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가 부실한데 그 위에 탄탄한 건물을 세우는 일이 가능할까. 기초가 흔들리면 이를 응용하는 일은 쉽게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기초의학과 임상의학도 마찬가지다.
한 나라의 의학수준은 기초의학의 충실한 바탕 위에서 발달할 수 있다. 해부학 또는 생리학적인 정확한 지식없이는 병태생리, 병증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의학교육이 도제교육에서 강단교육으로 변화되면서 기초와 임상의학이 편의상 구분됐고, 눈에 보이는 실적 위주의 사회분위기에 힘입어(?) 기초의학 연구층은 갈수록 빈약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연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 요소로 천재급 연구자와 전통있는 실험실, 위대한 스승을 꼽는다.
청진기와 흰가운 대신 실험대 앞에서 실험에 열중하는 기초의학 연구자들.도내 의과대학과 한의과대학의 기초의학·기초한의학을 아우르는 동서 기초의학 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나.
도내 대학에는 세계적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는 학자도 있고, 권위 있는 학술상을 수상한 학자도 있다.
권위를 인정받는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것을 인생의 최고 목표로 삼고, 자기 멋에 겨워 사는 동서기초의학 분야 전북사람들을 매주 이 난을 통해 만나본다. 먼저 동서 기초의학에 관한 총론을 통해 기초의학의 맥을 짚어본다.
▲기초의학이란
내과학·소아과학·외과학 등 환자진료를 행하는데 주로 요구되는 지식과 경험의 체계를 묶어서 ‘임상의학(clinical medicine)’ 또는 '임상의학분야'라고 칭한다. 이에 반해 기초의학(academic medicine)은 임상의학에 대응하는 명칭으로, 주로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학문적인 입장에서 연구·교육하는 분야를 일컫는다.
이 영역에 속한 과목들이 환자진료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비교적 생소한 분야로 여겨진다.
이 기초의학은 인간의 생명현상이 나타내는 유기적 질서를 파악하는 몫을 담당한다. 즉 정상과 예외 또는 건강과 병태의 원인과 결과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제공한다.
▲기초와 임상의학 구분은
편의상의 일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이라는 2개의 영역으로 의학을 구별하는 것은 현실적 필요에 따른 당위가 아니라 단순히 관행적 구분에 불과하다. 의학 및 의술의 전수방법이 옛날의 도제교육에서 강단교육으로 바뀌면서 교과과정에 따라 가르쳐야 할 과목의 순서가 정해졌는데, 현재와 같은 4년의 학제(의예과 2년을 제외한)에서 처음 2년 동안 강의되는 과목들이 나중에 배우는 진료과목들을 이해하는데 기초가 되는 내용들이라는 점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은 손과 발처럼 상호보완의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임상의학이라 해도 그 뿌리를 기초의학에 두고 있는 만큼 기초의학이 없는 임상의학은 상상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의과대학 교수로서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도 실제 의술의 시행현장을 체험하는 것이 연구 및 학생교육에 도움이 된다. 임상의학 교수들 역시 적절한 수준의 기초의학 연구활동을 경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떤 분야를 연구하나
기초의학은 여러 전공분야로 분류된다. 전통적인 구분은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 병리학, 미생물학, 예방의학, 약리학, 기생충학, 법의학, 의사학 등으로 의과대학에서 운영하는 교과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이는 인체의 정상적인 형태 또는 기능을 탐구하는 분야(해부학, 생리학), 병적인 상태 또는 사망원인 등을 형태학적으로 탐구하는 분야(병리학, 법의학), 질병발생의 원인이 되는 생물체와 이에 대한 인체의 면역기전을 탐구하는 분야(미생물학, 면역학), 질병발생 과정에 관여하는 각종 요인을 밝혀 예방수단을 탐구하는 분야(예방의학), 약물의 인체반응 및 그 효과를 탐구하는 분야(약리학)로 구분하는 것으로 각각 독립적으로 기능한다.
최근 이들 기초학문들이 지속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연구대상과 수준이 보다 전문화하여 독자적인 세부 전공분야가 생겨나거나, 주변의 타 분야와 통합돼 새로운 전공분야로 진화하는 등 다양한 변화가 잇따르고 있다. 분자생물학, 생물기술공학, 인체유전자학, 알레르기 및 면역학, 의용생체공학, 생물리학, 임상약리학, 임상역학, 환경의학, 중독학 등이 바로 그것이다.
▲도내 의과대학 교육체제
기초의학의 주요한 기능은 의학교육, 진리탐구를 위한 연구, 학문계승세대의 양성, 임상의학연구의 지원 등으로, ‘연구와 교육’에 있다.
기초의학 교수들은 환자진료를 하지 않는 특성 때문에 의과대학 출신이 아닌 관련 전공의 박사학위자가 기초의학 교수를 역임하는 예도 간혹 있다. 그러나 대부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획득한 다음, 조교 또는 연구원으로서 4 ∼5년간의 훈련과정(대개 이 시기에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침)을 거친 후 교수로 임용된다.
최근에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장래 기초의학 교수가 되기 위한 진로를 선택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현저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가장 큰 이유는 임상의학은 4 ∼5년 정도의 수련기간이 지나면 전문의로서 독자적인 진료활동을 펼칠 수 있는데 반해, 기초의학자는 최소한 10년 이상의 비교적 긴 시간동안 연마해야 비로소 소기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학문자체가 전세계와 경쟁해야만 하는데다 대성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므로 부담이 크고, 의사이면서도 기초의학자는 동료의사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열악한 입장이라는 것 그리고 현실적으로 의과대학 교수직을 제외하면 진출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는 점 등이 젊은이들을 기초의학분야에 더 이상 잡아두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인프라 구축이 우선돼야
기초의학이 중심이 된 생명과학이 갖는 잠재적인 경제효과는 최근 게놈프로젝트로 대표되는 분자생물학 또는 분자유전학의 눈부신 발달에 힘입어 현재화되고 있다. 한국의 기초의학 수준은 세계수준에 비해 턱없이 미흡한 실정이다.
그렇지만 도내 대학 기초의학과 한의학 교수들은 이 분야야말로 생명의 근원적 신비에 관한 도전적인 호기심을 실험적·논리적 증거로 충족시킴으로써 강한 희열을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영역이라고 말한다.
미국이 현대의학의 각 분야에서 전세계를 압도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지난 세기 동안 의학교육환경 및 실험실 시스템에 집중적인 투자를 함으로써 기초의학을 견고히 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기초의학이 갖는 현실적 중요성을 인식한 가운데 체계적인 투자를 비롯한 다양한 육성책 등의 과학정책을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보다 많은 의학도들이 열정과 헌신으로 기초의학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전북의 동서 기초의학, 나아가 한국의학의 밝은 미래가 기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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