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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떠나는 '지리산 구룡계곡 순환코스'

단풍 든 계곡 따라 득음 소리 들리네

▲ 가을이 되면 형형색색 단풍같은 탐방객들이 구룡계곡의 자연을 즐긴다.

하늘은 높아만 가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사람이 참 간사해 계절이 바뀌었다고 잠결에 이불깃을 당 차가운 음식보다는 따뜻한 국물을 찾게 된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도 앞당겨진 것을 보면 자연의 변화는 참으로 오묘하다. 오늘은 둘레길 1구간(주천~운봉)과 만나는 지리산 국립공원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려 한다. 구룡계곡 순환코스. 주소가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다. 가을이면 눈이 호강하는 이곳. 구룡계곡은 옛날 음력 4월 8일이면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 군데 폭포에서 한 마리씩 자리잡아 노닐다가 승천했다는 전설 때문에 용호구곡이라고도 부른다. 구룡계곡 단풍이 붉은 까닭이 궁금하지 않은가? 그 이유를 찾아 함께 떠나보자.

 

△춘향이를 따라 구룡계곡으로

 

구룡계곡을 찾아가는 길은 육모정 혹은 춘향묘 입구에서 시작한다. 남원을 대표하는 사랑의 아이콘 성춘향과 이도령, 춘향묘는 1962년 '성옥녀지묘'라고 새겨진 지석이 발견되어 묘역을 새로 단장한 것인데, 높은 축대 위에 넓게 자리 잡고 있으며, 묘소 앞에는 '만고열녀춘향지묘(萬古烈女春香之墓)'라고 쓰여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육모정은 원동향약 관련 유적으로 원동향약은 1572년 설립되어 44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46호로 지정돼 있다. 1638년(인조 16)에 작성한 '향약록(鄕約錄)'등 20여 권이 전해지고 있다. 440년을 쭈욱 내려온 약속이라니 감탄이 절로 난다. 육모정 맞은 편에 자리잡은 용호서원(龍湖書院)은 일제강점기 향촌 사회에 설립된 사립중등 교육 기관으로 역시 원동향약 관련 유적이다. 눈여겨볼 것은 주자의 목판 글씨체로 만든 편액이 걸려 있는 목간당(木澗堂)과 수성재(須成齋)로 용호서원 내에 현존하고 있다.

 

△권삼득이 콩 서 말 지고 찾아

 

이제 등산화 끈을 조여매고 구룡계곡으로 향해 보자. 구룡계곡 길목에는 아름다운 계곡과 판소리 명창을 만나볼 수 있다. 육모정 옆 쪽으로 내려가면 명창 권삼득 선생의 유적비가 눈에 띈다. 권삼득 선생은 조선후기 남원지역에서 활동한 명창의 한 사람으로 전기 8명창에 해당한다. 그가 판소리사에서 남긴 위대한 업적은 타고난 고운 목으로 '흥보가'를 잘했으며, '설렁제', '덜렁제' 혹은 '권마성제'라고 하는 선율을 개발했다. 이 선율은 매우 씩씩하고 남성적인 느낌을 준다. 그는 안동 권 씨 양반 출신으로 그 당시만해도 판소리를 천하게 여겼던 세상이라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는 집안에서 쫓겨나 처가가 있는 남원 주천으로 콩 서말을 짊어지고 와서 득음을 위한 연습을 시작한다. 소리 한바탕이 끝날 때마다 용소에 콩 한 알을 집어 던지며 득음을 위한 소리공부에 전념했다 한다. 그의 수행 고수가 남원 운봉 출신으로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 송흥록의 아버지였으니 동편제 판소리는 그로부터 시작됐다고 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명창이 득음하던 곳

 

명창의 흥겨운 노래소리와 함께 계곡을 향해 출발한다. 한국의 명수라고 쓰인 바위를 뒤로하고 내려가면 드디어 계곡 등산로로 진입한다. 봄에는 지리산 특산종인 히어리와 봄꽃들이 만발하고 여름이면 물소리 귓가에 파도치고 가을이면 단풍이 붉게 물든다. 흥겨운 노래가 끝날 때 쯤 학들이 물고기를 잡아 먹는다 해서 학서암이라 부르는 3곡을 만나게 된다.

 

구룡계곡의 장점은 쉼 없이 폭포가 나타나고 물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다른 폭포들은 길게 하나가 있거나 넓게 형성되어 있다면 구룡계곡은 길을 오르는 2시간 정도 끊임없이 폭포들이 있어 눈과 귀가 즐겁다. 중이 꿇어앉아 독경하는 듯한 구시소 4곡과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5곡, 가장 뾰족한 봉우리 지주대 6곡에서는 산과 계곡, 다리가 어우러져 트레킹의 묘미를 더한다. 깎아지는 듯한 문암에 흘러내린 물을 비폭동이라 부르는 7곡, 거대한 암석층을 통과하는 8곡, 용들의 어우러진 모습을 닮은 교룡담 9곡까지. 어느곳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오르는 내내 물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이 폭포 소리를 뚫어야만 득음의 경지에 오르고 명창이 될 수 있다. 남원은 판소리 동편제의 탯자리이기도 하고 거문고의 명인 옥보고가 운봉에 은거해 거문고 곡을 작곡해서인지 국악의 전통이 심장 속 깊이 흐른다. 송흥록, 이화중선, 장재백, 김정문, 박초월, 강도근을 비롯해 지금에 이르러서는 강정숙 명인, 안숙선 명창까지 남원을 대표하는 예인이다. 이들이 소리를 익히고 득음하는 공간이 바로 구룡계곡이었다.

 

△짧은 가을을 만끽해보자

▲ 신해정 전북도 블로그 기자단

올해는 가을이 유난히 짧다고 한다. 해마다 찾아오는 짧은 가을이 야속하기도 하지만 이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가을 풍경에 더욱 분주하게 서둘러야 한다. 가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니 말이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울 지리산 구룡계곡 단풍을 찾아 남원으로 떠나보자.

 

 

※신해정씨는 남원에서 귀농·귀촌해 지리산권 7개시군을 모니터하는 40대 여성. 현재 2013 도민블로그 단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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