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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신경민 국회의원 "언론, 지배 권력과 싸우면서 원칙과 독립 지켜야"

앵커에서 물러난 후 회사내부의 핍박으로 고통 / 무너진 방송·언론환경 바로잡기 위해 정치 입문 / 사실을 확인하는 태도·습관이 의회활동에 도움

"회사 결정에 따라서 저는 오늘자로 물러납니다. 지난 1년여, 제가 지닌 원칙은 자유, 민주, 힘에 대한 견제, 약자배려, 그리고 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힘은 언론의 비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서 답답하고 암울했습니다. 구석구석과 매일매일,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 밝은 메시지를 전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희망을 품은 내일이 언젠가 올 것을 믿습니다. 할 말은 많아도 제 클로징 멘트를 여기서 클로징 하겠습니다."

 

다소 긴 이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고 싶었다. 할 말은 많이 남았는데 더 이상 할 말을 못하게 되었던 사람. MBC의 간판기자이자 앵커였던 민주당 신경민의원(59)이다. 그가 남긴 마지막 클로징 멘트는 2009년 4월 13일 밤 문화방송 아홉시 뉴스로 그를 만났던 시청자들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런데 지금, 그는 한국사회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또 한명의 '폴리널리스트'가 됐다. 사실 그는 30여년 방송기자 생활동안 여러 번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았다. 그의 의지와 관계없이 선거철이 되면 고향 지역구와 서울을 막론하고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때마다 "정치는 체질에 맞지 않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벽을 쌓았다.

 

그의 변신이 어찌 보면 '배반'이고 '모순'으로 보이는 이유다. 방송계 선후배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았던 방송기자, 가장 신뢰받는 앵커로 꼽혔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08년 3월부터 2009년 4월까지 그의 이름은 인터넷 상에서 뜨거웠던 이슈의 중심에 놓여있다. 덕분에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체질에 맞지 않다'는 정치권에 들어가야 했던 이유를 직접 듣고 싶었다. 그래서 만났다. 태풍 볼라덴이 한반도를 휩쓸고 간 다음날이었다. 국회에서 그를 만나기로 한 날,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도로 옆 태풍 지나간 자리에 놓인 사물과 풍경은 더 뚜렷하게 보였다. 기자 신경민 아닌 국회의원 신경민 역시 태풍처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후여서인지 세상을 더 진지하고 신중하게 분석했으며, 단호하고 명쾌하게 답을 내렸다.

 

그의 변신이 단순한 입신양명의 '배신'이 아니라 그 자체로 '희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어지러운 시절에 '희망'을, 그것도 정치판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 민주통합당 신경민 의원은 올해 MBC파업 당시 무너진 방송환경을 바로 잡는데 기여하기 위해 정치권에 입문했다고 밝혔다. 안봉주기자 bjahn@

-막 기자회견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분주해보입니다.

 

"오늘 한꺼번에 일이 쏟아지네요. 기자회견도 그렇지만 오늘 국회의원 재산공개가 있었어요. 지난 연말에 했고, 5월 30일에 신고한 것인데, 불과 5개월 만에 제 재산이 18억이나 늘었어요. 그것 때문에 언론사에서 취재들을 하느라고. 뉴스가 될 만하죠."

 

-18억 원이면 천문학적인 숫자인데요. 그것도 5개월 만 에라면 주목받을 수밖에 없겠어요.

 

"저도 당황스러운 일이예요. 사실 제가 재산이 좀 여유롭습니다. 아파트와 주식이 있어요. 처가가 '우성사료'인데 상장회사여서 장인이 여러 해 전에 자손들에게 주식을 나눠주셨죠. 제 처와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나눠주셔서 제 재산의 주요부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식이 지난해 말부터 갑자기 뛰기 시작했어요."

 

-혹시 신의원님 영향이 아닐까요.(웃음)

 

"그렇지 않아도 알아보니까 소위 '작전세력'이 붙었답니다. 그런데 그 작전 세력의 정보가 아주 잘못된 것이에요. 제가 안철수 원장과 친하다는 것이 이유라는데 저는 안원장과 일면식도 없거든요. 그런데도 안원장이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뛴답니다. 잘못된 정보라고 알려졌는데도 '안철수 주식'으로 분류되었다니 황당한 일이죠."

 

-오늘 기자회견은 어떤 내용인가요.

 

"지역방송에 관한 겁니다. 지역방송은 매우 어렵고 현안도 많습니다. 물론 경제적 어려움이나 악화되어가는 환경은 언론계의 총체적 과제지만, 우선은 법적으로라도 대안을 마련해보자는 것이 취지입니다. 이제 한국방송광고공사가 해체되고 미디어랩으로 광고가 넘어가면 지역방송사들이 안게 될 어려움은 더 커집니다. 본사와 지역사와의 관계가 매우 건강하지 못한 관계로 갈 가능성이 크죠. 지역민방의 경우는 벌써부터 그런 조짐이 보이는데, 지방사에 가해지는 과도한 압력은 십중팔구 부당하고, 불법적 수준까지도 갈 겁니다."

 

-지역방송사들의 독립성 자율성을 지켜낼 수 있는 장치가 되겠군요. 그런데 언론의 현안이라는 것이 방송뿐이 아니라 총체적인 난국이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한국사회는 각 분야 간 계층 간 세대 간 지역 간 모두 나뉘어 있죠. 지역 문제는 오히려 더 심각해져 있습니다. 게다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 수도권 중심의 구조 때문에 지역이 낙후되어가는 상황은 심화되고 있지요. 이 문제는 한국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겠지만 그 대안을 찾는데는 무엇보다도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벌써 해낼 일들을 다 정리해놓으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듣다보니 정치는 체질에 맞지 않는다던 말씀이 빈말이었던 것처럼 들리는군요.(웃음)

 

"지금도 맞지 않는 것은 확실합니다. 사실 저같이 정치에 전혀 맞지 않고 정치를 잘할 수 없는 사람이 이렇게 정치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자체가 한국사회의 체질을 드러내주는 것 아닌가 싶어요."

 

-'할 수밖에 없는'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2008년엔가 매체들과의 인터뷰를 보니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밝히셨더군요.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정치인이 되셨거든요. 그렇다면 그 후의 2-3년이란 시간이 신의원님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 일 텐데 그 배경은 결국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현실일 수도 있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생각을 바꾼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2009년 4월 뉴스앵커 자리에서 쫓겨난 이후 삶의 환경입니다. 앵커를 그만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뉴스 클로징 멘트 논란 때문이죠. 당시에는 사사건건 엄청난 간섭과 압력을 받았습니다. 앵커는 보도의 한복판에서 언론인의 기본적인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에요. 앵커니까 중립적으로 진행이나 잘하라고 한다면 상식에 반하는 것이죠. 만약 제가 정부 편을 드는 멘트를 했어도 그런 압력과 시비가 있었을까요."

 

(그가 2008년 3월부터 2009년 4월까지의 앵커 생활동안 받았던 핍박과 압력의 흔적을 묶어낸 책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에는 우리사회의 부조리한 단면들, 특히 방송 권력을 장악하는 구조적 모순의 실상이 낱낱이 고발되어 있다.)

 

-당시 앵커 역할을 두고 뜨거운 논란이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지금도 앵커의 역할에 대해서는 같은 생각이시죠.

 

"물론입니다. 당시도 제가 옳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옳았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80년대부터 크고 작은 코너의 앵커를 맡았었어요. 그때부터의 멘트를 따라가 보더라도 역대 모든 정권과 권력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살아있는 현재의 권력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댔었습니다."

 

-그럼 그때의 핍박이 정치 쪽으로 이끌었습니까.

 

"그 영향도 있지만 앵커를 그만둔 이후의 경험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앵커에서 물러난 이후 방송은 단 1초도 못했어요. 회사를 법률적으로 그만둔 것이 2011년 9월이니까 2년 5개월 정도될텐데, 그때 온갖 수모를 당했습니다. 사실 30여년 기자생활하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말년에 제가 겪어야 했던 고통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핍박과 압력은 정치권으로부터도 당했지만, 회사내부에서 가해지는 수모가 훨씬 더 치욕적이고 고통스러웠어요. 잘 지냈던 선후배들이 등을 돌렸죠.(그는 이 대목에서 그답지 않게 '비수를 꽂았다'는 표현을 썼다. 그만큼 그에게는 깊은 상처였다.)"

 

-정치권 제안은 사실 여러 번 받았고 그때마다 거절하셨던 것으로 아는데요.

 

"물론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나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엠비시 파업이 절정으로 가고 있을 때였죠. 이렇게 무너진 방송환경을 바로 잡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지도자로부터 오는 것이지 않습니까. 기본상식과 기본자질을 갖춘 지도자가 나올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역할을 생각하시는지요.

 

"우리 현실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언론의 탈정치화입니다. 특히 공영방송의 탈정치화가 핵심인데, 그것이 정치적인 독립성과 각 분야, 지방자치와도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의 경우, 비교적 공영방송을 열심히 잘하고 있는 나라들을 보면 시민사회와 지방자치가 발전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토대위에서 자유를 구가하면서 정치권, 특히 지배 권력과 싸우면서 언론의 원칙과 독립을 지켜가죠. 그런데 우리는 그런 토대가 아예 없습니다."

 

-단단한 결기까지 느껴지는데요.

 

"엠비정부가 가르쳐준 귀중한 가르침(?)의 효과일겁니다. 저는(신의원은 '우리는'이라는 표현으로 다시 고쳐 말했다) 그 가르침을 통해 여러 가지를 배웠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현행 법률안에서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또 형식적 법 절차를 지키면서도 본질을 훼손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는 것이죠. 이런 부조리를 바로 잡으려면 폴리널리스트라고 욕을 먹더라도 먹물 든 사람으로서, 언론에 31년 복무한 자로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방송기자로 살아오신 31년 동안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고난은 시절마다 있지 않았을까요.

 

"이보다 어려운 시절도 있었겠죠. 그러나 그때는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오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9년 4월에는 그러한 희망이 보이지 않았어요. 은퇴할 날자는 2011년 9월로 정해져있는데 내 눈앞에서 방송이 처참하게 망가지는 것을 보면서 내 일생도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죠. 그 절망감과 무력감은 뭐라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언론계의 많은 후배들이 존경하는 선배로 신의원님을 꼽습니다. 시청자들은 앵커 신경민의 덕목으로 신뢰를 꼽습니다. 방송기자로서 지켜온 가치관이 궁금합니다.

 

"저는 방송을 잘하는 기자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지적을 많이 받는데, 힘이 없다거나 말이 느리다거나 이야기를 어렵게 한다거나 방송기자로서는 단점이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노력을 많이 했어요. 방송에서는 외모가 중요한데 저는 적어도 얼굴로 먹고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우선은 취재에 공을 많이 들였지요. 팩트를 확인하고 선정하는 기준, 그것을 어떻게 나열하고 어떤 단어를 사용할지를 놓고 연구했습니다. 오랜 시간 여러 통로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는 태도와 습관은 지금 의회 활동을 하는데 에도 도움이 됩니다. 아마 동료들이나 시청자들이 저를 좋게 봐주신다면 그것이 원동력일겁니다."

 

-많은 부문에서 활동하셨는데 여기서도 '체질'이라는 표현을 빌리자면 어떤 분야가 가장 잘 맞았습니까.

 

"워싱턴 특파원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워싱턴이라는 도시로서의 배경과 잘 어울렸던 것 같기도 하구요.(웃음) 88년에 1년 동안 공부한 곳이기도 하고, 정부초청 등으로 여러 번 왕래도 했었고, 기자로서의 전공도 외교와 법조여서 워싱턴이라는 도시와 미국이라는 나라의 토픽을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교적 영어도 능숙한 편이어서 특파원으로서 역할을 비교적 잘했다고 생각하죠.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중요한지, 영향을 얼마나 어떻게 미치는지, 외교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청자들에게 열심히 설명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오랜 기자생활동안 특종이나 기억날만한 뉴스도 적지 않을 텐데요.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미국 정부가 미군 철수하겠다며 우리를 협박했던 일입니다. 그때 우리정부는 이해도 잘못했고 대응도 잘못했는데, 그 기사를 쓰고 정부 관계자로부터 협박을 받았어요. 회사 내부에서도 압력이 심했죠. 제가 보고한 정보를 모두 부인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저는 '더블체크' 했거든요. 확신을 갖고 쓴 것이죠. 사실이 아니면 징계 대상이었죠. 정부와 당의 고위관계자가 저를 찾아 와서 '국익'을 생각하지 않는 기자라고 비난하더군요. 국익은 저도 많이 생각하죠. 다만 당시 이 기사를 쓰는 것이 저는 국익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기자들이 확인한 기사라면 쓰는 것이 국익입니다. 통킹 만 사건(Gulf of Tonkin Incident )만해도 그 당시에 썼더라면 베트남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죠. 무엇이 국익이냐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 언론은 쓰는 것이 국익입니다."

 

-대선이 앞에 와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나라를 이끌 수 있는 인물은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수권능력이 아닐까요. 국가의 현안은 계속 정리를 해나가고 있는 과정 속에서 이미 도출되어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이것을 과연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겠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냐일겁니다. 국민들은 리더 뿐 아니라 리더 주변 인물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아직은 그런 그룹이 안보이죠."

 

-리더의 자격과 능력도 중요하지만 함께 갈 그룹이 더 중요하다고 보시는군요.

 

"그렇죠. 최근의 경험만으로도 국민들은 리더 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면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충분히 체득했다고 봅니다. 이번 선거는 그래서 더 중요합니다."

 

▲ 신경민 의원과 본보 김은정 선임기자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안봉주기자 bjahn@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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