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조상진 선임기자 - 젊은 시절 독서로 얻은 지식·지혜가 '삶의 자양분'…책권하는 사회운동본부 출범…독서 분위기 조성 헌법은 인간의 존엄·행복 추구권 확보하는 기본틀
 
    의외였다. 그 동안 헌법과 형법 등 딱딱한 법만을 다루던 이석연 변호사(58)가 독서 예찬을 담은 책을 낸 것이다. 또 '독서가 국력'이라며 책권하는사회운동본부를 만들어 독서 전도사로 나선 것도 특이했다. 법제처장을 그만 둔 뒤 서울시장 출마 여부로 지난 해 가을, 뉴스의 한복판에 있다 사라져 궁금하던 차여서 더욱 그랬다. 책을 펼쳐보니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가 어떻게 어렵다는 고시 양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고 스피치와 문장에 자신감이 붙어 있는지, 그 비결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책 읽기와 개헌, 새만금 등 헌법소송, 고향 발전 등에 대해 듣고 싶었다. 인터뷰는 그가 대표변호사로 있는 서울 서초동의 법무법인 '서울' 집무실에서 가졌다.
- 안녕하십니까?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책권하는사회운동본부 일과 헌법과 관련된 공익소송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또 대학의 로스쿨이나 명사특강, 자치단체 특강 등에도 다녀옵니다. 그리고 생활 밀착형 시민운동 몇 군데, 가령 기부문화나 나눔, 청년창업 지원이나 양극화 해소 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반면 대외적인 정치성을 띤 활동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 이번에 〈책, 인생을 사로잡다〉를 내셨는데, 반응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이를 쓰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제 모토는 '책과 더불어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독서로부터 얻은 지식·지혜가 지금까지 삶의 자양분이랄까,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저를 키운 건 8할, 아니 전체가 독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문맹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데 책 읽는 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낮다고 하지 않습니까. 부끄러운 일이죠. 저는 '독서의 힘이 국력이요 국격이다'이런 생각을 해요. 그래서 국가적으로 책 읽는 풍토를 마련했으면 합니다. 저는 농촌출신으로 지방에서 크면서 내 삶이 항상 아웃사이더였지만 어디 뒤지지 않고 자신감을 가진 것이 젊은 시절 독서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에게 비주류로서, 이런 사람도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책을 읽는 방법이 독특한 것 같습니다. 유목(Nomad) 독서법은 뭡니까?
"제가 즐겨 인용하는 문구(文句)가 있습니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영원히 살아 남을 것이다.'이게 소위 유목정신이에요. 징기스칸에 앞서 몽골제국을 통일했던 돌궐제국의 명장 톤유쿠크(Tonyuquq)의 비문(碑文)에 새겨진 글입니다. 항상 개방적이고 이동적인 마인드, 또 창의적이고 열린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거죠. 책을 읽는데도 그게 필요합니다. 책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라, 또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책을 공부나 시험을 위해 읽는다면 지루하겠죠. 저는 그것을 탈피해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의 정신으로 독서를 하라고 권합니다. 3가지 방법을 제시했는데 중요하지 않은 내용은 건너뛰라, 여러 권을 겹쳐 읽어라, 재독(再讀)의 묘를 살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책에 빠져들게 됩니다."
- 그 동안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을 꼽는다면?
"젊은 시절부터 제 곁을 떠나지 않았던 10권의 책이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가 가장 큰 영향을 줬고 괴테의 〈파우스트〉, 조지훈의 〈지조론〉 그리고 〈낭만적인 고고학산책〉 〈동방견문록〉 〈예언자〉 〈진리의 말씀 법구경〉 〈노자 도덕경〉 〈손자병법〉 〈징비록〉도 꾸준히 제 삶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 지난 5월에 '책권하는사회운동본부'를 출범시켰는데 어떤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까?
"저는 책으로 인해 혜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독서는 성공하는 삶의 지름길이자 국가경쟁력이라는 신념을 내걸고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운동본부는 1·2·3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해 대표단 6명이 3권의 책을 가져와 1권은 청소년에게, 나머지 2권은 지인들에게 덕담과 함께 전달합니다. 책을 받은 사람은 매월 13일에 또 다른 지인들에게 3권의 책을 권하면 됩니다. 대표단과 운영위원 106명이 전달을 시작하면 1년 후에는 65만1264권의 책이 전달됩니다. 더불어 전자책 선물과 SNS를 통한 '메리북스마스''밸런타인북스데이' 등의 이벤트와 콘테이너 이동도서관, 취약계층·저개발국 청소년에게 책보내기 활동 등도 펼치고 있습니다."
- 이번 대선에서 대통령이 바뀌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는데 권하고 싶은 책은?
"〈권력의 조건〉과 〈징비록〉입니다. 권력의 조건은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의 포용의 리더십을 다룬 책입니다. 링컨이 라이벌까지 껴안고 등용해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난국을 극복해 냈습니다. 당선인도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을 주장하고 있어 권하고 싶습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직전의 국내외 정세부터 임진왜란의 실상과 왜란 후의 상황을 아주 냉철하게 서술한 경세서이자 역사서입니다.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꼭 읽었으면 합니다."
- 변호사님은 '헌법 지킴이''헌법 등대지기'라 불리는 등 유난히 '헌법정신'을 강조합니다. 헌법은 한마디로 뭔가요?
"헌법은 우리 사회를 떠받쳐주는 기본적인 틀입니다. 공기나 물처럼 국가의 기본틀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중요한 거죠.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 정도의 번영을 누리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꿈을 이루어 왔고 특히 우리 젊은이들로 하여금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해 그들의 꿈과 희망을 이룰 수 있도록 떠받쳐 준 것이죠. 제가 보는 헌법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한 축으로 하고, 또 그걸 달성하기 위해 법치주의, 적법절차, 그리고 기본권 존중을 한 축으로 해서 양축이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해야 합니다. 결국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 추구권을 최대한 확보하는 겁니다."
- 헌법소송의 전문가로서 지금까지 관여한 소송은 얼마나 됩니까? 이 가운데 특기할만한 소송은?
"저는 헌법소송을 공익소송의 일환으로 했습니다. 순수한 공익소송 목적으로 한 것이 150여 건 정도 됩니다. 그 중 30여 건이 위헌결정을 받았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인용률은 1-2%도 안 됩니다. 이러한 소송은 제가 무료로 한 것으로 사회의 기본 흐름을 바꿔 놓았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신행정수도 이전법을 비롯해 제대군인 가산점제도, 재외동포의 차별을 시정하는 헌법소원 등이 있습니다. 또 결혼식 때 혼주가 음식물을 접대하면 처벌받도록 한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과 민법 상속제도도 제가 위헌결정을 받아내 민법이 개정됐습니다.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등 정치관계법 10건도 위헌결정을 받았습니다."
- 이명박 정부의 첫 법제처장으로 들어가 각종 법령정비 등에 앞장섰는데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 2가지만 얘기하겠습니다. 하나는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했던 것이 국민 불편법령개폐센터를 만들어 대대적인 법령 정비를 한 점입니다. 국민에게 불편을 주는 법령들을 많이 고쳤습니다. 운전면허도 간소화했습니다. 간소화해 놓으니까 오히려 사고가 줄어들었죠. 당시에는 경찰이 (사고가 늘어난다고) 반대하고, 운전면허학원 사람들이 정부종합청사에 몰려와서 '이석연이 물러나라'고 데모도 하고 그랬습니다. 또 하나는 법제처가 법령을 심사할 때 정부부처 등 다른 눈치를 보지 않도록 확립해 놓았습니다."
- 국무회의나 국정감사에서 '쓴소리'를 많이 낸 정부내 유일한 '야당'이라는 평판을 들었습니다. 내각에 몸담고 있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사람들이 저에게 쓴소리 했다고 하는데 저는 그게 당연한 얘기에요. 그게 쓴소리로 비춰지는 것은 그만큼 국정 운영이나 법치가 원칙과 정도로 안 가고 있다는 것이죠. 예컨대 용산참사와 관련해 법원에서 수사기록을 공개하라고 판결을 했단 말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공개해야 하는데 검찰은 공개를 안 하려고 해요. 국회에서 당연히 공개해야 한다고 답변했더니 정부 입장과 다르게 말을 한다고 그래요. 야당은 잘 한다고 하고 오히려 여당이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 거예요. 언론관계법도 제가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MB한테 찍힌 거죠.(웃음)"
- 몇 년 전부터 개헌에 관한 얘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개헌의 방향에 대해?
"개헌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됩니다. 새 정부에서는 개헌 논의가 되어야 합니다. 권력구조는 많은 국민들이 동의하고 정치적으로 상당히 접근한대로, 대통령은 4년 중임으로 가고 부통령제를 신설해야 합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이른바 분권형 개헌은 한국 현실에 맞지 않기 때문에 저는 반대합니다. 그렇지만 개헌을 한다면 권력구조 보다는 국민의 기본권 향상을 위한 개헌이 더 중요합니다. 예컨대 소비자 권리, 환경, 정보사회로 이행하면서 IT와 관련된 새로운 기본권을 신설하는 것, 선언적 의미에 머물러 있던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사회권적 기본권을 하나의 구체적 권리로 헌법에 명시하는 게 필요합니다."
- 경실련 사무총장을 지낼 당시, 참여연대 사무처장이던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 등과 시민운동의 방법론을 놓고 논쟁을 벌였는데 그 과정에서 '시민운동이 너무 권력화되고 무오류 환상에 사로잡혔다'고 비판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시민운동은 법의 테두리 내에서 해야 하고 초법화, 관료화, 권력화 돼서는 안 됩니다. 즉 무오류성의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악법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법이나 제도는 고치는 절차적 과정이 필요합니다. 시민단체가 무조건 악법이다 하면 그 판단의 주체는 누구냐, 그게 문제란 말이죠. (16대)총선에서 낙선운동을 법이 금했지만 그 사람들이 했잖아요. 저는 낙선운동을 찬성한다, 그렇지만 법이 금하기 때문에 법부터 개정하자, 그래서 경실련에서는 정보공개운동을 했어요. 지금도 그게 시민운동의 정도라고 생각해요."
- 이후 뉴라이트 운동 등 보수 또는 우파활동으로 돌아서 의아하게 생각하거나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진보나 보수, 좌우로 나누는데 대해 굉장히 거부감을 느껴요. 헌법적 가치에 의해서 저는 활동을 했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주장한 것은 DJ정부나 노무현 정부 때 헌법적 가치를 주장하면 굉장히 보수적으로 비쳤어요. 또 MB정부 와서는 그런 걸 주장하면 진보적인 걸로 비치는데, 제 소신은 변하지 않았고 사회 흐름이 그렇게 간 거죠. 굳이 저를 얘기한다면 헌법적 실용주의자라고 주장하고 싶어요."
- 2011년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선언을 했다 접었는데요?
"처음에는 뭔가 크게 변화시키려고 했는데 여러가지 시(時)와 운(運)이 안 맞았죠. 언젠가는 여기에 대해 따로 할 얘기가 있을 겁니다."
- 새만금사업은 국책사업이자 전북의 숙원사업입니다. 새만금 소송에 참여해 승소하는데 크게 기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1심에서 진 걸 제가 2심부터 맡아서 뒤집어 놨어요. 대법원에도 나가서 헌법적 주장을 했고, 결국 확정시켜서 물막이 공사가 끝난 것 아닙니까. 새만금사업은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새만금 간척지를 막는다고 하면 저도 반대를 해요. 그렇지만 새만금 간척공사가 문제가 된 것은 이미 공사 시작 후 7-8년 뒤였어요. 그 상태로 놓아두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 유명했던 변산해수욕장도 가보니까 이미 다 죽었더라고요. 순수하게, 그야말로 고향을 위해서 공익소송을 한 거죠. 돈도 안 받고 욕도 먹어가면서 했지만 저는 신념을 갖고 했어요. 격려도 많이 받았고요. 그러니까 강현욱 지사가 수임료는 못주지만 나중에 간척사업해서 조금 땅을 떼어주겠다고 했다고요.(웃음) 도민의 이름으로 감사패를 받았는데 지금도 저는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거기서 주장한 것은 환경이 만능은 아니다, 환경과 더불어 환경과 조화된 개발도 헌법적 가치라는 거죠. 새만금이 대표적입니다."
- DJ와 노무현, 이명박 정부 등 누가 정권을 잡든 전북은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대개 호남 몫이다, 전북 몫이다 해서 호남출신을 요직에 앉혔다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 이 사람들 마음은 호남을 떠난 사람들이라고 봐요. 그 사람들, 전북에 관심 없어요. 한때는 전북이나 호남 출신이라는 걸 감추고 다니던 사람도 있었어요. 한 둘이 아니에요. (내각 등 인사에서) 호남 대표처럼 지역안배라고 하는데 진짜 하려면 제대로 된 호남사람을 임명해야죠. 장차관 뿐 아니라 그 밑에 자리도 그래요. 저는 어디든 강연할 때 호남사람이고 전북대학교 나왔다고 얘기를 해요. 제가 지방에서 컸고 지방대학을 나왔는데도 이 정도까지 왔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애향심을 느끼는 거죠. 누가 정권 잡는 것과 관계없이 정말로 전북을, 호남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그게 제대로 안되니까 아쉽죠. 정부의 정책라인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했는가, 그런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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