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이후 불거진 ‘호남불가론’ ‘호남출신 한계론’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치적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호남지역 후보들에게 악령처럼 따라붙는 이론 아닌 이론이다.
지난해 말 한화갑 상임고문이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나서자 일각에서 제기된 것이 호남불가론인데 정동영 상임고문이 지난 16일 제주도에서 대선 경선참여를 선언하자 또다시 호남한계론이 들먹여졌다.
경선참여를 선언한 민주당의 호남출신 인사는 한화갑 정동영 상임고문과 유종근지사 세 사람이다. 한나라당의 김덕룡의원이 3월쯤 당내 경선레이스에 가세한다면 네명이 된다. 역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대열에 나선 호남이나 전북 정치인 숫자로는 최다이다.
호남불가론이나 호남한계론이 풍기는 뉴앙스나 그 배경을 놓고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을뿐더러 배알이 뒤틀린다. 인구가 적기 때문에 ‘뛰어봤자 벼룩’이라는 태생적 열성인자로 치부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잘 살지 못하고 잘 뭉치지 못한다는 등의 속설도 연상되기 때문이다.
최근엔 한술 더 떠 “현 정권은 호남향우회 정권”이라는 막말까지 나왔다. 야당의 간부라는 사람이 해댄 말이다. 자제해야 할 정치인이 오히려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부추긴 치졸한 언행을 우리는 보고 있다.
지역감정은 어느 나라나 있게 마련이다.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지역감정을 악용하기 때문이다.
특정지역의 정치인이나 특정지역을 비하함으로써 상대적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불순한 동기가 작용하기 때문인데 지독한 도그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취되는 게 대중이다. 호남불가론이 그 일환이고 야당의 막말성 호남정권 비하 발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감정은 이성과 대칭되는 말이다. 때문에 흥분과 충동의 덩어리일 수도 있다. 지역이란 말 뒤에 붙는 ‘감정’이 개인이나 집단의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끼친다면 반드시 비이성적 결과가 나오게 마련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체제와 지배구조를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지역감정이라는 이데올로기일 것이다. 대통령도 이 지역감정이라는 괴물에 의해 선택돼 왔고 따지고 보면 선출직 대부분이 지역감정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영남에서 출마했다면 도의원선거에서도 떨어졌을 것이고 김영삼 전대통령이 호남에서 출마했을 경우에도 역시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났을 것이다. 모두 비이성적 현상이다.
정치시즌은 이미 시작됐다.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치르기까지 앞으로 1년간 그 ‘잘난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은 지역감정 발언들을 쏟아낼지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21세기 정치판의 새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도 지역감정에 기댄 비이성적 언행이 판치는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처방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얕잡아 본다거나 상대적 반사이익 같은 것을 얻을 생각을 아예 못하도록 호남인들이 힘을 길러야 한다.
‘나라의 군량이 모두 호남의 창고에서 나오니 만약 호남이 없다면 국가도 없다’(國家軍儲皆皐湖南, 若無湖南是無國家)는 이충무공 전서에 나오는 글처럼 과거 호남은 풍요롭고 강력했다.
그런데 오늘날 호남은 걸고 넘어지는 대상이 돼 버렸다. 힘이 없기 때문이다. 호남인들은 왜 ‘호남불가론’ 따위의 하대발언이 나오는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 본보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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