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작가회의 창립 회원인 윤중호 시인의 시 '고향길'이다. 자신도 몰랐던 지병으로 48세에 세상을 떠난 시인은 늘 그리던 고향의 정경과 정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로 표현했다. 꺼져가던 고향은 시인이 남겨놓은 시들 때문에 환하게 되살아난다.
"왜정 때 부역질로 만들었다는 신작로 따라/ 고향을 떠나왔다/ 그 뒤로도 자꾸 신작로가 자라서/…칡넝쿨처럼 타고 넘더니/ 아는 얼굴들 모두 신작로 따라 대처로 떠나고/ 이제 내가 아는 얼굴 되어, 신작로 끝/ 빈집, 불 밝혀야 하나"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의 한 켠을 지키고 있는 건 농촌의 고향이다. 농촌은 곧 사라져버릴 것처럼 안타깝고 쓸쓸하다. 고령 인구에다 문패만 남겨진 주인 없는 빈집들, 오가는 사람 없이 정적만 흐르는 마을, 석면 투성이의 슬레이트 지붕들….
농촌은 이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게으른 울음 우는 곳이 아니다.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라며 시인 정지용이 그리던 옛 고향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변한 지 오래다. 그럴 망정 고향은 누구나의 가슴에 살아 있다. 사랑하는 부모형제, 옛 친구들 그리고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다. 고향은 그리움이고 추억이다. 그래서 언제, 어느 때든 가슴 설레는 게 고향길이다.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 대여섯시간씩 길 위에서 시달려야 하는 고행길이라지만 고향길은 설레이고 즐거운 여정이다.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명절은 향수를 느끼게 해 준다. 향수란 내가 자라고 살았던 공간적 고향과 내가 살아오고 경험했던 시간적 고향에 대한 본능적 그리움이다.
다 떠난 농촌, 노인만 남아 있는 마을. 왜 이렇게 됐는지를 생각하면 분하다. 꿈엔들 잊힐 리 없는 옛 고향을 사람 냄새 나는 곳으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인가. 우리의 삶에서 정말 소중하게 지키고 아껴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짚어보는 추석 고향길이었으면 좋겠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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