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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초심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고향들녘·둑길 거닐며 마음 잡았던 시절 아련

▲ 박희승 안양지원장
안양지원에서 근무한지도 벌써 10개월이 넘었다. 관할이 안양, 군포, 의왕, 과천 합하여 115만 가량 되니 책임이 무겁다. 대학교 때 안양에 계시는 친척들을 뵈러 왔을 때는 서울 근교의 조그만 소도시였다. 안양에 평촌이라는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논밭으로 있었던 땅들이 번듯한 관공서와 빌딩 등으로 변해 60만이 넘는 큰 도시가 되었다.

 

내 고향은 남원이다. 남원 시내에서도 운봉 쪽으로 20리가 넘게 들어간 쪽들 〈남평(藍坪), 섬진강 상류로서 홍수 때마다 개활지에 푸르른 쪽이 많이 자라서 지어진 이름이다〉이고, 최명희 작가의 소설 혼불에도 나온다. 언제 들어도 정겨운 이름이다. 예전에 전주로 유학 왔을 때 내세울게 없었던 남원에 대해서 부끄러워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디 가나 내 고향을 물으면 전북 남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나는 학교로부터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아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객지에서의 생활은 사람의 성격까지 바꾸게 했다. 조용하고 말이 없던 나는 낯선 타향에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야만 했다. 나는 어디쯤 서 있는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숨어있는 나의 본성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했던 덕분인지 점점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가난한 집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때는 대부분 세끼 밥 챙겨먹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밥 때를 놓치면 굶기 쉬웠고, 식사 때도 음식을 남기는 일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규칙적인 식사가 습관화되었고, 무슨 음식이든 잘 먹는다. 고시공부 할 때나 낯선 환경에 가서도 잘 적응했던 비결인 것 같다.

 

나는 운동을 열심히 하는 편이다. 지금도 틈나면 등산, 축구, 테니스 등을 즐긴다. 초등학교 때 1학생 1구기운동에 따라 핸드볼을 했는데 덕분에 공을 가지고 노는 감각이 길러진 것 같다. 운동을 잘한다는 것은 사람을 사귀거나 사회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어려서 산으로 나무하러 다니거나 들판으로 냇가로 놀러 다니면서 단련된 체력이 역설적이게도 고시공부나 판사 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고 주변 여건이 안정되면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자랑스러워졌다. 외롭고 힘들 때마다 고향 들녘이나 냇가의 방천 둑을 거닐면서 마음을 다잡던 시절이 생각나고, 도시 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고향 산천을 가지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꼈다.

 

아무리 바빠도 1년에 최소한 4번 이상은 고향을 간다. 명절 2번과 여름휴가 그리고 법원 동료들과 지리산 등산하러 갈 때이다. 부모님이 계셔서이기도 하지만 내 고향만큼 포근하고 정이 가는 곳도 없다. 지리산이 가까워서 내려갈 때마다 등산을 하거나 둘레길을 걷거나 정 시간이 없을 때는 차로 성삼재에 올라 노고단까지 산책 정도는 해야 마음이 후련하다. 눈앞에 펼쳐진 지리산의 실루엣은 서울에 올라와서도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돈다.

 

반갑고도 그리운 내 고향 전북!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경제력도 다른 도·시에 비해 다소 뒤지지만 머지않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 북적이는 고향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향을 떠나 살면서도 아련하게 고향을 바라보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기에…지면으로나마 고향 분들께 인사드리고 싶다. 새해에는 청양의 기운을 듬뿍 받아 뜻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길 빌어 본다.

 

△박희승 지원장은 남원 출신으로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부장판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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