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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친구야

이강만 한화그룹 상무

 
유난히 꿈도 많고 열정이 넘쳤던 고교시절이 30년 저편에 아스라이 추억으로 흩어지고 어느덧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의 근처에 와 버렸다. 그런 친구들 200 여명이 지난 주말 전주에 모였다. 19일부터 이틀에 걸친 고교졸업 3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전주에 있는 회장단이 행사를 주관하는지라 재경지역 동창들이 할 일이란 그리 딱히 많지 않았다. 행사에 소요되는 비용 및 각종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회비를 거두는 일과 행사에 참석하도록 독려하는 일이 고작이다. 그것도 재경지역 총무 두 명이 실무적인 일을 알아서 다 하기 때문에 재경동기회장이라는 감투만 쓰고 있는 필자가 하는 일이라고는 친구들에게 전화하는 일이 전부다. 그런데도 직책이 부여하는 무게는 적지 않아서 작년 초 회장직을 수락하고서부터 이것 저것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막상 행사가 코 앞에 다가오자 조바심은 더 커져만 갔다. 특히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행사에 참여할 것인가가 걱정거리였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불러내어 함께 어울리고 싶다는 간절함도 크지만 그 못지않게 성공적인 행사로 평가 받고 싶은 마음 또한 적지 않았다. 수시로 친구들에게 참석 여부를 되묻는 전화를 걸면서 통사정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행사에 참석하는 친구들은 정말 신이 난 모양이다. 행사 당일 11시까지 사당역 근처에서 출발하는 행사차량에 탑승하기로 했는데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 이전에 약속 장소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모임에 한번도 보이지 않던 친구들도 여럿이 눈에 띄고 말이다.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하는 순간이었다.

 

이번 행사는 외양으로는 과거와 비슷했지만 내용면에서는 완전 달랐다. 먼저 홈커밍데이(homecoming Day) 본래 의미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홈커밍데이는 미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자기가 졸업한 고등학교를 졸업 30주년이 되는 해에 자식과 가족을 동반하여 방문하는 행사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대부분의 행사가 모교가 아닌 특급호텔에서 세를 과시하는 이벤트로 전락한지 오래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를 태운 버스는 달랐다. 호텔이 아닌 모교 교정에 도착하였고 전주지역 동창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하차한 것이다. 그리고 산보하듯 교정을 일일이 둘러보고 모교 역사관을 관람한 후 이어서 추억의 수업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30년 전 우리를 가르치시던 은사님은 과거 그 시절 열정 그대로를 간직한 채 열강을 해주셨고 수업을 듣는 반백의 학생들은 곧은 자세로 경청하며 존경을 표했다.

 

어디 그 뿐인가? 대부분의 행사를 우리 손으로 진행했다. 2부행사의 단골손님이던 대형 초청가수는 이번 행사에 없었다. 우리가 주인인 행사에 외부인사를 불러 놓고 방청객으로 물러 앉아서 구경하지만은 않겠다는 의지 표현인 것이다. 대신 작년 초부터 전주지역 동창 대여섯 명이 음악동호회를 결성하여 각자 드럼, 기타, 전자오르간 등을 배우기 시작했고 부단한 연습 끝에 완전히 무대를 한마당 어울림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관행적으로 하던 발전기금 외에 새로이 장학기금을 추가 전달한 점도 의미가 크다.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는 장학사업이야말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행사를 빛내 주기 위해 서울에서 1년 선배 10여 분이, 그리고 전주에서는 이웃 여학교 동년배 동창들이 행사에 참여해 준 것도 새로운 일이었다.

 

머리는 어느새 희끗희끗 세버리고 숱마저도 듬성듬성 해진데다 아랫배는 힘을 주지 않아도 올챙이 배로 변해버린 친구들이지만 그래도 그들과 함께여서 마냥 행복한 시간이었다. 함께 한 30년 뿐만 아니라, 함께 할 30년이 더 기대된다. 그래서 지금껏 처음 본 친구에게도 어깨를 툭 치며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었으리라.

 

"정말 반갑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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