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통일 모델 삼아 남·북한 냉전시대 벗고 화해·평화의 길 모색을
프랑스 전역에 대성당들이 꽤 있지만, 이 성당은 역사적인 측면에 있어서 독특한 지위에 있다. 옛날 프랑스에서는 이 성당에서 왕위에 오르는 의식인 대관식을 치러야만 정식 왕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5세기 프랑크 왕국을 창시한 클로비스(Clovis) 1세가 렝스 성당에서 처음으로 대관식을 올렸다. 노트르담 대성당 안에는 잔 다르크의 동상도 보이는데, 그녀는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하고, 1429년 샤를 7세를 이 성당으로 모셔와 대관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또한 2차 대전 당시 유럽연합군의 최고사령관이었던 미국의 아이젠하워 장군이 독일군의 항복신고를 이곳 렝스에서 받았다고 한다. 성당 앞마당에는 둥근 동판이 박혀있는데, 1962년 7월 프랑스 샤를 드골과 독일 콘라드 아데나워가 함께 방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샤를 드골(De Gaulle) 대통령은 프랑스인들이 제일 존경하는 인물 중의 한 분이다. 프랑스 관문인 공항의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딴 샤를드골 공항이다. 그는 독일침략에 맞서서 싸운 독립운동가이자 장군이었으며, 프랑스 5공화국 초대 대통령으로 정치·외교·경제 등 여러 방면에서 그의 조국 프랑스의 영광을 재현한 인물이다.
콘라드 아데나워(Adenauer) 서독 초대 총리는 2차 대전으로 폐허가 된 독일의 경제를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으로 일으켜 세웠으며 우파인 기독교민주연합(CDU) 출신이면서도 최초로 ‘사회적 시장경제’를 주창하였다.
아데나워는 프랑스와 독일 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않고는 유럽에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확신했다.
드골과 아데나워는 1958년부터 1962년 중반까지 40여 차례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열다섯 차례나 만났다. 드디어 1963년 1월 독일과 프랑스는 상호우호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드골 대통령은 독일 총리를 프랑스에 초청하여 프랑스-독일군대의 장대한 열병식을 받았다. 이어서 렝스 대성당을 방문하여 신 앞에 무릎을 꿇고 ‘유럽에서 다시는 전쟁의 참화가 발생하지 않고 평화가 지속되기’를 함께 기도하였다고 한다. 이 두 명의 역사적인 인물은 지금의 유럽연합(EU)을 만드는 초석을 다진 분들로 평가받고 있다.
남북이 분단된 지도 60년이 넘는다. 남북한이 참혹한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미움과 적대감을 지울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유럽은 남북한이 체험한 것 이상의 잔혹한 전쟁을 여러 번 겪었지만 마침내 동일한 화폐를 가진 경제통합을 이루어냈고, 유럽의 평화를 확고히 담보할 수 있는 유럽연합이라는 독자기구도 가지고 있다.
독일의 통일을 위해 동방정책을 펼쳤던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는 ‘역사가 과거에서 우리를 풀어놓지 못하는 맷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평화가 모든 것은 아니지만 평화 없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고 하였다. 더 늦기 전에 남북한이 화해와 평화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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