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들은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가장 상처받은 자들의 사과였다. 하지만 관객들은 생각했다. 오히려 그들은 영원히 묻힐 뻔한 대한민국의 ‘영화사’이자 ‘역사’ 앞에서 사과받아야 한다고….
33년 만이다. 1984년 불교계의 반발로 제작이 중단된 영화 <비구니> 의 부분 복원판이 공개됐다. 비구니>
<비구니> 는 출가한 여인의 번뇌, 구원을 향한 일생의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 <만다라> 가 수행자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소승적 수행’이라면 <비구니> 는 중생과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는 ‘대승적 수행’과 가깝다. 불교라는 범주 안에서 진행되지만, 결국 ‘자기 완성’의 길로 가는 수행의 어려움, 지난한 삶, 내적인 투쟁을 다룬 인생의 이야기다. 비구니> 만다라> 비구니>
연출 임권택, 촬영 정일성, 각본 송길한, 주연 김지미 등 당대 최고 영화인이 의기투합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태흥영화사의 창립작으로 원본 시나리오(장면 170개) 5분의 1 정도를 촬영했을 무렵, 불교계의 반발로 제작이 중단됐다. 이 미완성작 필름이 2013년 태흥영화사의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전주국제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이 촬영본 편집, 색 보정 등을 했다. 소리는 유실됐다.
김지미 배우는 <비구니> 를 ‘사산’한 자식에 빗대었다. 비구니>
“경제적인 피해는 회복이 되지만, 정신적인 피해는 회복이 안 된다. 임신을 했는데 자식을 못 낳고 사산했으니, 어머니 입장에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 영원히 잊히지 않을 기억이 가슴속, 머릿속에 남아있다. 다시는 후배 영화인들이 이런 아픔을 겪지 않길 바란다.” 그녀는 “제작 중단 후 방향을 잃어버리고, 죄인처럼 느껴져서 상당 기간 두문분출했다”며 “그러다 임권택 감독, 정일성 감독, 송길한 작가 그리고 나까지 패잔병 넷이 더 좋은 영화를 만들자면서 전국을 돌아다녔고 영화 <티켓> 과 <길소뜸> 이라는 작품이 탄생했다”고 회상했다. 길소뜸> 티켓>
 
    송길한 작가는 “한시절을 술로 짓이기면서 살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권력이 있다고 함부로 남의 권리나 인격을 짓밟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게 마지막 염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힘들겠지만 관객이 토막 나고 부서진 영화의 나머지 부분을 이미지로 생각해 채워나가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며 “그리고 통제받은 영화의 결과를 보고 창작의 자유가 침해받은 역사도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임권택 감독은 “오랜 세월, 영화 인생을 살면서 저 스스로도 늘 수행자의 입장이었다. 수행자의 마지막은 해탈이지만, 저는 제 영화 인생이 확실히 여물고 끝난다는 건 어렵겠다고 느낀다. 완성을 지향한다는 것, 치열하게 열심히 해본다는 것, 그 자체가 온전히 잘 살아낸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제 안에 쌓인 부끄러움이 제 상처를 건드릴 것 같아서 <비구니> 라는 영화를 찍다 만 것이 세상으로부터 감쪽같이 잊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이제는 제가 상처 드린 많은 분에게 사과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는 데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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