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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꿈'이다 깨고 싶지 않은

이근영 삼도헌 운영실장

 
2015년 어느 봄날 토요일, 아들과 남편과 친정언니와 함께 전주천변에 자리 잡은 국립무형유산원 공연장에서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무형유산센터가 주최한 아시아명인들의 공연과 전시를 보고 나오니 입구에 '아시아아트빌리지'가 활짝 열려있다.

 

베트남 부스에 들어서자마자 언니는 열대과일 뷔페와 라우 까우(과일묵) 패키지 시식대로, 아들과 남편은 손과 발로 차는 다까우(전통제기)와 네이삽(전통 대나무 줄넘기) 놀이체험장으로 달려간다. 나는 태국부스로 건너와 코코넛 신발도 신어보고 결혼이주여성이 파는 어깨에 메는 색채와 문양이 신선한 작은 천 가방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지갑을 열었다. 다 함께 몽골 전통가옥 게르에서 유학생들이 준비한 '서툰 이야기와 그림이 있는 전통노래공연'을 보는데 아들이 속삭인다. "엄마 하우스콘서트다!"

 

아들은 어느새 몽골유학생 청년과 터우마갈(솟대) 앞에서 서로 그림을 그려가며 무슨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중국 존에서 시부모님 드릴 오인월병을 사고, 티베트부스에서 오늘을 기념할 오색양말 하나씩을 사들고 '아시아아트빌리지'를 나와 남천교를 지나 한옥마을에 들어서니 길거리 아트마켓에 지역예술가들이 내어놓은 한지스카프가 눈에 띈다. 방금 산 태국 천 가방이랑 너무 잘 어울릴 것 같다.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서 오늘 쇼핑한 한지스카프를 두르고 태국 가방을 메고 티베트 양말까지 신고 보니 아시아 세 나라의 천연재료와 색깔과 문양이 맞춘 것처럼 조화롭다. 남편은 국립무형유산원 전시장에서 보았던 공예품 팸플릿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일본 대나무소쿠리를 응용한 수납용품 '만들기 궁리'에 빠진 것 같고, 아들은 낮에 만난 몽골유학생과 이모티콘으로 대화하며 킥킥거린다. 다양한 아시아가 내 몸에서, 우리 집에서 노래하는 것 같다. 물론 이건 꿈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의 하루는 어땠을까?

 

그녀는 오늘도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베트남에서 도착한 모자재료들을 준비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아시아아트빌리지에 방문객들이 정말 많이 온다.

 

2011년 봄, 경기전 앞에서 열렸던 아시아태평양무형유산축제 '아태빌리지'에 처음 참가할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다니던 문화의집에서 부탁해서 베트남 모자 만들기 체험프로그램의 자원봉사자 정도로 참여했었는데 2012년~2013년에 걸쳐 전문예술가에게 그림그리기 지도를 받고 모자에 그림을 그려 넣기 시작하면서 나도 예술가가 된 듯하다. 물론 지난 3년여 시간이 쉬웠던 것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들이 기꺼이 힘을 모아서인지 매번 고비를 잘 넘겼다.

 

손님들도 2011년에는 베트남 모자를 이국적인 체험상품정도로 알고 값싸게 사갔다면 지금은 예술작품 대접을 해준다. 베트남에 있는 친구들과 부모님께 넉넉하지는 않지만 모자 재료값으로 얼마라도 부칠 수 있어서 좋고, 주말만 팔아도 용돈은 되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인연을 맺은 가족들이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신이난다. 다른 지역에 사는 베트남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해서 미안할 정도다.

 

걱정이 있다면 베트남 모자에 한국에서 좋아하게 된 풀꽃 등을 그리게 되면서 점점 국적이 없는 공예품이 되어가고, 그림공부하면서 한국말이 많이 늘어서 "진짜 베트남 사람이에요?"라고 묻는 손님들이 가끔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큰일이긴 한데 지금은 이 꿈에서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1년 정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 고장 외국인주민 2만3천여 명 중 92.9%가 아시아에서 태어났고, 결혼이주여성 중 98%가 아시아 각국에서 우리 고장으로 살러왔다.

 

아, 아시아! 한국을 포함한 '다양한 아시아'가 날마다 노래하게 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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