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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내 차례다

이강만 …한화그룹 상무

 
몇 해전 몹시도 무더웠던 여름 날, 고교 은사님이 회사 앞 청계천이라면서 전화를 하셨다.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 가 보니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1미터가 훨씬 넘은 서예액자를 들고 계셨다. 좋은 글귀가 있어 서예가이신 다른 선생님께 부탁해서 글을 쓰게 하고 표구를 하셔서 오신 거라고 하셨다. 칠순을 넘기신 분이 제자를 위해서 그 무거운 것을 들고 전주에서 오신 걸 생각하니 그냥 목이 메었다.

 

차 한잔 모시겠다며 소매를 끄는데도 업무에 바쁠 테니 빨리 가지고 들어 가라며 한사코 손을 내저으시는 선생님을 보내면서 한편으로는 죄스러움과 또 한편으로는 아직도 내 영혼에 자양분을 공급해주고 있는 고향의 어른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하기도 했다.

 

그 뒤로도 선생님은 당신이 문학잡지에 기고하신 글이며 우리 두 아들을 생각하면서 서점에 들러 고른 좋은 책들을 수시로 보내셨다. 요즘은 전주 갈 일도 적어지고 선생님 또한 거동이 불편하셔서 서울 나들이가 뜸한 탓에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집안에 걸려 있는 그 서예액자를 볼 때마다 선생님의 인자하신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고향에서 오는 것이 이것만이 아니다. 때에 따라 봄이면 두릅이 오고 여름에는 상추, 고추, 호박, 오이가 오고 가을에는 오미자가, 겨울에는 김장김치가 온다. 그리고 수시로 쌀이 올라오고 요즘은 그 유명한 장수사과가 온다. 부모님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처 부모님이 장수에 계시기 때문에 철 따라 먹거리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먹거리에 묻어서 함께 따라오는 훈훈한 고향 인심과 자식 사랑과 아련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세파에 찌든 심신에 활력을 주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매양 고향에서 받기만 하다가 어느 날 문뜩 이제는 고향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나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면 방법이 생기고 꿈을 꾸면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이가 나타나는 법인가 보다. 그 때 마침 재경 장수 출신 모임인 벽계포럼 회원 몇 명이 같은 고민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시작한 일 중 하나가 고향 중학생들 서울 초청행사다. 대처라고는 구경한 적이 없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들에게 꿈을 키워주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벌써 세 번째를 맞이한 것이다.

 

첫 해는 63빌딩에서 시작하여 서울시내와 롯데월드를 도는 것으로, 그 다음 해에는 국회에서 시작하여 서울시내, 롯데월드 순으로, 이번에는 청와대에서 시작하여 그 다음은 동일한 순으로 1박 2일 구경을 시켜주는 것인데 상경 첫날 밤에는 고향 선배들, 즉 포럼의 회원들이 모두 참석해서 함께 식사를 하며 학생들을 격려하고 꿈을 심어주는 얘기를 전한다.

 

이번 행사에 초청받는 학생들은 장수군내 학업 우수 중학생 30여명이었는데 그 중 이웃 마을 사는 아이가 몇 있어서 아버님 성함을 물어보니 대충 누군지 알만한 사람들이었다. 고향을 지키며 자식들을 훌륭히 키우고 있는 그 후배들이 참으로 대견하였고 그 아이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서 어디에 있든 고향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여러 사람이 자그마한 정성과 노력을 합하고 보니 너무나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것을 보고 우리에게는 또 다른 과제가 생겼다.

 

고향의 우리 후배들이 혹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이제 우리가 나서서 해결해 주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제 뜻을 같이 할 사람들을 찾아 나서야겠다. 오늘의 나를 키우건 팔할이 고향 아닌가?

 

 

△이강만 상무는 장수 출신으로 전주고,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을 거쳐, 현재 한화손해법인 법인영업부문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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