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으로 신음하며 죽음을 앞둔 두남자의 천국을 향한 무한질주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혼자 자주 가던 바를 찾았다. 데킬라 반 병을 앉은 자리에서 깔끔히 비웠다. 저마다 떼를 지어 왁자지껄하게 수다판을 벌이는 사람들 중에서 내게 왜 데킬라를 혼자 마시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조금 유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내게 왜 데킬라를 처량하게 혼자 마시고 있느냐고 물었다면 나의 대답은 아마 이러했을 것이다- 그야 물론 바다를 봤으니까.
토머스 얀의 1997년작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는 그런 영화다. 음악을 하는 지인의 소개로 영화를 처음 접했다. 한 번 보면 머리 속에서 제멋대로 바다와 데킬라가 하나로 꽁꽁 묶여 일종의 조건반사를 만들어 버리는, 조금은 곤란한 영화다.
이 영화는 어딜 봐도 ‘없어보이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루디는 세상을 너무 무겁게 살아서 없어보이는 남자다. 평생 자신을 규율에 끼워맞추며 바르게만 살다 보니 융통성이라고는 눈을 아무리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반면 마틴은 세상을 너무 가볍게 살아서 없어보이는 남자다. 그에게 있어 규칙은 당연히 깨라고 있는 것이고, 진지함은 메마른지 오래라 어딜가나 여자를 홀리고 다니기 일쑤다.
완벽히 상반되는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두 가지 있다. 각각 골수암과 뇌종양으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같은 병실에서 서로를 만났다는 것과,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다는 것. 병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데킬라를 마시며 가까워진 둘은 술김에 병원을 탈출해 바다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을 떠난다.
사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가 다루고 있는 스토리-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마지막 꿈을 이룬다는 주제의 이야기는 ‘버킷 리스트’ 등 여러 영화에서 익숙하게 찾아볼 수 있는 소재다.
더군다나 이 영화가 연출에 있어서 섬세하고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참신한 컷연출이나 시각효과보다 거칠고 투박한 구성이 영화의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작년 국내에서 재개봉될 정도로 아직까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은 작중 최고의 백미로 알려진 마지막 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슷한 류의 로드 무비가 늘 그렇듯 둘은 결국 바다에 도착하게 되는데, 스크린을 꽉 채운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데킬라를 들이켜는 둘의 모습과, 그 뒤로 흐르는 밥 딜런의 동명의 노래 ‘Knocking on Heaven‘s Door’가 어우러진 이 장면은 말 그대로 압권이다. 만약 당신이 그 뒤 자연스레 올라가는 크레딧 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게 된다면, 축하드린다. 필자가 그러했듯, 당분간 바다를 보면 자연스레 데킬라가 떠오르는 후유증을 얻게 되셨다.
다음에 바다에 가게 됐을 때는, 친구를 데리고 데킬라 한 병을 따로 챙겨가야겠다. 어릴 적 즐겨 듣던 휴대용 CD 플레이어에 밥 딜런 아저씨 노래를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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