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엔 딸을 많이 낳아서 동네에 또래 친구들이 열한 명이나 되었다. 우리는 떼로 뭉쳐 다니며 고무줄놀이, 술래잡기, 목자치기, 땅따먹기 등, 놀이도 많았는데 나는 자치기가 재미있었다.
작은 막대 양옆을 사선으로 자른 끝을 큰 막대로 때려서 뛰어오른 작은 막대 옆을 탁 치면 멀리 날아가며 내는 바람소리가 좋았다. 때로는 앞 냇가 강변에 나가 돌을 골라 경계선을 만들고, 조그마한 텃밭을 일구어 서로 자기 땅이라고 여기면서 무언가 열심히 심기도 했다. 떡잎이 날 무렵 비가 오면 텃밭이 떠내려 가버려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생산이 목적이 아니도 다만 여러 친구들의 소꿉놀이터였을 뿐이었니까.
어느 날, 친구들과 방천으로 나물을 캐러 갔었다. 처음엔 모두들 열심히 캤지만 시간이 흐르면 나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겨우내 움츠렸던 봄은 행복을 채워주려고 우리의 눈길과 발길 닫는 곳마다 아름다운 꽃향기를 피우며 유혹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지쳐 집에 가자고 친구들을 부르며 일어서는데, 멀리 물길에서 벗어난 작은 웅덩이가 보였다. 물가가 새파란 게 나물이 있겠다싶어 뛰어갔다.
물기를 머금은 풀 속에서 쑥이며 미나리를 뜯다가 바라보니 파란하늘과 흰 구름이 물속에 잠겨있고 물이끼 덮인 돌덩이들 사이로 송사리들이 몰려다녔다. 물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인데 물속에 다른 세상이 잠겨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잠시 예쁜 동화나라에 놀러 온 것 같았다. 행복해하며 멍하니 바라보다가 돌을 하나 던지니 동그랗게 파문이 일며 물고기들이 흩어졌다. 심심한데 물고기나 잡아볼까 싶어 발을 담그니 발이 시렸다.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발을 물속에 몇 번 넣었다 뺐다 반복하니 괜찮아졌다.
물속에서 발을 옮기는 대로 물결이 밀려가며 이끼가 흩어져 물은 흐려지지만 돌덩이를 들어보니 미꾸라지도 숨어 있었다. 어쩌다 두 손으로 미꾸라지를 움켜잡으려는데 손바닥에 닿는 순간 타다닥 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뒷걸음치며 일어서다 넘어질 뻔했다. 다시 고무신을 양손으로 잡고 발로 살며시 돌을 떠들어 물고기를 잡아보려 애를 썼지만 마음같이 잘 되지 않았다.
큰 고기 잡기를 포기하고 송사리나 잡아볼까 하고 나물소쿠리를 비워서 물속에 넣고 이리저리 휘두르고 쫒아 다녔지만 힘만 빠지고 발바닥도 아파 물가로 나왔다. 그래도 재미가 있어 좋아했는데 종아리에 이상한 느낌이 있어 바라보니, 거머리가 붙어있는 게 아닌가? 나물 뜯던 칼을 쥐고 거머리를 떼어보려니, 팔이 떨리고 온 몸이 굳어 눈물만 흘리다 방방 뛰며 엉엉 울었다. 흩어졌던 친구들이 뛰어와 왜 그러느냐고 묻는데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내 종아리에서 피가 흐른다는 소리를 듣고 내려다보니 거머리는 떨어지고 없었다. 온몸에 힘이 빠져 털썩 주저 앉아있으니 누군가 쑥을 찧어 다리에 붙여주며 손으로 누르라고 했다. 잠시 쉬었다 땅에 쏟아 놓았던 나물을 주워 담아 들기도 귀찮아 나물소쿠리를 배에다 붙이고 두 손으로 안고 걸어왔다. 대문 앞에서 배에 댔던 소쿠리를 떼어드니 나물이 한 주먹도 안 되었다. 걸어오면서 소쿠리 양옆으로 흘려버렸나보다. 소쿠리를 대문 기둥에 탁 때려 몇 개 안 되는 나물과 흙을 털어 버리고 이래저래 기운이 다 빠져 나른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하늘을 보니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아, 해님이 나를 예뻐하셔서 나만 따라오고 있었구나!’ 생각했었다. 나른한 어느 봄날 있었던 일이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문진순씨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해 안골수필문학회에서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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