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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맨' 공무원

노자는 예(禮)를 묻기 위해 자신을 찾아왔던 공자를 떠나 보내면서 한마디 충고를 던졌다. ‘자기 몸을 위태롭게 하는 자는 남의 잘못을 발설하는 자요, 남의 신하된 사람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아야 한다.’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철학자 답게 물처럼 처신하는 것이 세상 사는 슬기라고 가르치고 있다. 중국 춘추시대 중기부터전국시대 초기까지 살았던 노자의 시대는 계급 질서, 생산 관계, 세계관 등이 급격하게 변하던 혼란의 시기다. 자기를 낮추고 호박처럼 둥굴둥굴하게 처신하라고 충고한 데엔 이같은 시대적 배경이 있다.

 

그런데 이런 처세술은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결단을 빨리 해야 하는 지금과 같은 시대엔 맞지 않는다. 행정, 정치, 기업 어떤 조직이든 토론과 직언문화가 살아 있어야 실수를 줄일 수 있고 글로벌 경쟁시대에 살아 남을 수 있다. 조직의 수직· 수평 라인이 크로스체크하면서 정보를 교환하고 소통할 때 부가가치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민선 6기 출범 이후 관료조직이 혼란스럽다. 단체장이 바뀐 자치단체 공무원 조직이 특히 그렇다. 어떤 자치단체는 살생부가 작성됐다는 설이 나돌고 이를 반박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또 일부 자치단체는 사업을 컨트롤할 수 있는 자리에 충성파를 배치했다. 선거 기여 세력에 대한 보은인사다. 이런 사람은 언론과 사법당국의 꾸준한 감시 대상이 될 것이다.

 

가장 혼란스런 곳은 익산시다. 간부들이 ‘예스맨(yes man)파’와 ‘소신파’로 나뉘어 내홍을 겪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밀어붙이는 스타일인 박경철 시장에게 무조건 ‘예, 예’ 하며 충성하는 ‘예스맨 간부’들이 있는가 하면, 사리에 맞지 않으면 ‘노(no)’라며 직언하는 ‘소신 간부’들이 서로 흰 눈을 들이대고 있다. 충돌할 바엔 좀 더 치열하게 격돌했으면 한다. 토론과 직언, 비판과 대안 모색 끝에 나온 민주적 의사결정은 곧 조직의 힘이 되고 집행의 정당성도 담보된다. 그럴 때 조직도 살아난다.

 

반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현실화된 조직은 미래가 암울할 수 밖에 없다. 정을 맞을 망정 직언은 해야 되고, 직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야말로 리더의 참다운 역할이다. 굳은 소신을 갖고 일해 온 다수의 ‘영혼 있는 공무원’들이 ‘영혼 없는 공무원’들에게 내몰리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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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 kjlee@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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