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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은 한국 천주교 신앙의 주춧돌 놓은 성지”

호남교회사연구소장 김진소 신부

▲ 천주교 호남교회사연구소 소장 김진소 신부는 한국 교회사에 있어서 전북은 천주교 신앙의 주춧돌을 놓은 성지라고 말한다. 안봉주기자 bjahn@
주한 교황대사가 최근 전북을 방문하고 나서 교계에서 바짝 주목받는 사람이 있다. 교회사발굴과 연구에 일생을 던진 천주교 호남교회사연구소 소장 김진소 신부다. 전북 종교문화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2014년 로마교황청의 세계순례대회 개최지로서 전북이 나서게 된 것도 그의 치열한 열정 때문에 가능해졌다.

 

‘교황 모시기’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지난 7일 완주군 비봉면 천호마을에 살고 있는 김 소장을 찾아갔다. 천호산을 배경으로 천호성지 입구에 자리한 호남교회사연구소에서 이날 오후 2시30분쯤 만났다. 인가받지 못한 상태에서 설립해 28년 동안 고집으로 혼자 이끌어 온 연구소답게 직접 지은 집이다.

 

문밖 노출을 꺼리는 성품에다 두 차례의 사고와 병환 후유증으로 필담도 어렵다며 사양하던 인터뷰는 처음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농담 한번 없이 주위가 어둑해져서야 끝이 났다. 천주교 교회사에서 전북은 어떤 곳이었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한국 천주교 신앙의 주춧돌을 놓은 교세가 가장 컸던 성지”라고 잘라 말했다.

 

-대학을 공대로 진학했다고 들었습니다. 왜 사제의 길로 바꿨나요.

 

“그래요. 대학에 입학해 토목공학을 전공했죠. 어렵게 성장했기 때문에 돈 벌어 나처럼 힘들게 공부하는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줄까 생각했던 겁니다. 하지만 학교 들어가서 자유당 정권의 정치적 혼란상을 겪으며 교회와 정치현실에 불만이 차올랐어요. 제대 후 1963년12월 성탄절 전날 평생 가야 할 길이 계시됐습니다. 우연히 종소리에 끌려 서울 명동성당에 갔다가 어느 신부의 강론 중 ‘평화’라는 두 마디가 내 영혼까지 흔들어 놓았습니다. 사제가 되어 평화를 위해 대장간 모루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 길을 결심했어요.”

 

 

-교회사연구에 파고든 계기가 궁금합니다.

 

“1973년8월 모교인 대건신학대학(현 광주가톨릭대학교)에 교수로 부임하면서 기회가 온 거죠. 대학 측에서 신학의 토착화와 한국교회사 체계를 연구해 달라는 것이었어요.”

 

 

-원인이 그뿐인가요.

 

“난 역사전공자도 아니었고 토착화를 깊이 생각해보지도 못했어요. 그러나 한국천주교사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은 갖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19세기 말 서세동점(西勢東漸) 시기에 한국 선교를 책임졌던 프랑스 선교사들이 자국 이익을 위해 프랑스제국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들의 순교자적 수고는 그렇더라도 그런 외국인의 복음 해석이 한국인의 감정으로 가능했을까요. 일하던 대학도 예수회 미국인 신부들이 운영해온 터라 외국어 강의를 사람들이 얼마나 강의내용을 이해하고 신자들에게 제대로 강론을 펼 수 있겠어요.”

 

 

-교회사도 그들 손에 쓰여졌겠어요.

 

“당시 한국교회사 연구는 일천했지요. 놀랍게도 천주교를 알 수 있는 것은 고작 프랑스 신부들이 기록한 한국천주교회사가 전부였어요. 궁리 끝에 순교자의 후손은 물론 박해를 겪은 신자 후손들을 찾아 사료 답사에 나섰습니다. 전국 산골 교우촌을 돌아다니며 자료들을 모아냈죠.”

 

십수년 동안 진행된 사료 수집과 역사의 현장답사에는 새 신발 두 켤레가 해어지고, 배낭 메고 산골을 헤매다가 종종 간첩으로 몰려 곤혹을 치렀다는 얘기들이 이어졌다.

 

 

-그때쯤 연구소가 필요했겠네요.

 

“교회사연구는 서울교구 한국교회사연구소 한 군데뿐이었죠. 지방역사는 그 지방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 책임져야 합니다. 지방에도 지역 교회사를 맡아야 할 연구소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1983년5월 호남교회사연구소가 탄생된 배경이에요. 천주교 역사는 전북문화의 하나로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천호성지는 어떤 곳입니까.

 

“천호산에는 1866년(고종 3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명서 손선지 정문호 한재권 등 4인이 묻혀 있어요. 1984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와 한국 성인 시성식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성(諡??죽은 후 성인품으로 올리는 일)한 분들입니다. 이 분들과 함께 1868년 여산에서 순교한 다른 분들도 묻힌 성지거든요. 호남교회사연구소는 1983년 이곳에서 순교자 유해 12위를 발굴했어요. 그러나 천호성지는 이처럼 예수와 관련된 거룩한 땅이 아니라서 성지(聖地)가 아닌 순교 현장이나 순교자 묘지의 거룩한 터로 쓰이는 성지(聖址)로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최석우 신부와 결정했습니다.”

 

 

-유항검 일가의 순교는 어떻게 일어났나요.

 

“호남지역에서는 1801년 신유박해로 전국 희생자의 두 배가 넘는 200여명이 목숨을 바치거나 빼앗겼습니다. 그 가운데 전라도에 최초로 천주신앙을 받아들인 유항검이 대역부도(大逆不道)죄로 1801년9월 전주 전동성당 터에서 동생 유관검과 함께 처형됐어요. 10월에는 연좌형으로 동정생활을 했던 큰 아들 유중철과 둘째 아들 유문철이 전주 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고요. 12월에는 그의 부인 신희와 큰 며느리 이순이, 그리고 유관검의 부인과 아들이 전주 숲정이 성당에서 참수형을 받았던 거죠. 유항검은 넉넉했던 재산을 조정에 몰수당하고 김제군 용지면 남정리 바우백이에 버려지듯 묻혔다가 전동 성당을 세운 프랑스인 보두네 신부 등의 도움으로 일가족과 치명자산의 현재 장소에 안장됐습니다.”

 

유항검의 이종사촌인 윤지충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박해 사건인 1791년 신해박해로 전주 전동성당 터에서 참수형에 처해졌다. 전북에서 첫 순교자를 배출한 것이다.

 

 

-다른 얘기를 하죠.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가 일본 이등박문을 처단한 거사의 밑바탕에는 천주교의 종교적 힘이 깔려 있다고 하던데요.

 

“안 의사는 1897년 1월 온 가족과 천주교 세례를 받았어요. 고향인 황해도 청계동에서 1905년까지 본당신부의 사무장과 교리교사로 봉사활동을 하는 등 독실한 신자였지요. 국채보상운동 등에 투신하고, 1908년부터 의병전투에도 참가했습니다. 평소 ‘동양평화론’을 주창해 오던 참에 동양 여러 나라가 동맹 평화를 이루는데 가장 걸림돌이 이등박문이라고 단정해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사살한 것 아닙니까. 분명 천주교인의 의식이 작용했다고 봐야지요.”

 

 

-그 의거를 가톨릭계는 부정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나요.

 

“천주교 십계명의 하나인 ‘살인하지 말라’는 대목에 반한 것으로 본 거예요. 독립군 중장의 자격으로 적을 저격하였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고 ‘살인자’로 단죄했던 겁니다. 일제시대가 끝나고 수십년이 흘렀어도 의거는 인정하면서도 제도교회는 그 죄명은 벗겨 주지 않았습니다.”

 

-같은 신부로서 어떻게 보셨나요.

 

“분노할 노릇이죠. 그래서 내가 1986년부터 3회에 걸쳐 한국천주교회가 일제치하에서 저지른 친일행위와 반민족적 태도를 지적한 논문을 발표했어요. 두 가지 제안을 내놓았지요. 한국교회 주교단은 안 의사의 살인자 누명을 벗겨 주고 민족 앞에 사과하라는 요청과 한국천주교회가 공식적으로 공경하는 ‘가경자(可敬者)’로 모시는 운동을 제안했습니다. 특별한 공경을 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겁니다.”

 

김 소장은 한국교회사연구소가 1993년8월 서울 혜화동 가톨릭 신학권 강당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기념 학술 심포지엄에 논평자로 참석해 김수환 전 추기경을 만났다. 김 추기경은 “교회 대표자로서 사과하라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했다. 한국천주교회의 수장이 처음으로 과거 교회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안 의사의 살인죄 죄목을 벗겨 준 것이다.

 

 

-우리는 신앙선조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선조들은 이 세상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세상이건 생명이건 하느님이 맡겨 주신 것, 보관하신 것을 빌려 쓰는 것으로 여겼던 거죠. 이웃과 사회에 많은 재물을 나눠주고서도 자랑은커녕 묻는 것을 부끄러워했지요. 세상 어느 것에도 목 매달리는 일이 없었어요.”

 

 

-천주교 문화유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과제가 됐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건축물의 가격이나 규모보다 역사적 가치가 중요시 된다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박해를 경험한 사람들의 손으로 이루어진 유산이며, 한국천주교만이 살았던 독특한 관습을 그 안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여기에다 한국 고유의 정신성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문화적 가치는 신앙 정신이 앞서야 높아집니다. 건물이 담고 있는 정신성이나 사상성이 강화된다면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일 것으로 생각해요.”

 

 

-전북이 2014년 로마교황청의 세계순례대회 개최지 유치에 나섰습니다.

 

“세계 순례대회는 천주교 성지가 그 대상입니다. 전라도는 신흥종교들의 고향이죠. 2009년 순례길 계획 과정에서 이런 상황을 감안해 동서종교가 상생의 차원에서 손을 잡고 진리의 여정을 걸어야 한다고 제안했지요. 천주교 측이 ‘아름다운 순례길’을 개신교, 불교, 원불교, 증산교 등과 아울러 진행하고 있는 건 세계 유래가 없습니다. 교황청에서도 전북이 추진하고 있는 순례문화를 특이하게 여기고 관심을 가질 거예요. 한국천주교회는 125명의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어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여 시복시성식을 거행하고 그 연장으로 세계순례대회도 갖고 싶어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떤 신부로 남고 싶습니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무얼 하든지 최선을 다해온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최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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