신 당초 개발계획을 구역 관리체계를 마련하는데 적용하면 되죠. 해안선을 따라 총 401㎡ 가운데 군산시가 285.25㎡, 김제시가 62.85㎡, 부안군이 52.90㎡를 관리하는 내용입니다. 그런 다음 어느 정도 여건이 성숙됐을 때 '새만금특별자치시'의 단일 행정자치단체로 만드는 겁니다. 통합기구가 총괄은 할 수 있겠지만 세부적인 구역관리를 위해서는 그 때 가서 이들 3개 시·군에 관리권을 주면 어떨까요. 그래야 상생도 가능할 거예요."

 

-꿈이 있으시나요.

 

"이 나이에 무슨…."

최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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