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 정치부장
우리는 남을 칭찬하는데 인색한 편이다. 특히 떠나가는 사람의 뒤통수에 대고 비난을 퍼붓는 경우가 많다. 좁은 국토 탓일까, 아니면 시련이 많았던 탓일까.
요즘 정치판을 보고 있노라면 더욱 그렇다. 그 중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험담은 도를 넘는다.
하긴 미국 대통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은 대통령 자리를 '화려한 불행(splendid misery)'이라고 단언했다고 한다.
5년 치적 한꺼번에 매도
임기를 며칠 남기지 않은 김대중 대통령을 보면 화려한 불행이라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여기 저기서 '옹호'보다는'비난'의 소리가 더 높으니 말이다. 특히 5억불 대북송금 문제를 둘러싸고 일고 있는 비난은 그의 5년간 치적을 한꺼번에 매도하는 분위기다.
야당의원이나 메이저 신문들은 그야말로 '승냥이 떼'처럼 달라 들어 물어뜯고 야단이다. 대통령의 해명과 사과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특검제 요구는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야당으로선 새로운 정부도 걸고 넘어지고 대선 패배로 인한 내부결속도 다지는 양수겸장의 호재인데 무엇인들 못하랴.
그래서 더욱 DJ의 하산 길이 고단해 보인다. 우리의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끝이 좋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김영삼 대통령까지 모두 그랬다. 그렇다고 모두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 실패한 대통령이었다면 아마 대한민국은 지구상에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해방 이후 우리는 그래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50년전 '한국에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 장미가 피는 것과 같다'던 나라에 민주주의가 꽃피고 경제적 풍요 또한 세계 10위대를 자랑하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결코 실패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다. 국민의 수준과 대통령의 수준은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대통령의 치부를 더욱 확대하고 업적은 폄하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 듯 하다.
같은 맥락에서 DJ에 대한 평가에 우리가 너무 인색하지 않은가 한다. 외국에서는 성공한 대통령으로 후한 점수를 매기는 반면 국내에서 더 헐뜯고 야단을 떤다.
아직 DJ에 대한 평가가 섣부를지 몰라도 역사의 긴 눈으로 보면 아마 성공한 대통령으로 꼽히지 않을까 하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보기에 따라 평가가 갈리겠으나 IMF 외환위기 극복과 햇볕정책, IT분야의 인프라 구축 등은 대표적 치적으로 꼽힐 것이다. 또한 언론사 세무조사는 역대정권에서 보였던 정·언 유착의 고리를 끊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될 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IMF 위기 극복과정에서 보여준 리더십을, 침체의 늪에서 헤매고 있는 일본에게'가정교사'로 본받을 것을 권했다. 한반도 평화정착과 긴장해소를 위한 햇볕정책은 미국 부시정부의 맹공과 국내 보수파들로부터 '퍼주기'와 뒷거래라는 막말을 들으면서도 일관되게 추진되었다.
이 정책이 아니었다면 경의선·동해선이 어떻게 연결되고 금강산 육로관광이 뚫렸겠는가. 또 한 맺힌 이산가족의 재회는 가능했겠는가. 노벨상에 대한 논란도 스스로 침뱉기에 지나지 않는다.
외환위기 극복 평가해야
지난해 말 지식인 포털사이트인 이슈투데이는 1980년 이후 4명의 단임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DJ에게 53.5%로 평가했다. 이는 YS 23.5%, 전두환 17.7%, 노태우 5.3%에 비해 단연 높은 점수다. 또한 DJ를 증오에 가깝게 싫어하는 조선일보가 지난해 8월 실시한 10명의 역대 대통령·내각수반에 대한 평가에서도 DJ는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2위에 랭크되었다.
그렇다고 잘못된 인사정책으로 인한 지역감정의 심화와 친인척·측근의 부정부패까지 옹호해서는 안될 것이다. 비록 이전 정권에 비해서는 부패가 질·양면에서 덜 하다고 이의를 제기할지 몰라도 '투명성'이라는 역사의 진보에 비추어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호남인들과 소외된 자들의 절대적 지지 속에 취임했던 DJ정부도 곧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져 갈 것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지도자에게 박수를 치며 보낼 수는 없는가.
/조상진(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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