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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킹 온 헤븐스 도어'와 바다·데킬라

불치병으로 신음하며 죽음을 앞둔 두남자의 천국을 향한 무한질주

▲ 이신혁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재학
부산에서 짧은 강연이 있었다. 행사가 끝나고 관계자 분들과 짧은 인사를 나눈 후 자리를 빠져나와 곧바로 자갈치시장으로 향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터라, 때마침 좋은 돔이 들어왔다던 97호 횟집 아저씨의 말을 도저히 흘려들을 수 없었다. 꽤 저렴한 가격에 배를 빵빵히 불리고 나서 천천히 걸을 겸해서 바다로 나갔다. 노을을 받아 주황빛으로 넓게 펼쳐진 바다는 내륙 토박이인 내게 있어 좀처럼 보기 힘든 장관이었기에 한동안을 눈에 꾸역꾸역 담아넣느라 애를 먹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혼자 자주 가던 바를 찾았다. 데킬라 반 병을 앉은 자리에서 깔끔히 비웠다. 저마다 떼를 지어 왁자지껄하게 수다판을 벌이는 사람들 중에서 내게 왜 데킬라를 혼자 마시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조금 유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내게 왜 데킬라를 처량하게 혼자 마시고 있느냐고 물었다면 나의 대답은 아마 이러했을 것이다- 그야 물론 바다를 봤으니까.

 

토머스 얀의 1997년작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는 그런 영화다. 음악을 하는 지인의 소개로 영화를 처음 접했다. 한 번 보면 머리 속에서 제멋대로 바다와 데킬라가 하나로 꽁꽁 묶여 일종의 조건반사를 만들어 버리는, 조금은 곤란한 영화다.

 

이 영화는 어딜 봐도 ‘없어보이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루디는 세상을 너무 무겁게 살아서 없어보이는 남자다. 평생 자신을 규율에 끼워맞추며 바르게만 살다 보니 융통성이라고는 눈을 아무리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반면 마틴은 세상을 너무 가볍게 살아서 없어보이는 남자다. 그에게 있어 규칙은 당연히 깨라고 있는 것이고, 진지함은 메마른지 오래라 어딜가나 여자를 홀리고 다니기 일쑤다.

 

완벽히 상반되는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두 가지 있다. 각각 골수암과 뇌종양으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같은 병실에서 서로를 만났다는 것과,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다는 것. 병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데킬라를 마시며 가까워진 둘은 술김에 병원을 탈출해 바다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을 떠난다.

 

사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가 다루고 있는 스토리-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마지막 꿈을 이룬다는 주제의 이야기는 ‘버킷 리스트’ 등 여러 영화에서 익숙하게 찾아볼 수 있는 소재다.

 

더군다나 이 영화가 연출에 있어서 섬세하고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참신한 컷연출이나 시각효과보다 거칠고 투박한 구성이 영화의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작년 국내에서 재개봉될 정도로 아직까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은 작중 최고의 백미로 알려진 마지막 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슷한 류의 로드 무비가 늘 그렇듯 둘은 결국 바다에 도착하게 되는데, 스크린을 꽉 채운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데킬라를 들이켜는 둘의 모습과, 그 뒤로 흐르는 밥 딜런의 동명의 노래 ‘Knocking on Heaven‘s Door’가 어우러진 이 장면은 말 그대로 압권이다. 만약 당신이 그 뒤 자연스레 올라가는 크레딧 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게 된다면, 축하드린다. 필자가 그러했듯, 당분간 바다를 보면 자연스레 데킬라가 떠오르는 후유증을 얻게 되셨다.

 

다음에 바다에 가게 됐을 때는, 친구를 데리고 데킬라 한 병을 따로 챙겨가야겠다. 어릴 적 즐겨 듣던 휴대용 CD 플레이어에 밥 딜런 아저씨 노래를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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