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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배운다

▲ 김영기

봄부터 시작했던 생명의 대장정이 희망의 씨앗을 땅에 묻고 잠시 쉴 모양이다. 사실 인간은 봄에 씨를 뿌리지만, 대부분의 초목들은 가을에 씨를 뿌린다.

 

하루가 다르게 색깔이 변해가는 단풍을 보면서 마음이 조급해지다가 겨우 숙제를 마치려는 듯 지리산 뱀사골 와운 마을에 있는 천년송을 찾아 나섰다. 단풍철에 왜 하필 사철 푸른 소나무를 보기로 했는지 자신의 결정을 의아해 하면서도, 의기소침해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용기를 불어넣어줄 무언가를 은연중에 찾아 나선 것은 아니었을까?

 

아름다운 계곡의 단풍을 따라서 올라가다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일가족 세 사람의 자살 뉴스를 들었다. 물론 무리한 욕심이 파멸을 부른 측면도 있었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인데, 열두 살 딸이 직접 그린 자신의 얼굴과 담임교사의 연락처도 유서에 남겼다고 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또 하나, 전셋집에서 쫓겨나게 된 65세 노인이 자기의 시신을 수습할 사람을 위해서 “개의치 말고 국밥이라도 사드시라.”고 10만 원을 봉투에 넣어두고 목을 맸다는 소식도 함께 떴다.

 

지난 2월 송파동 세 모녀에 이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픈 소식이다. 당장 세 모녀에 대한 시를 썼다가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던 자신이 부끄러워 발표를 못 하고 그냥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사실 그때도 정작 내가 슬펐던 것은 그 상황을 사회문제로 보지 않고 일부 언론에서는 ‘착한 사람, 양심 있는 사람들이었다.’라고 본질을 호도한 보도 행태 때문이었다.

 

자살률 1위, 하루 평균 4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 마치 그들의 비명처럼 들려서 오늘만큼은 낙엽조차 밟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자살, 정말 이대론 안 된다. 자살로 인한 충격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남는다. 연령대별 지역별 자살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여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세상의 모든 나뭇잎들은 저마다의 형태와 빛깔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다. 물론 사람은 더 그렇다. 때가 되어서 저절로 떨어지는 이파리조차도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와운 마을 입구에서 문득 나를 붙잡는 소나무가 있다. 그것은 세상에 우뚝 선 듯 우람한 지리산 천년송이 아니었다. 바위 위에서 힘겹게 그러나 고고하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아직 이름조차 없는 두 그루의 소나무다. 물기 하나 없는 바위 위에서 제 뿌리를 뱀처럼 똬리 틀고 있는, 손을 내밀어 서로 꼭 잡고 있는 것처럼 뿌리 하나가 둘을 잇고 있는 그 모습에 그만 울컥하고 감격해서 천년송 따윈 잊어먹고 말았다.

 

저렇게 악조건에서는 당연히 생장속도도 늦었을 터, 키는 작지만 제법 나이가 먹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소나무들은 와운 마을 입구에 마치 장승처럼 서 있다. 그래서 그들을 마을 위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천년송에 견줘 지리산 부부송이라고 불러주고 싶었다.

 

경제가 어렵다. 좀 길어서 그렇지 굴은 아니다. 그 끝에서는 반드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질 터널이다. 그래서 지금은 나무의 지혜를 빌려서라도 살아야만 한다. 팔을 들어 올려 자기 그늘에 들어와 있는 생명들에게 햇볕을 쬘 수 있도록 배려하는 층층나무만 봐도, 나무는 사람의 스승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인 김영기 씨는 2005년 〈문학시대〉에 시로 등단. 시집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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