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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썰매 3개종목 출전 세계 유일한 기록 남겨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죠"

강광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FIBT)부회장

▲ 전주 출신 강광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FIBT)부회장이 지난해 2018 평창올림픽 조직위 스포츠 디렉터로 활동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하며 환하게 웃고있다. 안봉주기자 bjahn@
▲ 강광배 교수가 이끄는 한국봅슬레이 국가대표팀이 처음 출전한 2010 벤쿠버동계올림픽에서 결선 레이스에 진출, 19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그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스포츠 스타다. 그는 1998년 나가노를 시작으로 2010 밴쿠버까지 루지와 스켈레톤, 봅슬레이 등 썰매 전 종목으로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선수다. 그래서 동계스포츠계에서는 그를 썰매종목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는 개척자 '광배 강'이라고 부른다. 스위스의 IOC박물관에는 그가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스켈레톤)에 입고 출전했던 운동복과 모든 장비가 전시되어 있다. 터놓고 이야기 하자면 지난해 2018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성공 뒤에도 그가 있었다. 2002년 평창 유치위원회에 합류해 스포츠디렉터로 활동해온 그는 10여 년 동안 각 국가의 동계올림픽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스포츠외교력을 쌓았고, 마침내 그 진가를 지난해 유치 경쟁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름은 정작 그의 고향인 전주와 전북에서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궁금했다.  국제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강광배 부회장(40)을 만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자랑스러워도 한참 자랑스러워야할 그의 이름이 왜 고향에서는 내세워지지 않는 것인지.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 시작부터 그는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국제연맹 부회장 자격으로 미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참석하고 막 귀국한 그는 곧바로 국제경기장 승인을 위해 러시아 소치 방문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얼마나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덕분에 인터뷰는 평창까지 가지 않고 서울에서 진행됐다. 지난 1일, 휴일임에도 기꺼이 시간을 내준 강 부회장은 그의 도전이 그랬듯이 열정적으로 지난 삶을 들려줬다. "시련이 없었다면 오늘의 이 자리도 없었다"고 말하는 그가 왜 대한민국 썰매종목의 역사인지 알게 됐다.

 

 

-'강광배'란 이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참 대단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주출신이어서 더 반갑더군요.

 

"전주 토박이예요. 고향을 떠난 지 10여년 밖에 안되었는데 그사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오스트리아 유학중에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제의로 들어오신 것으로 압니다. 막 올림픽 유치가 시작되었을 때죠.

 

"1998년에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당시 루지 국가대표였는데 루지를 더 공부하고 싶어 택한 일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한 도전이었죠. 독일어 한마디도 못하면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겠다고 나섰으니까요. 어렵게 어학과정 통과하고 박사과정에 들어갔는데 강원도에서 제안이 왔어요. 2002년이었죠. 스포츠매니지먼트에 관심이 많아서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끌렸습니다."

 

 

-그때라면 평창과 무주가 동계올림픽을 두고 국내 경쟁이 치열했을 때 아닌가요.

 

"다행히 제가 들어왔을 때는 이미 평창 쪽으로 결정되고 무주는 대신 태권도공원 건립이 결정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제가 평창으로 갈수 없었겠죠."

 

 

-이런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오해 할 수도 있겠는데요. 고향의 경쟁지역을 위해 일한다구요.

 

"물론이죠. 이미 정부에서 평창으로 결정한 후였는데도 왜 전북 사람이 강원도 가서 일 하느냐고 비판이 쏟아졌어요. 당시 제 모교에 객원교수로 나갈 때인데 얼마나 그 강도가 심했냐면 총장님한테 그런 사람은 출강 시키지 않아야 된다는 민원까지 있을 정도였어요. 졸지에 '매향노'가 된 거예요. 올림픽이라는 것이 전국체전도 아니고 국가를 위한 일인데 억울하기도 하고 상처가 컸습니다." (가볍게 한 이 질문에 그는 가슴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쏟아냈다)

 

 

-전북으로서는 후보지 경쟁에서 지고 난후 상실감이 컸었는데, 그 때문에 강 부회장님께 더 큰 상처를 안긴 것 같습니다.

 

"지난 일이니 이제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원망스러움이 컸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었거든요. 평창과 무주가 유치 경쟁을 할 때 오스트리아 유학중이라고는 해도 고향에서는 연락 한번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요."

 

 

-지금은 2018평창올림픽 조직위 스포츠 디렉터로 활동하시지 않습니까. 이제 고향에서도 국가를 위한 노고에 모두 박수를 보낼 겁니다.

 

"저도 고향을 위해서 할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나설 생각입니다. 사실 무주는 우리나라 동계스포츠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저만해도 무주리조트가 아니었으면 동계종목을 시작할 수 없었겠죠. 제 인생에서 무주는 그만큼 의미 있는 곳입니다."

 

-썰매종목 이야기 좀 해주시죠. '강광배가 대한민국 썰매종목 역사'라고 하던데 그런 평가를 들으면 어떻습니까.

 

"사실이니까 그러려니 합니다."(웃음) 우리나라 썰매종목의 역사가 참 짧거든요. 그 역사를 처음 시작한 것이 저구요. 그래서 늘 외로웠지만 그 대가를 과분하게 받고 있는 것이죠."

 

 

-썰매종목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종목입니다. 경기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세 종목이 있습니다. 누워 타는 썰매인 루지, 그것과 반대로 엎드려 타는 스켈레톤, 그리고 봅슬레이예요."

 

 

-선수층은 어떻습니까. 경기 시설도 그렇고 고가의 장비도 그렇고 활성화는 어렵지 않을까요.

 

"대중화는 아직 먼 이야기고, 선수 선발도 쉽지 않아요. 그래서 태권도 유도하는 선수들을 썰매종목 선수로 전환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봅슬레이 경우는 2003년에 강원도청에서 봅슬레이 실업팀을 만들었어요. 2003년 7월에 체코 프라하에서 동계 올림픽 유치에 실패하고 난 직후예요. 그때 실패 원인을 분석해보니 썰매종목 선수가 많지 않은 것도 큰 약점이더군요. 그래서 당시 김진선 강원도 지사께 요청했어요. 썰매팀 하나 만들어달라고. 그것이 봅슬레이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강원도에서 봅슬레이 팀을 안 만들었으면 동계올림픽에 나가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썰매 세 개 종목에 모두 출전하셨는데요. 세계에서 유일한 기록이라고 하던데요.

 

"제가 국제연맹 부회장이 된 것도 그 덕분입니다. 세 개 종목 모두 올림픽 나간 것은 전 세계 저 하나 뿐이거든요. 그래서 썰매 하는 사람들에게는 제가 '새로운 역사'입니다. 부회장 될 때 모든 위원들이 썰매 3개 종목으로 출전한 유일한 선수라고 저를 대단히 높이 평가했습니다. 썰매종목에 그런 기록을 남겼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 이예요. "

 

 

-썰매종목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썰매종목은 짧은 역사지만 스피드 스케이트나 쇼트트랙, 피겨 등 빙상종목에 이어 성적을 잘 내고 있는 것이 썰매예요. 대한민국에 제일 늦게 들어온 것이 썰매종목인데, 세계선수권대회나 올림픽에서 다른 종목에 비해 아주 성적이 아주 좋습니다. 이제 올림픽에서 메달 따는 것이 희망이죠."

 

 

-기사에서 보니까, 봅슬레이·스켈레톤 국제연맹 사무총장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던데요. 그리고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도 그분의 도움이 컸다는.

 

"제 정신적 멘토이면서 사적 관계로는 아버님으로 모십니다. 2018 평창 유치 작업 과정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사적 공적 국제관련 정보를 다 지원해주셨거든요. 40년 동안 국제연맹에서 일하면서 쌓아온 노하우를 저에게 그대로 전수해주신 셈입니다. 지금도 국제관계에서는 가장 큰 지원자입니다."

 

 

-10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을 긴박하게 해내셨군요. 스키 활강에서 내려오는 속도처럼.

 

"작년까지만 해도 저는 학생이었어요. 2008년 연세대에서 과정을 다시 시작해 박사학위를 마치고 그해에 미국에 갔어요. 2002년 동계올림픽 열렸던 솔트레이크시티였죠. 그곳 유타대학에 가서 스포츠외교를 공부했습니다. 대한체육회의 스포츠 인력 양성 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1년, 그리고 자비로 2년을 더 공부했습니다."

 

 

-스포츠매니지먼트나 스포츠외교 영역은 아직 낯선 분야 아닌가요.

 

"제가 개척하는 일은 좀 잘하지 않습니까.(웃음) 국제 관련 일을 하면서 우리 체육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시작했는데 국제연맹 부회장을 맡고 보니까 더 절실해지더군요. 젊은 세대들이 스포츠 외교 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고 싶고, 국제심판도 많이 배출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운동하는 사람들이 좀 더 다양한 영역으로 관심을 갖고 외국으로 나가 자격증도 따고 외교 쪽에서 일할 수 있는 경험을 쌓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글로벌 스포츠 인재 양성이 중요합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잘 준비 되고 있습니까. 평창 유치를 위해 정말 열심히 뛰셨는데요.

 

"두 번 실패하고 세 번째 성공했는데, 저는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많은 공부를 했거든요. 선수출신으로 평창올림픽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스포츠 외교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2010년 국제연맹 부회장이 된 후로는 국제 교류 활동도 더 적극적이고 다른 차원에서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치루기 위해 할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활동 이야기를 들으니 평창이 참 부럽습니다. 무주를 동계스포츠로 잘 활용할 방법은 없을까요.

 

"무주는 태권도 공원이 들어서기도 하지만 무주리조트는 아직도 동계스포츠 종목으로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우선 국제적인 스포츠이벤트를 잘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축제가 이어져야 도시가 발전합니다. 일단은 태권도 공원을 잘하면 좋을 것 같고요. 무주리조트 시설도 잘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전주 빙상경기장도 연계할 수 있지 않나요. 대부분 메가급 국제대회만 생각하는데 사실 동계종목의 세계선수권대회가 많습니다. 스키점프 올림픽 같은 것도 유치하면 아주 좋겠죠. 그런 종목을 유치하면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있습니다. 시설 활용도 하고. 그래서 재 생각으로는 종목별 대회 같은 것을 유치해서 동계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부회장님의 역할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고향을 위한 일인데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야죠. 사실 무주리조트는 동계스포츠 분야에 아주 큰 기여를 했습니다. 스키 대중화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컬링도 무주리조트에서 시작되었어요. 스키점프도 그렇고. 동계 유니버시아드도 유치했지 않습니까. 무주리조트에는 에어리얼 시설도 있어요. 그런 경기장을 활용하면 얼마나 좋아요. 동계스포츠 경기 중 에어리얼 시설 있는 유일한 곳이 무주예요. 프리스타일 스키 중에 체조처럼 공중에서 묘기부리고 떨어지는 시설이죠. 그런 대회를 유치하면 국제연맹에서도 다 지원합니다."

 

 

인터뷰 말미 그는 전북이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쏟아냈다. 한때나마 그를 '매향노'로 몰아붙였던 고향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도 다 잊은 듯 했다. 그의 제안에 귀담아 들을 이야기가 많았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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