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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자선냄비' 구세군을 만나다…그들이 있기에 아직은 따뜻한 세상

▲ 조중현

전북도 블로그 기자단

어릴 적, 추운 겨울이 되면 목도리 둘러 메고, 털모자 눌러 쓰고, 입김을 불어가며 길을 걸으면 꼭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딸랑, 딸랑" 울리는 종소리. 그 앞에는 항상 빨간 냄비가 놓여 있었다. 그럴 때면 부모님은 지폐 한 장을 꼭 쥐어주시고는 냄비 안에 넣고 오라고 하셨다. 그땐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돈을 넣고는 부리나케 도망가곤 했다.

 

이제 그런 기억은 가물가물 하다. 빨간 냄비만 보면 어떤 방법으로든 재빠르게 돈을 넣고 돌아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부모님 도움을 받지 않고 지갑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종소리를 듣고도 무심코 그 옆을 스쳐 지나갔던 일이 다반사다.

 

△ 소외 계층 보듬는 따뜻한 빨간 천사

 

올해는 어릴 적 추억을 되새기며 빨간 냄비 안으로 지폐를 넣었다. 어릴 땐 듣지 못했던 또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로 "감사합니다"라는 따뜻한 인사. 언제나 그랬듯 정겨운 종소리와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있는 빨간 옷의 천사들을 만났다.

 

구세군(救世軍). 어째 겉모습과는 전혀 다른 '군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실 구세군은 그리스도교의 한 교파다. 조직이 군대식 제도를 모방해 만들어졌기에 구세군이란 이름이 되었다. 올해 10년 넘게 연말을 빨간 냄비 앞에서 보내는 양현희 씨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는 전주구세군교회에 다니고 있어요. 다른 곳에 있는 구세군들도 다들 저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어느 사회단체의 직원이거나 연말에만 나타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에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빨간 냄비와 함께한 시간들. 올해 모금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아니요. 다름 없어요. 언제나 그렇듯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오시고요. 경기가 어렵다고 사람들의 발길이 줄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오히려 어려울수록 더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 사람들이 오시는 것 같아요. 여전히 아이들도 부모님 손을 붙잡고 와서 돈을 넣고는 방긋 웃고 돌아가고요."

 

역시나 구세군을 찾는 단골 손님은 어린 아이들이었다.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특히 요즘은 중·고등학생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학창 시절, 연말이라고 놀 생각만 했던 게 새삼 부끄러워진다.

 

올해 겨울은 왜 이렇게 추운지. 그러나 이런 추위가 큰 어려움은 아니다.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구세군을 하면서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오히려 연말을 따뜻하게 보내고 있어요. 어려움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구세군 활동에 관심을 보여주시고 도움을 주셨으면 해요."

 

△ 좋은 뜻 함께 해준 학생들 덕분에 '훈훈'

 

다행히 올해는 옆에 함께 서 있는 학생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한 눈에 보기에도 조금은 어려 보이는 나이. 다른 친구들은 이맘 때면 함께 놀기 바쁠 텐데, 이 친구들은 무슨 일일까? 두 친구는 전주 신흥고교 1학년 학생들이다. 올해는 신흥고 학생 중에서 자원한 친구들이 구세군 활동에 도움을 줬다. 반드시 해야 했던 숙제가 아닌 구세군 활동. 이 친구들은 추운 날씨에 왜 구세군을 선택했을까.

 

"저는 옛 기억이 나서요. 지금 이렇게 찾아오는 어린애들 모습이 꼭 옛날 저 같았거든요. 그리고 항상 빨간 옷을 입고 종을 흔들던 구세군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그 자리에 있고 싶었죠."

 

"저는 사람들을 '제대로' 돕고 싶어서 구세군에 신청했어요. 뭔가 돕고 싶어도 방법을 잘 몰랐거든요. 신청하길 잘 한것 같아요."

 

올해 빨간 냄비 옆에는 낯선 기계가 붙어 있었다. 올해부터 도입된 새로운 기부 방법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카드를 긁으면 2000원을 기부할 수 있다. 처음 진행하는 방법이라 조금은 서툴 만도 한데 역시 젊은 학생들의 도움이 있으니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임무를 마치고, 교대시간이 되자 또 다른 친구들이 왔다. 그리고 똑같이 빨간 옷을 입고 종을 흔든다.

 

△ 온라인 작은 모금으로 온기 이어가볼까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이다. 들리는 소식들은 요즘에 다들 경제가, 살림이 어렵다는 이야기뿐이다. 하지만 빨간 냄비 옆을 지켜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여전히 따뜻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빨간 냄비로 손을 내밀고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젊은 학생들까지 있다.

 

구세군은 추억이 아니었다. 내년에도 어김없이 따뜻한 종소리는 울릴 것이다. 올해는 지난 연말로 거리모금은 끝이 났지만 온라인을 통해 연중 상시 모금이 가능하다고 하니 아쉬워할 일만은 아닌 듯 하다. 내년에도 꼭 종소리를 따라 빨간 냄비에 작은 정성을 전해야겠다는 생각해본다.

 

 

※ 조중현씨는 2011 전라북도 블로그 단 우수 . 새내기 블로거로 시작해 올해 전라북도 블로그 명예단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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