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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경제학이 푸는 가격차별의 비밀

조승규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

 

유학생 시절 필자는 어느 여름 막바지 시어즈(Sears) 전자제품 매장의 세일이 시작하기를 기다려 쇼핑에 나섰다가 기이한 광경을 목격한다. 매장 뒤켠의 창고에 인부 몇이서 둘러앉아 새 것인 듯 보이는 냉장고나 TV의 포장을 뜯더니 작은 망치로 여기저기에 일부러 흠집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이 흠집 난 물건들은 대충 비닐포장이 되어 지게차로 곧장 매장으로 옮겨지더니 정가보다 10% 낮은 가격으로 전시되는데, 판매원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원래는 새 물건들이지만 운반과정에서 흠이 생겨 할 수 없이 할인판매를 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옆에는 흠집 없는 똑같은 상품들이 근사하게 포장되어 정가로 판매되고 있다.

 

매장창고에서의 이 기이한 망치질의 이면에는 어떤 진실이 숨어있는 걸까? 경제학은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가지고 있다. 가격이 너무 낮으면 이윤이 줄어들고 너무 높으면 고객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새 물건에 흠집을 내는 망치질은 고객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윤 또한 손해보지 않고자 하는 소위 '가격차별 전략'의 한 기술이다.

 

사람들은 가능하면 싼값에 재화를 구입하고자 하지만 특정 재화에 대해 지불할 의사가 있는 최대가격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물건만 마음에 든다면 어떤 가격이든 지불할 의사가 있는 '된장녀'가 있는 반면, 일년 내내 창고세일을 기다리는 유학생도 있다. 문제는 판매자 입장에서 누가 된장녀이고 누가 유학생인지 쉽게 파악할 수 없다는데 있겠는데, 위의 매장에서는 일부의 물건을 약간의 흠이 있는 것처럼 가장해둠으로써 이게 싫은 '된장녀' 고객은 높은 가격에 정상품을 구입하도록 유도한 채 가격에 민감한 고객들에게만 낮은 가격을 받고자 하는 마케팅 기술인 것이다.

 

소비자들의 타입이 쉽게 파악되는 경우 가격차별은 훨씬 직접적이다. 지난 달 같은 미장원의 같은 미용사에게 같은 종류의 머리커트를 했으면서도 나보다 아내가 50% 가깝게 높은 가격을 지불한 것은,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머리스타일에 더 민감하여 비싼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음을 미장원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 흔히들 미장원에서 변명하는 것처럼 비용차이 때문이 아니다. 여자와 남자를 구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외견상 쉽게 소비자들의 타입을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에 가격차별의 현란함은 더욱 그 빛을 발한다.

 

또 하나의 예. 회사비용으로 여행하는 출장자들은 항공요금에 덜 민감한 반면 한 학기 내내 아르바이트하였다가 주말 배낭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들은 싼 항공권이 긴요할 것이다. 그러나 항공사는 누가 출장자이고 누가 배낭족인지 직접 판별해낼 수 없다. 이 때 가격차별의 기술은 출장자와 배낭족을 구별짓는 제 3의 특성들을 파악해낸 후 이를 기준하여 다른 가격을 매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여행목적지에서 반드시 주말을 보내고 돌아와야 한다는 이상한 제약은 가만 보면 출장 후 가족들과 주말을 보내고 싶은 비즈니스맨들이 회피하고 싶은 제약이겠기에 출장자들은 높은 가격이지만 이런 제약이 없는 비싼 항공권을 기꺼이 구입할 것인 반면, 배낭족들은 값만 싸다면 이런 제약들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항공사가 사전적으로 여행자들의 타입을 몰랐다 하더라도 엄선된 제약이 딸린 상품들을 디자인한 후 여행객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면 사후적으로 출장자들과 배낭족들은 구별되는 것이다. 가격차별의 기저는 소비자의 지불의사이며 다양한 지불의사를 가진 소비자들을 성공적으로 분리해내는 기술이 곧 가격차별의 핵심이다.

 

여담 하나. 어제 필자는 지난 휴가 때 여행날짜를 바꿀 수 있는 비싼 항공권을 구입했다가 아내에게 구박을 받았다. 한편 다음 달에도 필자보다 50% 비싼 가격에 머리손질을 할 아내에게 필자는 다음 번엔 남장을 하고 미장원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권고해볼 참이다.

 

*조승규 교수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네덜란드 자유대학교 및 싱가포르 경영대학교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필자는 경제칼럼란을 통해 '일상에 숨겨진 경제학의 비밀'에 대한 글을 연재할 계획이다.

 

/ 조승규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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