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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만해도 전국 7대도시안에 들었던 전주시의 위상이 갈수록 추락해 인구 65만으로 18위에 머물러 있다. 수도권 위성도시들의 급성장으로 이 또한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전주가 산업화에 뒤쳐져 도시발전이 거북이걸음을 했지만 그 이면에는 무능한 정치권과 시장 능력부재가 원인으로 작용했다. 청원과 청주가 통합해서 예산이 전주보다 8305억 많은 2조4892억인데 전주는 인구 30만이 무너진 익산보다 5674억 많은 1조6587억 밖에 안된다. 면적과 인구를 기준해서 국가예산이 지원되기 때문에 전주는 이 두가지를 시정의 최우선목표로 놓고 추진해야 한다. 3차례에 걸쳐 완주군과의 통합이 좌절되면서 전주시는 아직까지 성장동력을 못찾고 있다. 전주를 파리 로마처럼 아시아문화심장터로 발전시키겠다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너무 현실성이 떨어진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국 어느 관광지에서나 쉽게 맞볼 수 있는 길거리음식이 한옥마을에 난무해 한옥마을이 정체성 위기에 봉착, 관광객이 발길을 돌린다. 여기에 상가들의 임대료가 비싸지면서 자연히 음식값이 올라가는 악순환이 거듭해 예전처럼 장사가 잘 안되면서 임대상가만 늘었다. 전주한옥마을은 이씨조선의 본향이라서 다른 지역의 한옥마을과 괘가 다르다. 실제 주민들이 한옥마을에 거주하므로 이를 잘 살려 체험형관광지로 더 발전시켰어야 했다. 하지만 시가 특별한 노력없이 관광객이 늘어난 것에 너무 안주한 게 패착이었다. 남부시장을 관광자원화 했지만 대부분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으로 그쳤다. 재선한 김승수 시장은 김완주 송하진시장 때 만든 한옥마을을 보완하고 일부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한 것 말고는 업적이 별로다. 뉴욕의 허드슨강 베슬처럼 한옥마을 말고 덕진공원 소리문화전당 일대를 하나의 벨트로 묶어서 개발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다. 김 시장은 김완주 전지사가 16년간 시장 지사로 재직할때 대부분을 보좌업무에 매달린 관계로 전문성 부족으로 자기칼라가 부족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고시 출신인 김지사는 도시계획과 개발업무에 전문성이 있었지만 김 시장은 옆에서 보고 배웠기 때문에 경험과 전문성 그리고 식견이 부족해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것. 특히 리더십이 떨어져 직원들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참모들의 전문성 결여가 심각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종합경기장 개발 방향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종합경기장 개발은 시민 대다수가 바라는 사항이어서 시의회를 포함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개발계획을 만들었어야 옳았다. 무엇이 급해 그렇게 쫓기듯이 개발계획을 만들었는지 의심이 가고 결국 고양이를 그리는 우를 범했다는 것. 특정정치인과 밀착돼서 시정을 운영한 것도 뒷말이 많다. 특정업체와의 수의계약을 높게 체결해 시민혈세를 낭비했다는 지적과 함께 특례시 지정이 마치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양 너무 일방적으로 밀어부치는 배경에 의아한 시민도 있다. 집권 6년차인 김시장은 무작정 도지사가 되려고 인기영합주의에 매몰되지 말고 시민만을 위해야 한다.
손으로 보는 졸업 앨범을 마주한 것은 2015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개관 1주년을 맞아 기획한 함께 36.5 디자인 전에서였다. 전시의 주제는 공존, 공생, 공진. 디자인의 신체적 사회문화적 환경적 공존과 공생 공진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나누고 나와 다른 사람의 상황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전시회는 흥미로웠다. 디자인에 대한 가치와 역할을 돌아보게 했던 다양한 전시 공간 중에서도 특별히 관객들을 오래 머물게 하는 공간이 있었다. 손으로 보는 3D 졸업앨범 프로젝트였다. 전시대 위에 나란히 놓였던 9개의 흉상. 그 옆에 붙은 안내문을 읽고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9개 흉상의 주인공은 서울의 한 맹아학교 졸업생들이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과정 6년 동안 형제자매처럼 지냈지만 앞을 볼 수 없으니 목소리에 의지할 뿐 내 친구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했다. 처음에 누군가 3D 프린팅으로 이 아이들의 얼굴을 재현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을 것이다. 제작팀은 아이들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제작하기 위해 여러 장의 사진을 촬영해 3D 프린팅으로 입체형 흉상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안겨질 앨범이 어떤 것일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컸다. 드디어 3D 프린터로 제작된 플라스틱 흉상을 처음 만졌을 때, 눈 코 입. 손가락으로 친구의 얼굴을 더듬어가던 아이들은 탄성을 터뜨리며 놀라움과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누구는 코가 예쁘고 누구는 눈이 컸고 또 누구는 이마가 넓고. 함께 가슴 뜨거워졌었다는 전시 관계자가 전해준 이야기다. 3D 프린팅은 프린터로 물체, 다시 말하자면 입체도형을 뽑아내는 기술이다. 이미 의료, 생활용품, 자동차 부품을 비롯해 우리의 일상에서도 활용되는 수많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3D 프린팅의 쓰임새는 아직 진행 중이다. 특히 첨단과학 분야에서의 쓰임이 더욱 빛을 발해 그 확장성이 어디까지 이를지 미지수라는데, 그만큼 각 영역에서 활용되는 쓰임새의 확장성이 놀랍다. 전북 맹아학교 졸업생들도 올해 손으로 보는 3D 졸업 앨범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오랜 교류를 바탕으로 미국 머서대학교 기술팀과 인연이 닿은 덕분이란다. 문득 처음 이 3D 프린팅으로 시각 장애 학생들의 졸업앨범을 제작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해진다. 그 누군가로 인하여 사람 사는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지난 11일 군산 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릴 예정인 서해 EEZ(배타적경제수역) 골재 채취단지 지정 공청회가 어민들의 강력 반발로 무산됐다. 전국 40개 골재 채취업체로 구성된 해양기초자원협동조합이 마련한 이 날 공청회는 군산 어청도 서남방 26㎞ 인근 EEZ 구역을 골재 채취단지로 지정해 5년간 3580만㎥의 바닷모래를 채취하기 위해 어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자리였다. 군산 어청도 인근 EEZ 구역은 지난 2008년 정부에서 국내 모래공급을 위해 골재 채취단지로 지정한 이후 3차례 기간 연장을 거쳐 지난해 12월 채취 기간이 만료됐다. 해양기초자원협동조합은 이에 새로 서해 EEZ 골재 채취단지 재지정을 위한 공청회를 추진했다. 하지만 군산부안고창지역 어민들은 어업인들의 논밭을 파헤치려는 것이라며 결사반대 입장이다. 지난 10년간 어청도 골재 채취단지에서 서울 남산의 1.5배에 달하는 6200만㎥의 바닷모래를 마구잡이로 채취해가면서 수산자원의 서식장과 산란장이 심각하게 훼손된 마당에 또다시 바닷모래를 파가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골재업계에선 태안과 옹진 골재 채취단지에 이어 남해와 서해 EEZ에서 바닷모래 채취가 중단되면서 국내 골재대란과 함께 업계 종사자 1만여 명이 생존위기에 처했다며 정부여당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서해 EEZ에 대한 과학적인 시추 조사를 통해 어민과의 갈등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서해 EEZ의 바닷모래 채취를 놓고 골재업계와 어업계 사이에 갈등이 격화되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바닷모래 채취 갈등은 지난 2004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부산 신항만 건설 등 국책사업에 필요한 골재공급을 위해 남해와 서해 EEZ에서 바닷모래 채취허가를 내줬다. 그러나 지난 2016년 연근해 어획량이 40년 만에 100만t 이하로 떨어지면서 국내 수산물 감소가 바닷모래 채취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정부에선 제한적으로 바닷모래를 채취하도록 했고 이후 모래 채취가 중단된 채 양 측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골재업계와 어업계 모두의 생존권이 걸려 있는 데다 국내 골재 수급과 해양 생태계 보호라는 대의명분도 엇갈려 정부에서도 쉽사리 결론을 못내고 있는 실정이다. 건설경기 부양을 위한 안정적인 골재 수급과 해양 수산자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할 듯싶다.
전고, 그대의 영원한 자랑이듯 그대 또한 전고의 자랑이어라 전주고 교정에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이 글귀가 전주고와 동문들의 모교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100년 역사에 4만여 졸업생을 배출한 전주고는 자타가 알아주는 호남 제일의 명문 고교다. 1978년 전주지역 평준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전주고에는 전국의 인재들이 몰렸다. 대통령만 제외하고 고관대작의 자리를 꿰차지 못한 곳이 없을 만큼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많은 인사들을 배출했다. 우리는 동창생이라는 컷을 달고 전북지역 각 고교를 소개한 적이 있다. 다른 고교와 같은 기준을 적용할 경우 1개 면으로 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다른 고교와 마찬가지로 1개 지면을 할애하다 보니 어떤 기준으로 아무개만 소개됐느냐는 항의가 뒤따랐다. 다른 고교에 없는 불만이었다. 그만큼 전주고가 배출한 인물은 넘쳤다. 전북에서 활동하는 주요 인사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근래 많이 평준화되기는 했으나 전북 도단위 기관장은 물론, 전문직군에서 활동하는 인사들의 출신 고교를 따지면 여전히 전주고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각종 선출직에서 동문 대결이 그리 이상스럽지 않은 것도 전주고가 배출한 풍부한 인적자산 때문이리라. 전주고가 배출한 동량들은 분명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많은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학연이 갖는 폐해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좁은 지역사회에서의 학연은 후배 챙겨주기와 편가르기 등의 부작용이 없지 않았다. 전주고에 대한 선망과 질시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전주고 100년은 이 학교만이 아닌, 전북의 자랑이다. 전주고 총동창회가 올 개교 100주년을 맞아 전북도민들과 함께 하는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교 재학생뿐 아니라 전북지역 학생들까지 범위를 넓혀 장학금을 지급하고, 전북의 미래를 진단하는 학술대회까지 열었다. 학연의 벽에 갇히지 않고 지역사회 발전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겠다는 전주고 동문들의 각오로 읽힌다. 전북의 자랑인 전주고가 지역사회와 더불어 더욱 발전하길 바란다.
최근 도내 호텔을 대표해왔던 르윈호텔이 리모델링 공사에 착수하면서 가동이 중단됐다. 기한을 알 수 없으나 최소 1년 넘게 걸릴 것으로 보인다. 도내 상공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창승 회장이 맡아왔던 르윈호텔은 당초 매수 계약자가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340억원대에 한 업자에게 최종 매각됐다고 한다. 완주 구이 출신인 이창승 회장은 건설과 금융 등으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1991년 제4대 도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황색돌풍에 밀려 실패했고, 1995년 초대 민선 전주시장에 당선됐으나 법률위반 등으로 이듬해 낙마했다. 시장직을 잃고 절치부심한 그는 2008년 제18대 총선에 출마하는 등 정치적 재기를 모색했으나 결국 실패했고 기업인으로서 끝까지 지키려했던게 바로 호텔이었다. 하지만 호텔업도 이제 그의 손을 떠나게 된 모양이다. 한때 성공한 기업인이었던 그가 정치적으로 가장 우뚝 섰던것은 바로 1995년 첫 동시 지방선거였다. 바로 전주시장이었다. 호텔업자였던 그가 전주시장에 당선됐을때 코아호텔은 시장을 만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역대 전주시장의 면면을 보면 사실 그 자리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민선의 경우 초대 이창승 시장부터 시작해 양상렬, 김완주, 송하진, 김승수 현 시장으로 이어졌다. 이창승양상렬씨는 짧게 재임했으나 김완주송하진 전 시장은 나란히 재선가도를 달린후 민선도백에 당선됐다. 송하진 현 지사의 3선 도전 여부가 호사가들의 입줄에 오르는 가운데 벌써부터 김승수 현 시장도 특례시지정을 발판삼아 차기 도백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전망이 나돈다. 실행 여부를 떠나 전주시장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정치적경제적 흡인력을 감안하면 전주시는 전북의 절반이 훨씬 넘는다. 사실 관선때도 전주시장의 위상은 대단했다. 전주시장을 지내면 최소한 부지사 정도까지는 진출했고, 잘하면 그 이상이었다.육종진이상칠송하철씨 등은 전주시장을 지낸뒤 부지사까지 역임했고, 최용복강상원씨 등은 관선 지사까지 지냈다. 전병우씨는 전주시장,부지사에 이어 국회 내무위원장까지 역임했다. 전주시장의 위상이 이처럼 높았다는 것은 전주시의 상징성이 컸다는 건데 솔직히 요즘 전주의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다. 인구나 정치경제적 파이를 키우지 못한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 20년 뒤 전주시장의 위상은 과연 어떻게 될까.
재선의 김승수 전주시장이 가장 잘못하는 것은 전주종합경기장 개발사업이다. 자신이 천명했던 공약과도 동떨어진 개발계획을 내 놓고서 시민들의 여론은 무시한채 마이동풍식으로 무작정 절차이행을 강행하기 때문이다. 김 시장이 발표한 개발계획은 전주시민을 위한 개발계획이 아니라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롯데라는 특정재벌한테 금싸리기 땅을 헌납한 것이나 다를바 없어 철회되어야 한다. 시민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김 시장의 어처구니 없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시장을 감시해야 할 시의회는 견제는 커녕 자기의 목소리를 내지 않아 초록은 동색이라는 비난을 함께 받고 있다. 일부 뜻있는 의원들이 시장의 개발계획이 잘못 되었다고 문제제기를 하지만 상임위원장급 시장 장학생들이 나서서 방해공작을 펴 초선들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고 있다. 시의회 안팎에서는 김시장이 의회를 무시하고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종합경기장 개발 계획을 밀어 부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장학생들이 감싸줘서 가능했다는 말들이 무성하다. 전주가 현재 용머리 고갯길로 호남선을 내지 못한 전철을 밟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답답하다. 전주 유림들의 반대로 호남선이 용머리고갯길로 나지 않아 전주 발전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분명한 것은 전주종합경기장을 어떤 형태로든 개발해야 한다. 개발의 원칙은 이미 정해져 있다. 땅 주인인 도가 전주시한테 전주종합경기장을 넘겨주면서 조건을 달았기 때문에 그 조건에 맞게끔 개발하면 문제될 게 없다. 김 시장이 내놓은 개발계획은 전문성도 없고 생각머리 없이 그냥 내놓은 것이어서 폐기처분해야 한다. 땅 안팔고 50년 백년 임대로 해준다는 것은 눈가리고 아옹하는 것이나 똑같다. 전주 중심부의 금싸라기 땅 종합경기장은 미래지향적으로 개발돼야 한다. 이미 시민 70% 가까이가 여론상 개발해야 한다고 찬성해 그 시기를 무작정 늦춰선 안된다. 그간 도청이전을 잘못해 전주발전을 가로 막은 것처럼 다시금 그같은 누를 범치 않아야 하기 때문에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종합경기장 개발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지난 83년 전주역 외곽이전으로 그 자리에 세웠던 현 시청이 건축 당시부터 너무 비좁게 지어져 많은 문제가 생겼다. 인접 건물을 임대해서 사무실로 사용해 시민의 혈세가 낭비되고 심지어 주차장이 적어 민원인들이 차댈곳이 없어 불법주정차로 과태료를 물어왔다. 앞으로 지을 시청사는 전주 완주통합을 겨냥한 통합청사이어야 하기 때문에 종합경기장이 위치로도 적지다. 그래야 공익을 충분하게 반영할 수 있다. 지금부터는 침묵하는 양심세력들이 전주종합경기장 개발계획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면서 다시 세우라고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틀린 것을 바르게 지적하고 나설 때 전주가 발전할 수 있다. 김 시장도 시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용하는 만큼 무작정 소신이라고해서 조자룡 헌칼쓰듯 하면 안된다. 시의회도 이번 기회에 시민의 편에 서서 감시와 견제역할을 다해 환골탈태하길 바란다.
척독(尺牘)은 편지의 한 종류지만 그중에서도 짧은 편지를 일컫는다.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척독은 30cm 정도의 크지 않은 나무 토막위에 쓴 편지를 일컬었으나 후에는 종이 편지도 척독으로 분류됐다. 편지 형식의 짧은 글에 진심을 담은 척독은 형식도 자유로워 가까운 사이에 주고받았던 사적인 편지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척독이 꽃을 피운 것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다. 적지 않은 문집을 통해 당대의 척독이 전하지만 손으로 쓰는 편지 대신 휴대전화 문자나 이메일이 자리 잡은 지금 척독은 아무래도 낯설다. 전주국립박물관이 기획한 선비문화 특별전에서 척독을 만났다. 수백 년을 건너 전시실에 놓인 짧은 편지의 주인들은 척독문화의 유행을 이끌었던 조선 후기 선비들이다. 박물관의 자료를 보니 척독을 이끈 이 역시 조선 시대 문인인 허균이다. 그는 명나라 사신 주지번에게 <고척독>을 받고 자신의 문집에 처음으로 척독을 실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척독은 격식을 중시한 옛 문장의 틀을 벗고 개인적인 내면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형식으로 발전했다. 선비들이 그만큼 척독을 일상에서 즐겼다는 증거다. 전주박물관 전시에서는 특히 조선후기의 대표적 문인 이덕무와 박지원의 척독이 눈길을 끈다. 일상을 소재로 자신이 느낀 감정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몇몇 척독을 들여다보니 거기 함축된 메시지의 울림이 크다. 지인들에게 건네는 편지는 대체로 정깊은 안부 인사를 담고 있지만 선비로서 지켜야할 삶의 가치와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간결하고 짧은 문체로 발전해간 척독은 사적인 편지글이지만 누군가와의 소통하려는 바람이 담겨 있는 통로였다. 그렇고 보니 척독은 오늘날의 SNS 와도 같은 것 아니었을까 싶다. 길지 않은 문장에 담아낸 사적인 생각. 주고받으며 교류하는 형식이 오늘날의 SNS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다시 들여다보니 기능이나 역할만 비슷할 뿐 그 차이가 크다. 척독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품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의지의 출구여서인지 문장 하나까지도 헐겁게 쓰지 않았다. 상대방을 향한 애정과 존경이 넘쳐나니 이런 글이 바로 진정한 교류의 방식이다 싶다. 오늘날의 SNS도 개인의 품격을 드러내는 말의 성찬이 이어진다. 눈여겨 다시 읽게 되는 좋은 글들도 있으나 화를 불러일으키는 온갖 글들이 쏟아지는 요즈음, 말과 글이 가져오는 폐해가 심상치 않다. 척독의 품격을 다시 불러낼 방법은 없을까. /김은정 선임기자
지난 3일 오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머르기트 다리에서 울려 퍼진 헝거리인들의 아리랑 선율이 허블레아니호 침몰사고 유족과 우리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날 헝가리 아마추어 합창단 치크세르더(Csikszereda) 소속 합창단원과 헝가리 시민 400여 명이 허블레아니호 참사를 추모하며 합창한 경기아리랑은 우리 국민들에게는 슬픔과 애틋함을 더했다. 전통 민요인 아리랑은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비공식 국가(國歌)나 다름없다. 아리랑만큼 한민족의 한(恨)과 정서가 잘 표현된 곡이 없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정선아리랑, 호남의 진도아리랑, 경상도의 밀양아리랑 등 이른바 3대 아리랑이 있지만 이날 헝가리인들이 부른 경기아리랑은 우리 정서에 가장 잘 맞는 세마치장단이어서 국민의 노래로 자리 잡았다. 조선 말기나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경기아리랑은 1926년 춘사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로 불리면서 전국으로 퍼졌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경기아리랑의 노랫말은 일제 침탈에 따른 민족적 슬픔과 울분을 잘 대변했다. 또한 사랑과 이별, 여인들의 애환 등 민초들의 희로애락이 가사에 녹아 있다. 따라서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전승되는 우리 민요 60여 종, 3600여 곡 가운데 경기아리랑이 대표곡으로 불리고 있다. 이날 다뉴브강의 다리 위에서 나직하게 울려 퍼진 헝가리인들의 아리랑 플래시몹은 그래서 우리에게 더 특별하게 전해졌다. 행사를 기획한 치크세르더의 음악감독 아르파드 토트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그는 8년 전부터 대구 계명대에서 초빙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그의 아버지도 헝가리에 있는 한인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행사는 페이스북 헝가리안-코리안 그룹 페이지를 통해 부다페스트 시민들에게 알려지면서 추모행사 장소인 머르기트 다리를 가득 메웠다. 인도뿐만 아니라 차도까지 차지한 참석자들은 유튜브를 통해 미리 노래를 연습하거나 아니면 즉석에서 인쇄된 악보를 보고 아리랑을 합창하면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허블레아니호 참사에 대한 책임감으로 아리랑 플래시몹 추모행사를 연 헝가리 시민들을 통해 한국과 헝가리, 양국의 공조체제가 강화되어서 실종자 찾기와 사고 수습이 조속히 이루어졌으면 한다. /권순택 논설위원
새만금은 전북에 계륵 같은 존재였다. 선거 때마다 새만금 개발을 놓고 온갖 감언이 쏟아졌으나 역대 어떤 정부도 전북의 허기를 채운 적이 없다. 새만금 때문에 다른 대형 프로젝트들이 외면받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새만금을 그만 우려먹자는 자조적인 한탄이 나왔을까. 그럼에도 선거 때면 다시 새만금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새만금을 놓을 수 있었겠는가. 긴 세월 새만금 타령에도 새만금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농업용지, 산업용지, 관광용지 등으로 개발하는 것이 그저 뜬구름이었다. 그나마 미래 청사진을 떠올리도록 한 것이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때 공약으로 내건동북아의 두바이였다. 새만금 방조제가 완성되기 전 벤치마킹 대상은 기존 세계 최장 방조제자의 네덜란드 주다찌였으나 새만금과 여건이 달라 개발 모델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새만금의 모델로 거론된 두바이에 대해서는 보수와 진보 진영 상관없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두바이에서 열린 경제인 간담회에서 한강의 기적보다도 더 놀라운 기적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걸음 나아가 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공동위원장에 두바이국제금융센터 회장을 임명하기도 했다. 세계 최고층 건물(높이 828m, 162층)의 부르즈 칼리파 등 이색적인 고층건물이 즐비하고, 축구장 5개보다 큰 세계 최대의두바이몰쇼핑센터, 100개가 넘는 5성급 이상 호텔 등을 보면서다. 엊그제 새만금 수변도시 조성사업이 예타를 통과했다. 야미도신시도 일원 국제협력용지 내 6.6㎢(200만 평) 부지에 거주인구 2만명 규모의 주거와 업무, 관광레저가 가능한자족형 스마트 수변도시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주거시설과 함께 공공 클러스터 및 국제업무지구복합리조트 등도 들어선다. 수변도시는 새만금의 미래를 보여줄 핵심 사업이다. 수변도시 조성에 국가 투자가 이루어지게 되면서 먼 미래의 꿈으로 여겨졌던 새만금 도시가 성큼 눈앞에 다가선 것이다. 그러나 새만금 도시가 어떻게 그려질 지는 아직도 백지 상태다. 흔히 두바이 신화를 창조적 비전과 과감한 투자, 강력한 추진력에서 찾는다. 새만금에 두바이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어도 그 기백은 본받을 필요가 있다. /김원용 선임기자
며칠전 참 낯선 풍경 하나가 전국적인 뉴스가 됐다. 송철호 울산시장이 지난달 29일 한국조선해양 울산 존치 시민 총궐기 대회에서 삭발식을 한 것이다. 울산시는 한국조선해양 울산 존치를 강력히 촉구한다며 현대중공업 법인분할(물적분할)에 따라 생기는 중간지주회사 한국조선해양 울산 존치를 촉구했다. 울산 현대중공업 종업원 수는 호황기 때 협력업체 포함 6만7000여 명을 자랑했으나 현재는 구조조정으로 3만2000여 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그 여파로 2015년 120만 명에 가깝던 울산 인구는 현재 115만2000여 명으로 줄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마디로 현대중공업이 곧 울산이라며 배수진을 친 것이다. 송철호 울산시장이 과연 누구던가. 1980년대 부산울산 지역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인권노동 변호사 3인방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집권여당 소속 자치단체장이 얼마든지 청와대나 관련 부처와 협의할 수 있었음에도 상당한 부담을 떠안으면서 이렇게까지 강수를 둔 것은 정치적 제스처 이기는 하지만 어쨋든 지역민의 고충을 덜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한달여 전에 송철호 시장은 전국 종합 건설사 260곳에 매우 이례적인 편지를 보낸 바 있다. 울산에서 공사를 하고 있거나 예정된 공사에 지역 근로자와 지역에서 만든 자재장비를 쓰고 하도급 공사에도 지역 기업을 많이 참여시켜 달라는 호소문이었다. 보여주기식 삭발 쇼 한번 하고 건설업체들에게 호소문 좀 보낸게 무슨 대수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울산은 소득수준이 전북의 두배가 넘는 곳이다. 2017년 기준 전북 도민의 연간 GNI(지역내 총소득)이 2455만원이나 울산은 5033만원이나 된다. 원래 가난한 집은 더 어려워져도 큰 불편이 없는데 잘사는 집은 어려워졌을때 더 고통스럽다는 얘기다. 문득 IMF때 서점가를 강타했던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란 책이 떠오른다. 전세계적으로 4000만 부 가까이 팔린 밀리언셀러다. 교육은 많이 받았지만 가난했던 친아버지와 정규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부자가 된 친구 아버지의 대조적인 사고방식을 자세하게 풀어낸 도서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우리사회에서는 경제에 대해 묘한 잣대가 있다. 속으로는 부자가 되고 싶지만, 겉으로는 돈을 경멸하는 이중적 태도 말이다. 지역 정치인이나 행정 책임자들이 가난한 아빠를 지향한다면 우리에겐 영원히 반 지하방에서 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네 처럼 말이다. 이젠 부자 전북이 될지, 가난한 전북이 될지 결단하고 행동해야 할 시점이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겸 논설위원
지난 13대 대통령 선거 이후 치러진 각종 선거가 지역주의로 점철됐다. 인물이나 정책 공약대결은 오간데 없고 오직 누구 편이고 어느쪽으로 줄 섰느냐에 따라 당락이 갈렸다.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되면서도 어김없이 황색깃발만 달면 당선은 떼논 당상이었다. 1995년 실시된 자치단체장 선거도 판박이였다. 경쟁의 정치는 실종됐고 지역에 기반을 둔 특정정당 공천이 당선으로 이어지는 선거구도라서 공천받는데만 혈안이었다. 사실상 선거는 요식행위였다. 공천권자 한테 환심사기에 급급했다. 선거때마다 유권자들은 현역을 바꾸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역정서에 함몰된 탓에 설령 이같은 의지가 있더라도 실제로는 불가능했다. 지난 19대 총선 때 민주통합당은 매너리즘에 빠진 지역정치권에 새피를 대거 수혈한다는 공천 방침에 따라 도내에서 도의원 2명을 포함 9명을 당선시켰다. 하지만 정치가 의욕만 갖고 되는가. 그 당시 정치경험이 일천한 초자들이 민주통합당 공천을 받아 쉽게 당선 되었지만 경험부족과 인맥구축이 제대로 안돼 의정활동을 제대로 못했다. 특히 전주 출신 초선 3명이 패기차게 의정활동을 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아니다로 끝났다. 도민들은 존재감 없이 KTX나 타고 전주에서 여의도나 오가는 이들을 낙선시켜야 한다고 여론을 키워 나갔다. 19대 11명의 의원 중 민주통합당으로 배지를 달고 나간 9명의 의원들이 낙제점 이하의 의정활동을 해 지역분위기가 급속도로 물갈이로 바뀌었다. 그 당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안철수를 중심으로 한 국민의당이 적극적으로 정치개혁을 표방하고 나서면서 녹색돌풍을 일으켜 20대 총선 때 전북에서 10석 중 7석을 싹쓸이했다. 진보적인 색채가 강하고 정치개혁을 자임하고 나섰기 때문에 도민들은 민주통합당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국민의당한테 몰표를 안겼다. 그 당시 여권 대통령 후보를 지냈던 정동영후보가 냉온탕을 오가며 낙선해 기진맥진해 있던 때에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며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에서 민주평화당으로 당명을 바꿔 당대표를 맡고 있는 정의원의 지금 정치적 위상과 역할은 어떠한가. 당지지도가 너무 낮아 존재감이 없다. 바른미래당 다음으로 제4당에 있지만 민주당과 자유한국당과의 긴장관계에 있는 현 대치정국에서 캐스팅보트 역할도 못하고 있다. 도내서는 안방을 차지해 송하진 도정을 거침없이 비판하지만 민평당이 여당인지 야당인지 그 정체성을 의심할 정도로 선명성이 떨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민평당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GM군산공장 폐쇄로 전북경제가 절단났는데도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강력하게 투쟁하지 않아 실질적인 지원책을 얻어내지 못했다. 제3금융중심지 지정 보류가 잘못됐다고 밀어부쳐도 정부 여당은 꿈쩍도 안한다. 민평당은 전주 상산고 재지정 문제나 지역 핫이슈인 대한방직 부지 활용문제에 가타부타 말이 없다. 출마때 당선만 시켜주면 하늘에 있는 별이라도 따다 줄 것처럼 자신만만했던 그들, 지금 뭘하는가. /백성일 부사장 주필
전주국제영화제가 오랫동안 지켜온 프로그램이 있다. 지금은 이름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전주영화제 간판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디지털 삼인삼색이다. 돌이켜보면 20년 전, 디지털이 21세기 영화의 혁명을 주도해나갈 것이라고 예견되었던 시절이라 하더라도 첫 걸음을 내딛는 영화제가 디지털을 중심에 세운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디지털 삼인삼색은 기대 이상으로 영화제의 성장을 도왔다. 독립과 대안은 디지털을 만나 가치와 의미를 더했으며 영화제의 정체성은 더 견고해졌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디지털 삼인삼색은 갓 태어난 전주영화제의 존재를 해외에 알린 보석 과도 같았다. 해마다 디지털 삼신삼색에 초청된 국내외 감독들은 실험적 작업의 새로운 영화로 관객들을 만났다. 그들 사이에 봉준호 감독도 있었다. 2004년 전주영화제는 홍콩의 유릭와이, 일본의 이시이 소고와 함께 그를 초대했다. 자신만의 방법과 색깔로 디지털의 미학을 보여줄 감독들이었다. 작품성과 예술성을 돋보인 그해 삼인삼색 작품은 화면에서부터 밀려오는 감독들의 독립적 개성으로 호평을 받았다. 제23회 벤쿠버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되었으며 일본 제작사이자 배급사인 업링크는 작품 판권을 사들였다. 규모는 작았지만 판권수출은 영화제의 국제적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뿐만 아니라 작품성으로 차별화된 전주영화제의 가능성을 여는 시작이었다. 사실 전주영화제와 봉감독은 인연이 깊다. 그의 첫 장편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가 상영됐고 디지털 삼인삼색(2004년)과, 국제경쟁 부문 심사위원(2008)으로 전주영화제를 찾았다. 2005년의 폐막작은 그가 각색을 맡았던 <남극일기>였다. 봉준호 감독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 소식을 접하며 그때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잘 만들겠다는 욕망보다는 못 찍으면 어떻게 하나란 불안감을 배터리 삼아 영화를 만든다. 상업성이나 작품성은 감독이 의도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지극히 결과론적인 것이다. 창작자로서 무엇을 계산하기 보다는 직관적이며 즉흥적으로, 사소하더라도 꼭 찍고 싶은 장면이 있으면 그것을 향해 돌진하는 편이다. 그를 스타 감독으로 이끈 <살인의 추억>부터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그리고 칸의 황금종려상을 끌어낸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영화가 지닌 미덕은 빛난다. 계산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실현해내려는 순정한 정신이 가져온 결실일터다. 그의 수상이 더 반갑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유명한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한국특산종이다. 덕유산 정상과 지리산 반야봉과 세석평전 천왕봉 일대, 그리고 한라산 정상 등 고산지대에서만 자생하는 세계적인 희귀 수목이다. 2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면서 대부분 도태됐지만 우리나라에서만 살아남은 화석나무로 생태학적 가치가 매우 크다. 미국의 식물 채집가 어니스트 윌슨이 1917년 7월 한라산에서 구상나무 종자를 채집해 가면서 구상나무의 존재가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때 채집한 종자가 미국 보스턴에 있는 수목원에서 성목이 되어 자리잡고 있다. 이를 개량해서 전 세계로 역수출했고 오늘날 크리스마스트리로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세계 유일의 우리 구상나무가 멸종 위기에 처했다. 한라산과 덕유산 지리산 정상 일대에 서식하는 구상나무가 집단 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라산 구상나무의 39%가 고사 중이고 백록담 왕관릉 일대에서는 78%가 말라 죽었다. 덕유산에서도 고사목 발생률이 25.3%, 지리산은 22.9%로 나타났다. 구상나무는 이미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에서 세계적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했고 국내에서도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으로 보호되고 있다. 최근 구상나무가 집단 고사하는 이유를 밝힌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받고 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의 구상나무 고사 원인 추정 논문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한 강수량 증가와 증발량 감소로 인한 토양의 수분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기존에는 여름철 폭염과 가뭄, 그리고 겨울철 적설량 감소와 한건풍에 의한 피해 등이 구상나무의 고사 원인으로 제기됐었다. 앞으로 구상나무의 집단 고사 원인에 대한 보다 정밀한 연구조사가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기후변화에 따라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구상에는 대략 870만 종의 생물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미 100만 종에 달하는 동식물은 지구상에서 멸절됐다. 모든 생물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에 한 생물 종이 사라지면 도미노 효과처럼 다른 생물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 말라 죽어가는 구상나무의 신음을 우리가 결코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2012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아 꿈을 접어야 했던 미국 보스턴대 야구부 주장 피트 프레이티스를 돕기 위해 펼쳐진 캠페인이 SNS와 결합을 통해 전 지구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이스버킷챌린지다. 얼음물을 끼얹은 후 다음 도전자를 지명해 기부릴레이를 이어가는 방식의 이 캠페인에 오바마 전 대통령과 빌 게이츠 등의 유명인사가 참여하면서 세계적 관심을 끌게 됐다. 아이스버킷챌린지와 같은 방식의 참여운동이 SNS시대 새로운 캠페인 방식의 모델로 떠올랐다. 아이스버킷 대신 캠페인 이름을 넣은 챌런지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심심치 않게 달구고 있다. 거대 담론이 아니더라도 실생활에서 불편하거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기 위한 사회운동들도챌런지라는 옷을 입고 SNS를 통해 번지고 있다. 송하진 전북지사가 엊그제소생 캠페인에 동참했다고 언론과 SNS를 통해 소개됐다. 소생 캠페인(닥터헬기 소리는 생명입니다의 준말)은 급성질환이 발생했을 때 생명을 구해주는 역할을 하는 닥터헬기가 소음문제 등으로 자유롭게 이착륙하지 못하는 제약을 타개하기 위한 캠페인이다.플라스틱 프리 챌린지 또한 현재 각계 인사들의 참여로 주목을 받고 있다. 1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이 캠페인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이스버킷 이후 국내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챌런지로 올 3.1운동 10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진행된 독립선언서 필사 챌런지를 꼽을 수 있다. 독립선언서 한 문장을 종이에 적은 뒤 다음 참여자를 지목하는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된 이 챌런지는 독립선언서를 다시 한 번 읽으면서 3.1운동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독립선언서 필사 챌런지를 보면서 동학농민혁명이 오버랩 됐다. 동학농민군이 내걸었던대의를 필사하는 챌런지를 진행한다면 혁명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가 훨씬 깊고 넓어질 것이란 생각에서다. 동학농민혁명을 기리는 데 중요한 문제의 하나가 혁명의 대중화다. 무장창의문 백산격문 폐정개혁안 등 농민군이 바라고 외쳤던 세상이 SNS를 통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무주에서 반딧불 축제가 열린다. 올해로 23회째를 맞은 반딧불축제는 전국 대표축제인데 무주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는데 이 축제의 덕이 크다.반딧불이의 숙주는 바로 다슬기다. 숙주(宿主)란 기생 생물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생물을 말한다. 다른 곳에서 반딧불이가 사라질때 유독 무주 남대천에서 다슬기가 풍성하게 서식함으로써 무주가 반딧불이의 대명사가 되는 계기가 됐다. 26년전 무주 남대천 비관리청 하천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숙주인 다슬기 피해 문제가 도의회에서 크게 문제가 된 일화도 있다. 다슬기는 국내 하천, 계곡, 호수를 가리지 않고 맑은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서식하는 민물고둥이다. 지역마다 부르는 명칭도 다르다. 경북에선 고둥, 경남에선 고디, 전라도와 충청도에선 대사리, 강원도에선 꼴팽이라고 부른다. 예전엔 다슬기가 국내 어디에서나 흔했으나 지금은 씨가 말라 다슬기 치패를 방류하고 있고 식용은 수입산이 많다. 요즘엔 다슬기탕, 다슬기 수제비, 다슬기 부침 등 각종 요리가 개발돼 식당에서 인기몰이를 하는 곳이 제법된다. 그런데 다슬기를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다슬기 아저씨로 알려진 이호림씨(54)다. 사업에 실패한뒤 생사의 기로에 선 그를 일으켜 세운게 바로 다슬기였다. 전주시 완산구 색장동에 있는 호림이네는 다슬기 아저씨 이호림씨가 운영하는 전문 식당이다. 사연인즉 이렇다. 천애고아로 자라난 이씨는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채 한때 주먹세계에 몸담았다고 한다. 이후 사업을 했으나 30세 전후한 시기에 그는 전 재산을 다 날리고 길거리에 나앉게됐다. 당장 먹고살기 위해 잠수안경을 쓰고 하천을 훑고 다니면서 다슬기를 잡아 팔기 시작했다. 어느날 다슬기로 밥을 지어보니 무척 맛이좋아 지인 몇명에게 대접했더니 당장에 장사를 하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다슬기로 밥을 지은것은 그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련한게 바로 완주군 상관면 신리에 있는 한 농가주택을 임차해 차린 호림이네였다. 죽을약 옆에 살 약이 있다던가. 오랜 고생끝에 기적처럼 돈이붙기 시작했다. 구석진 시골 동네를 찾는 고객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나면서 몇년전 남원가는 길 대로변에 2000평 넘는 부지를 구입해 옮겼다. 굶지않기 위해 잠수복을 입고 첫 입수할때 무척 두려웠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물속을 다니는게 편안했다고 한다. 물을 터득한 후엔 들판과 산을 다니면서 산도라지, 산더덕, 버섯, 자연 약초를 채집하고 있다. 반딧불이의 숙주인 다슬기가 나락에 빠진 한 젊은이에게도 역시 숙주가 된 사연이 흥미롭다. 다슬기 아저씨는 누군가에게 자신도 숙주가 되고싶어 해마다 어려운 이를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
우는 아이 젖준다는 말이 있다. 우는 아이를 멈추게 하려면 젖을 줘서 달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상살이도 똑같다. 도민들은 멍청하게 가만있지 말고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계속해서 울어대야 한다. 우는 강도에 따라 젖양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체면이나 염치 불구하고 울어대야 한다. 중앙에서 보면 전북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이 교량역을 하지만 전북의 사정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순진무구하게 그들만 믿고 있다간 좋은 기회 다 놓칠 수 있다. 전북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기울어졌던 운동장을 바르게 잡아 지역개발이 앞당겨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커서인지 지난 2년을 보면 피부로 느낄만한게 없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GM군산공장 폐쇄로 군산경제가 반토막 나면서 전북경제가 휘청거렸는데도 정부지원은 거의 립서비스로 그쳤다. 다행인 것은 군산시민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 치는 바람에 MS그룹컨소시엄이 구성돼 한국GM군산공장을 인수하는 성과를 얻어냈다. 앞으로 MS그룹은 2000억을 투자해서 2021년부터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 사례에서 보듯 군산시민들이 울어대고 한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이같은 성과를 얻어냈다. 도민들은 전북이 낙후됐기 때문에 중앙정부에서 잘 알아서 지원해주겠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국가예산 확보는 논리가 먼저 앞서야겠지만 정치적인 영향력에 따라 얼마든지 좌우되기 때문에 지역에서 큰소리로 울어대야 한다. 약간 규모가 축소됐지만 새만금국제공항예타면제도 한목소리로 울어대서 얻어냈다. 이왕 울어댈바에야 더 크게 울어댔어야 했다. 사실 전북은 24조 예타면제사업에서 1조원 밖에 확보를 못했다. 성과라기 보다는 지난 대선 때 도민들이 밀어준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진보에서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지금이 전북발전을 위해 좋은 기회인데 시간만 가고 얻은 것이 별로여서 안타깝다. MS그룹이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GM군산공장을 인수한 것처럼 도민들은 열패감을 떨쳐 버리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그 추운 겨울 촛불을 들고 나섰던 그 용기를 되살려야 한다. 전주종합경기장 개발방식은 틀렸다. 개발은 찬성하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롯데한테 금싸라기 땅을 헌납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잘못됐다. 특혜치고 이런 특혜는 찾아볼 수 없다. 눈가리고 아옹하는 것이나 다를바 없다. 시민들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공론화 과정을 생략했을까. 기가 찰 노릇이다. 도청소재지인 전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발전이 더디다. 계속해서 편 나누기와 인기영합주의 정책만 펴다보니까 청주시보다 예산이 8300억원 적은 1조6587억 밖에 안된다. 전주시민들도 군산시민들이 위기극복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목소리를 키울때는 키워야 한다.
영국의 영화감독 켄 로치(Ken Loach, 83). 사회적 주제로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해온 그의 신작 <쏘리 위 미스드 유>가 올해 칸영화제를 통해 다시 화제다. 2년 전 칸영화제가 그에게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안긴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같은 연상에 있는 영화다. 전작이 사회복지 시스템을 통해 자본주의와 노동문제에 대한 문제를 비판했다면 신작 또한 밤낮없이 일해도 고단하기만한 노동자의 삶과 불안정한 고용의 여파를 통해 왜곡된 노동현실을 비판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빚더미에 나앉은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임시직 택배기사로 생계를 꾸려가는 가장이 주인공이다.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기계화된 노동 환경이 가져오는 왜곡된 노동 현실은 비단 영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과도 많이 닮아 있다. 1963년 BBC PD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감독의 관심은 사회적 소외계층과 노동자에 닿아 있었다. 2006년 59회 칸영화제에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더 널리 알려진 그는 2007년 베니스영화제 명예 황금곰상, 201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등을 수상하면서 세계적 거장으로 우뚝 서기까지 줄곧 사회 현실을 직시하는 걸작들로 관객들을 만났다. 소외된 이웃들의 현실을 주목하며 그들의 삶에 힘이 되는 영화로 사회운동을 해온 감독에게 블루칼라의 시인이나 노동자를 위한 감독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많은 사람들이 토론을 시작했지만 정권의 정책과 시스템은 바뀌지 않았다. 보수 정권은 여전히 배고픔을 무기로 사용한다. 영화나 책 음악 등 문화로 토론을 시작할 수 있지만 변화를 만드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정권의 생각을 영화로 바꿀 수는 없지만 그에 반대하는 의견은 커지고 있다.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자신의 영화로 노동환경이 바뀌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지만 사회 현실을 직시하는 관점은 더 깊어진 듯하다. 은퇴를 예고했으나 다시 신작을 내놓은 이유도 거기 있을 터다. 정작 칸에서는 경쟁부문에 초청된 그의 신작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전해지지만 그게 대수겠는가. 수많은 임시직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마주하면서도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성찰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영화 한편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줄 거장의 신작이 기다려진다.
완주 화산면에서 한우를 사육하는 김 모씨(62)는 월 300만원씩 월급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농협과 출하약정을 체결하고 면사무소에 농업인 월급제를 신청해서 2월부터 11월까지 매달 300만원씩, 연간 3000만원의 연봉을 받는다. 김씨는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면서 생활비와 사료비 걱정을 덜게됐다. 완주군에서 김씨처럼 월급받는 농업인은 50명 가까이 된다. 이들은 매달 30만원에서 최대 300만원까지 지급받으며 매월 300만원씩을 받는 농업인도 18명에 달한다. 완주군은 계약수매 약정 품목을 벼와 한우뿐만 아니라 생강 마늘 양파 곶감 블루베리 등 7개 농작물로 늘렸다. 농업인 월급제는 지난 2013년 경기도 화성시에서 처음 도입했다. 농업인이 농협 등과 약정한 계약 수매대금을 매월 나눠서 미리 받고 나중에 수확해서 갚는 제도다. 자치단체에선 농업인의 이자비용을 지원한다. 도내에서는 임실군이 지난 2015년 처음 시행했으며 이후 2016년 완주군에 이어 익산시 남원시 무주군 등 5개 시군이 참여하고 있다. 대상 농작물도 벼를 비롯해 고구마 느타리버섯 수박 상추 사과 천마 머루 오미자 아로니아 포도 복숭아 고추 딸기 토마토 등 지역 특산물로 확대했다. 지난해까지 농업인 월급제를 시행한 자치단체는 전국 27개 시군에 신청자는 4600여 농가에 이른다. 총 지급액은 366억 원에 달했다. 지난 2016년 10개 시군에서 1700여 농가가 참여했던 것에 비하면 2년 새 2.7배 늘었다. 올해는 전남과 강원 등지에서 10개 시군이 추가로 참여했다. 농민들은 그동안 추수 때나 목돈을 만질 수 있었기 때문에 연초에 생활비나 자녀 교육비, 영농비, 인건비 등을 대출받아 쓰고 이자까지 부담해야 했다. 그러나 농업인 월급제를 통해 매월 월급을 받아 가계비와 영농비 등을 쓸 수 있기에 계획적이고 안정적인 가계 운영이 가능해졌다. 그렇지만 농업인 월급제가 실질적인 농업소득을 높이지는 못한다. 갚아야 할 돈을 미리 당겨서 쓰는 차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농 규모나 경작 면적에 따라 월급이 차등 지급되기에 소규모 농가는 이마저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유럽의 농업선진국처럼 농민기본소득보장제를 시행하거나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고려해서 농민소득을 보전하는 공익형 농업직불제 도입이 필요할 때다.
이창호 국수는 전주가 낳은 한국 바둑의 전설이다. 지금은 전성기를 지나 각종 타이틀을 후배들에게 물려줬지만, 이창호는 1990년대 세계기전들을 휩쓸었다. 최연소 타이틀 획득(14세 1개월, 바둑왕전), 최연소 세계챔피언(16세 6개월, 동양증권배), 국내 16개기전 사이클링 히트, 최다관왕 기록(13관왕, 94년), 세계대회 그랜드슬램, 통산 140여회 타이틀 획득 등 그의 성취는 깨지기 힘든 기록들이다. 이창호는 오늘날 우리 바둑이 스포츠 분야로 분류되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90년대 중반 거의 모든 타이틀을 거머쥔 이창호가 현역병 판정을 받아 입영할 처지에 놓이면서 한국리그 자체가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당시 바둑계가 이창호의 병역특례를 요구했으나 마땅치 않았다. 병역특례가 스포츠와 예술분야에 국한된 상황에서 바둑이 어느 분야에 속하는지, 어느 수준의 성적을 내야 그 대상이 되는지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둑을 스포츠로 편입시키고, 세계바둑대회 우승자를 그 대상으로 하는 병역법 개정이 이뤄졌다. 사실상 이창호법인 셈이다. 바둑이 스포츠로 분류되긴 했으나 바둑의 정체성 논란은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대근육을 사용하지 않는 바둑이 어떻게 체육이냐는 논리에서다. 바둑이 전국체육대회 시범종목에 처음 포함된 것은 전북에서 개최된 2003년 대회 때다. 경기장은 부안 줄포였다. 부안 줄포가 한국바둑을 태동시킨 조남철 대국수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도 컸다. 그러나 바둑이 전국체육대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그로부터 다시 10여년이 흐른 2016년 충남대회때부터다. 한국 바둑의 역사를 써온 전북 바둑이 또 하나의 새 역사를 만들었다. 전북을 연고로 한이스타항공 바둑단이 어제 창단식을 갖고 국내 첫 아마추어 실업 바둑팀으로 출범을 알렸다. 국내 바둑계가 프로 기사들을 제외하면 아마추어 기사들이 안정적으로 연마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실업팀 창단이 국내 바둑계의 숙원이었다. 그런 만큼 이스타항공 실업팀이 바둑 인재 양성과 바둑의 대중화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속도를 추구하는 항공사와 느림의 미학을 갖고 있는 바둑의 만남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 지도 관심이다.
며칠전 전주에서는 사소해 보여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은 사건 하나가 있었다. 민주당 전주시 병 지역위 소속 지방의원들이 정동영 의원을 겨냥해 현수막 정치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자 민평당 도당은 기자회견 배후가 누구냐며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겨냥했다. 내년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힘겨루기가 본격화함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정동영 의원측이 의정활동 성과를 녹색 플래카드로 알리고 나서자 김성주 이사장 측에서는 당신이 직접 한것도 아니면서 왜 생색내느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눈도장이라도 찍어야 차기 공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지방의원들이 주군을 위해 치른 대리전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여의도행 티켓을 따내기 위해 정동영과 김성주가 얼마나 비상한 각오로 임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면 이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어떤 곳일까. 호사가들은 흔히 여의도에 가면 국회의원인 분들과 국회의원 아닌 놈들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헌법 어디에서도 신분제를 인정하는 구절을 찾을 수 없지만, 적어도 여의도에 가보면 존귀한 신분인 국회의원과 배지를 달지 않은 사람들과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다. 국회의사당에서는 물론, 식당이든, 술집이든 배지 착용 여부에 따라 대우가 성골과 6두품 만큼이나 차이가 난다는 의미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좀 치사해 보이지만 이번 현수막 정치 소동은 충분히 있을법한 일이다. 대한민국 선거를 이야기할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선거판의 여우엄창록 이다. 제2차 대전의 영웅 롤멤 장군을 일컬어사막의 여우란 별명을 붙인것을 보면 엄창록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빼어난 선거 책사라고 할만하다. 엄창록은 처음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급참모였으나 1971년 대선 직전 갑자기 사라진다. 그리고 얼마후 영남지역 전봇대 등 곳곳에 유인물이 뿌려진다. 호남인이여 단결하라영남에 빼앗긴 대통령 호남인이 찾아오자이를 본 영남인들이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불문가지다. 바야흐로 그때부터 선거에서 극심한 지역감정이 표로 분출되기 시작한다. DJ 진영에서는 이를 (여당에 포섭된)엄창록의 작품이라고 판단한다. 제39주년 518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작심발언을 했다. 그런가하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일부러 맞으러 광주에 간게 아니냐는 말까지 듣고 있다. 보수, 영남표의 결집을 노린 행보라는 거다. 급기야 황 대표는 어제 새만금 현장을 찾아 태양광사업의 부작용과 역효과를 철저하게 검증하겠다며 새만금 개발이 망가지면 그 책임은 문재인 대통령과 이 정권에 있다고 경고했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부여당과 야당 수뇌부의 착점 하나하나가 매서운 노림수로 다가온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안호영 의원의 위대한 결단
정부는 완전통합에도 재정지원 규모 밝혀라
시민예술, 무대와 삶을 잇는 다리
동학농민혁명 서훈, 왜 1차 봉기 참여자 배제하는가
남원파크, 전·현직 시장에 구상권 행사해야
표절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탈출-장민강 청명초 2학년
전북 제3금융중심지 재도전, ‘이번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