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반백이 된 지 오래지만 나도 어려선 ‘나물 캐는 가시내’였다. 햇빛이 골고루 퍼지는 둑이며 논밭두렁을 훑고 다니면서 달래며 냉이 쑥을 캤더랬다. 손길 재바른 동네 언니들이 실하고 보기 좋은 나물들을 몽땅 캐가고 난 뒤여서 나는 찌끄래기들이나 캤다. 그러므로 내 달래 냉이들은 빼빼 말랐고 양도 형편없이 적었다. 하지만 찌끄래기들이나마 내 차지하려고 꼼지락거리다보면 봄햇살에 미역 감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했고 어떤 때는 어질머리가 들어 하늘이 노래지기 일쑤였다. 어질머리를 참고 캐온 달래 냉이를 이것도 나물이라고 캤냐고 어머니는 소쿠리째 내동댕이칠 게 빤하지만, 그래서 나는 또 속울음을 삼켜야겠지만 그래도 둑길에 나설 땐 신이 났다.
머릿속에는 달래가 꽉 들어찼는데 요놈의 달래들 대체 보이질 않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고만고만한 풀들 때문에 영 헷갈린다. 앞대산을 조금 비껴 선 둑길이 눈에 들어온다. 어쩐지 그 곳에 가보고 싶다. 나물 캤던 시절을 간직한 내 직감이 오랜만에 꿈틀거린다. 그 곳엔 틀림없이 사람 손을 안 탄 달래며 냉이 쑥들이 봄바람을 헤적일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무더기 무더기 그야말로 달래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그런데 에게게? 요게 뭐람? 고것들 내 입속으로 들어오려면 한 열흘은 기다려야겠다.
문득 그때의 언니들이 궁금해진다. 내가 따라붙지 못하게 늘 앞서가며 무슨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깔깔깔 봄들녘에 깨소금을 뿌려대던 언니들. 그니들은 버스차장, 방직공장, 가발공장으로들 떠나갔다. 어디에서 살든 곱게 늙어가기를 바라는 내 눈가가 따뜻해진다. 그니들도 나처럼 앞이 가물거리는 눈을 달고 소쿠리 대신 비닐봉지를 들고 어느 둑에 앉아서 저무는 봄날 하루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버스차장이라고 공순이라고 놀림을 받았던, 상처받았던 날들을 저무는 봄햇살에 말리며, 오랜만에 실컷 눈물도 흘리면서 그 때 휘어진 마음이 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말을 나는 언제부턴가 곧이듣지 않았다. 절약과 저축, 검소한 생활이 미덕이 아니라 소비가 미덕이 된 물질만능 이것은 사람마저 수단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여기에 5촉짜리 알전구만도 못한 그것도 권력이랍시고 갑질을 일삼는 촌뜨기들의 억지가 사방에서 거든다. 그런데도 지금이 좋은 세상인가. 살맛나는 세상은 물질화를 통해 익숙해진 것들을 거절하는 데서부터 올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물밥 해먹고 살았어도 그땐 사람들 사이가 이렇게까지 데면데면하진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때가 그림 같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빈곤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할 뿐이라고 냇가랑의 저녁물결이 반짝인다.
오늘 저녁은 딸애가 봉동 장터에서 사온 달래로 찬거리를 만들어봐야겠다.
△이현옥 씨는 전북 완주 출신으로 〈우석대신문〉과 〈문화저널〉 등에 책과 관련된 다수의 산문을 발표했다. 현재 우석대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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