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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않은 편지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안도현 시인이 즐겨 부르는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다. 정호승의 시를 토대로 백창우가 곡을 붙인 것으로 영화 '공동경비구역'에도 삽입되었고 노무현 전대통령 추모영상의 배경음악으로도 자주 사용되곤 하던 노래다. 작곡자 백창우의 증언에 의하면 이 곡은 김광석이 죽기 전날, 아니 그날 새벽에 녹음을 한 것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노랫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왜 편지를 부치지 않았는지, 원래의 시에서도 그 까닭은 확인할 수 없다. 부칠 필요가 없어서, 부칠 대상이 없어서, 혹은 부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이겠지만, 모든 것을 독자 몫으로 남겨놓고 있다. 답답하지만 그래서 울림은 더 커진 것이 아닌가, 짐작은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이 시에서 '죽은 이를 향한 결연한 절망의 어조'를 강조한다. 세 번 반복되는 "…하지 않아도 좋다"라는 구절을 그 예로 들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이 '그대'와 우리를 갈라놓은 이 음울한 세계에서 "어떤 고원(高遠)한 가치도 애정도 차라리 부정하고자 하는 절망적 결의"가 그 내용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어두운 강이 어둠을 향해 흐르는 세계의 모습"!

 

그래서 안도현 시인이 즐겨 부른 것일까? 국정원이나 군 등이 대통령선거에 무시로 개입해도 그것을 항의하는 것이 오히려 위법으로 치부되는 황당함,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보겠다는 교사들의 모임을 엉뚱한 이유를 내세워 갑자기 불법단체로 몰아가는 참담함, 그 절망적 상황을 대변하기 위해서?

 

그러나 이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푸른 강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밤하늘은 없어도 별은 뜨나니"! "사람살이의 참혹함에 대한 절망은 그것을 규정하는 여러 조건들에 대한 준열한 반문을 통해 다시 커다란 희망의 결의로 부활할 수 있다." 유레카! 현실에 대한 냉정한 진단만이 진정한 희망의 노래로 이어질 수 있다.

 

오늘은 안도현 시인 재판일! 청와대에 있던 안중근의사 유묵의 행방에 대한 시인다운 호기심이 선거법위반으로 엮였다. 질문도 못하나? 그래 노래나 할 걸 그랬다. 오늘 저녁 시인과 어깨동무하며 '부치지 않은 노래'나 불러야겠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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