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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침을 여는 시] 저녁에 - 이길상

아무 일도 없다

하여 내가 나에게서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내게서 멀어진 기억들이

떠오르는 저녁

아무렇지 않게 발을 떼지만

자신마저 숨길 수는 없고

아무렇지 않고

아무렇지 않아서

파고드는 기억들

내가 나에게서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지나온 날들이

뼈아픈 저녁

 

꽃그늘 아래서 씁니다. 와락, 피었다 지는 꽃처럼 올해 봄은 부고가 유난히 많습니다. 바람이 불면 꽃나무 가지는 몸을 떨며 하늘에 꽃잎을 날려 보냅니다. 꽃잎은 떨어지면 그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일상이 되풀이되겠지요. 시인은 ‘너무 멀리 떠난’ 기억의 자리를 떠올립니다. ‘파고드는 기억’은 사랑하던 사람과 함께한 시간의 자리가 아닐까요? 시인은 얼마 전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전북문학의 큰어른이었던 이보영 문학평론가입니다. 꽃나무 아래서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발을 떼겠지만’, 문득 너무 멀리 떠나왔다는 생각에 주저앉는 날도 있겠지요. 봄날 저녁에 ‘아무렇지 않게 파고드는 기억으로 뼈 아파’할 시인에게 꽃자리가 있었음을 생각합니다. 삼가 고인이 명복을 빕니다. /박태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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