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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태 시인은, 서정주 시인의 동생…'미당시문학관' 지킴이

미당 서정주(1915~2000)의 동생으로 알려져 있지만 미당에 가려 그늘진 삶을 산 인생이다. 공교롭게도 이젠 미당을 지키며 인생을 살고 있다.

 

아들 딸 다 키우고 68세 때 부인을 떠나 보낸 뒤 1989년 "나를 해방시켜 달라"며 글 읽고 시도 쓰면서 조용히 살기 위해 이 집(우하정)을 샀다. 뒷산(소요산)에 오르며 난초 캐는 재미에 푹 빠져 있던 때도 있었다. "난초에 빠지면 병이 된다"며 1촉에 1억원 이상 가는 난초도 있다고 했다. 모아 둔 난초를 모두 도둑 맞았다. 몸이 불편해 일산에 있는 20평짜리 문촌(文村=글마을) 아파트로 옮겼다가 9년만에 질마재로 내려왔다. 2009년의 일이다. 자의반 타의반이라고 했다.

 

농림수산부가 농촌공존 정책의 하나로 40억원 규모의 사업을 추진할 당시 질마재가 혜택받기 위해선 우하가 필요했다. 미당시문학관 지킴이가 된 것이다. 이때 흙집도 새로 지었다.

 

우하는 3남2녀중 셋째다. 위로 미당과 누이, 아래로 동생 둘이 있다. 미당 생가는 우하 생가이기도 하다. 그 집에서 미당이 났다. 미당과는 여덟살 차이다. 미당과 우하는 어려서 한 방에서 지냈다. 미당이 열살, 우하가 두살 무렵 부안 줄포로 이사를 갔다. 당시 줄포는 파시가 형성되고 경찰서가 있을 만큼 번화한 곳이었다. 신학문을 배우게 하기 위해 이사를 한 것이다. 우하는 일본에 유학 가서 중학교를 나왔다.

 

우하는 시적 기질이 뛰어난 형을 따라 시인이 되고 싶었다. 미당의 영향으로 시인이 됐지만 미당은 동생의 시에 인색했던 모양이다. 우하가 시집을 낼 때 호평하면서 서문을 써 준 것이 전부다. 구상 시인이 친구다. 우하는 시를 접고 기자가 됐다. 1946년 서울에서 민주일보 기자로 출발해 전북지역 일간신문에서 30년간 일했다. 편집국장만 18년을 역임했다.

 

슬하에 2남2녀를 두었다. 큰 아들 내외가 서울에서 교직에 있고 딸 둘도 서울에 살고 있다. 막내 아들은 미국에서 7년째 살고 있다. 12년 전 미당을 떠나 보낸 뒤 혼자 질마재를 지키고 있다. 미당의 대표시집인 '질마재의 신화'가 고향 마을에 재현되는 게 소망이다.

이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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