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숙 편집부국장
"입만 열었다 하면 여성인권을 말하는 여성단체가 이런 일도 하지 않고 뭐 합니까?”
며칠 전 만난 한 남성 인사는 전주시내 일부 중학교에서 여학생에게 주어지는 불평등한 합반 제도에 대해 여성단체가 왜 침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건넸다.
"여성단체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힐책 섞인 비판에 익숙해져 있던 본인으로서는 도민들이 여성단체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점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인사가 던진 질문에서 도내 여성단체가 전북지역 여성들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믿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애환 풀어주기엔 역부족
그러나 도내 여성단체를 오랫동안 지켜본 본인의 입장에서는 여성단체에 거는 도민들의 기대가 버겁게만 느껴지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직과 역량 그리고 재정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도내 대부분 여성단체들이 질곡에 놓여있는 도내 여성들의 애환을 풀어주고 그 고민을 어루만지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물론 도내 여성단체가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기에 여성 도의원이나 시의원 가운데는 여성단체장 경력을 인정받아 선출되기도 했고, 진보적 운동성을 띤 단체들의 노력으로 매매춘 여성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들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현재 전북지역 여성단체는 전북여성단체협의회(여협)와 전북여성단체연합(여연)의 양 연합체가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여성농민회 여성노조 여대생협 등 12개 회원단체와 1개 준회원단체로 구성된 전북여연은, 성매매방지법 보육조례 등 제정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전북지역 여성 현안 이슈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그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단체들은 '회원'이라는 뿌리가 없고 시군은 물론 도단위 조직조차 '특정 사업'을 위한 활동체로서의 성격이 강해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경제적인 압박과 조직력 부족이라는 과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여연이 최근 '보조금 성 프로젝트'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지면서 내부적으로도 운동의 '성격'에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전북여연에 비해 모두 18개 도단위 여성단체가 가입돼 있는 전북여협의 경우, 각 시군의 여성단체협의회도 아우르고 있는 셈이어서 그 조직이나 규모 면에서 전북여성단체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협 가입단체들은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데다 官이 주도하는 전 도민적인 행사에 자주 동원되는 등 친 관적인 성격이 두드러진다. 이들 단체에서는 젊은 여성인력을 찾아보기 어렵고, 회원들의 평균 연령이 높으며, 그 인물이 그 인물로 각종 행사에 겹치기 참가 현상을 보인다.
따라서 도내 여성들이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욕구는 무엇인지 돌아보고 발 빠르게 대처하기 보다는 봉사활동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역에서 존경받는 여성지도자를 길러내고, 역할 모델링의 통로가 되기엔 미흡한 실정이다.
그나마 전북지역에서는 자신의 시간을 쪼개면서 사회 또는 단체활동 하겠다고 나오는 여성들이 극히 적다. 농어촌 산간지역일수록 회원 자체가 없다. 그러기에 행정에서는 비록 여성문제완 거리가 먼 여성들의 소모임일지라도 보조금을 지원해주면서 까지 활동만 해달라고 하는 정도다.
보다 많은 여성들 힘이 필요
젊은 여성들은 먹고 사는데 급급해서,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여성들은 취미생활 할 시간도 빠듯한데 뭐하려 골치 아프게 단체활동을 하느냐면서, 또 지역운동에 관심 있는 여성들 가운데는 기존 여성단체와 취향이 맞지 않아서 혹은 괜히 이름이 인구에 회자될 필요가 없어서 등 이래저래 이유를 대면서 여성단체 활동을 꺼린다.
직접 일선에서 뛰지 않더라도 후원금을 낸다든지, 캠페인에 동참한다든지 등으로 단체에 힘을 보탠다면 도내 여성단체들의 역량이 커질텐데. 단체에 한방울의 땀도 보태지 않으면서 자신이, 딸들이 더 잘 살게 되기만을 바라는 것은 무임 승차하려는 심산이 아닐까.
도내 여성단체가 다양하면서도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전북지역 여성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활동을 장·단기적으로 계획해서 실천할 수 있으려면 보다 많은 여성들의 힘이 필요하다. 여성단체는 여성지도자가 발굴되고 훈련돼 공적 영역에 진출하고 여성의 지도력이 사회발전에 통합해 들어가는 좋은 통로인 것이다.
/허명숙(본사 특집여성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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