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무형문화재 20호 / 국내 유일 매사냥 전수자 / 학생들 교육 기회 확대
“매사냥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인류 최초의 수렵술입니다. 명맥이 끊기지 않고 면면히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세계 최고 매사냥꾼이라 불리는 박정오 응사는 최근 진안에 매사냥 체험관이 준공된 데 대해 이같은 소감을 밝혔다. ‘응사’라는 말은 사냥에 쓰는 매를 기르고 부리는 사람을 말하는데 ‘매부리’라고도 부른다.
박 응사는 진안군 백운면사무소가 있는 백암리 원촌마을에서 태어나 매사냥을 하며 40여 년간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내년에 희수(77세)를 맞이하는 그는 “우리나라의 매사냥이 2010년 11월 16일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록됐을 때가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그해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정부간위원회에서 한국의 매사냥은 프랑스, 스페인, 몽골 등 11개국과 함께 인류무형유산에 등록됐다.
박 응사는 “매사냥에 관한 한 실습이든 이론이든 둘째가라면 서럽다. 매사냥에 관한 사냥도구 제작기술, 사냥술, 매 포획술 등에서 누구에게도 질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매와 관련된 기술을 제대로 전수받은 사람은 현재 국내에서 그가 유일하며 주변에서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6·25가 터지기 전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른들을 따라 처음 매사냥에 나섰다. 그 후 서른다섯 무렵 “산봉우리에서 멋지게 비행하면서 꿩을 낚아채는 사냥매를 보고 전율을 느껴 매부리(응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박 응사는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매사냥은 부유한 사람들이나 하는 놀이 문화였어. 부잣집 매부리(응사)가 동네 청년들을 몰이꾼으로 소집할 때면 빠진 사람은 굉장히 섭섭해 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지”라고 회고했다.
매사냥은 한때 없어질 위기에 처했었다고 한다.
그는 “6·25 이전에는 백운뿐만 아니고 부귀, 정천 등 진안 곳곳에서 매사냥이 활발했다”며 “(한국)전쟁 당시 먹고 살기가 어렵자 (매사냥에) 관심이 없어져 한동안 단절됐었다”고 말했다. 그 후 백운에서만 매사냥이 되살아났다고 한다.
매는 천연기념물이어서 지정받은 자만이 포획, 사육을 할 수 있다. 박 응사는 그 중 한 명으로 현재 사냥을 위해 2마리의 야생 매를 포획해 자식이나 다름없이 아끼며 훈련시키고 있다.
그는 “요즘에는 방학 때면 학생들이 체험하러 많이 오는데 매사냥에 관심이 높아져 다행”이라며 자신이 만든 응방이 체험교육하기엔 비좁았는데 도청과 군청에서 옛 건물을 리모델링해 크게 만들어 이사해 내년부터는 한결 수월할 것 같다고 했다.
신병화, 전원석, 전영태, 김용기 응사 등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박 응사의 족보다. 박 응사의 후계자로는 장남 박신은 씨가 유력하다. 차남 박신구(46) 씨는 전수장학생이다. 박 응사에게 매사냥술을 전수받고 싶은 사람들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교육 이수증을 받는다. 증서는 문화재청에서 발급하기 때문에 매사냥 공인자격증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현재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20호다. 국가무형문화재 신청을 앞두고 있으며 내년에 지정이 확실시 되고 있다.
그의 비상으로 매사냥이 비상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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