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 익산 태창 메리야스 초대 노조위원장에 당선돼 전북지역 최초로 민주노조를 설립하고 줄곧 노동현장에 몸바쳐 오다 서른 여섯 나이에 숨진 고 박복실을 노동계와 여성계는 잊지 못한다.
이른바 공순이라 불리었던 미혼 여성노동자들이 산업인력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70∼80년대에 민주노조 운동을 주도, 전북지역 여성 및 민주화 운동의 초석이 된 인물인 박복실.
블랙 리스트에 올라 힘든 생활을 지내다가 위암으로 숨져가면서도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후배들을, 노동운동 일선에서 뛰는 후배들을 염려했다.
박복실(1958∼1992)은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던 익산공단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와 부당한 인권침해 현장에 늘 자리를 함께 했다.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즉 섬유와 화학 식품 공장이 집중된 익산공단,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섬유공장인 태창메리야스에서 청춘을 불살랐던 그는, 도내 노조 설립과 운영을 지원하고 노동운동을 이끌면서 노동자들의 큰언니 역을 자처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세례명 요안나가 잔다르크라는 사실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잔다르크와 같은 삶을 살고 싶어했던 그녀는 그 뜻대로 불꽃 같은 생애를 보냈다.
58년 인천에서 태어나 62년 가족과 함께 김제 용지로 이사한 박씨는 1백70㎝가 넘는 훤칠한 키에 활달한 성격으로 태권도장 운영이 꿈이던 전형적인 농촌 소녀였다. 하지만 산업화 도시화의 물결이 고향마을까지 밀려들면서 농촌 탈출을 꿈꾼 그녀는 79년 익산공단 내 위치한 태창메리야스에 취직, 여공생활을 시작했다.
81년 당시 태창메리야스에는 모두 7백50명의 종업원이 일하고 있었으며,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한달 임금이 신입사원은 5만7천원이었고, 6∼7년 경력자는 9만원을 넘지 못한 열악한 조건이었다. 그나마 지급 기한을 넘기기 일쑤였고 며칠씩 야근을 시키면서도 약속했던 상여금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저임금 보다도 더 참기 어려운 것은 어린 여성노동자라고 무시하고 폭행을 일삼는 인격적인 모욕.
자신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불만을 품고 있던 박씨는 가톨릭노동청년회 활동을 통해 노동운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으며, 81년 2월 태창섬유 노조위원장에 선출됐다. 사측의 부당한 대우를 개선하고 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권리를 인식하고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이 먼저 단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도내 최초의 민주노조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노조탄압이 기세를 떨치던 82년 5월, 회사 내에서 소란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간부 7명과 함께 해고됐고, 출근투쟁 단식농성을 하며 복직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익산 광전자, 원일택시, 군산 경성고무 등에 입사했으나 블랙리스트에 올라 무려 7차례나 해고를 당하는 일이 반복됐다.
87년부터는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도내 민주노조 건설을 추진, 지원하며 전주노동자의 집과 전북노동조합연합회(전북노련) 지도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활동과정에서 누적된 피로와 계속된 단신 농성 등으로 위암을 얻어 한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92년 3월11일 36세의 꽃다운 생을 마감했다. 박씨는 8개월에 걸친 고통스런 투병과정 중에도 신부님들이 권하는 진통제를 거절하는 등 강인한 의지와 신앙심을 보였는가 하면 자신보다는 후배들 걱정에 눈물 짓곤 했다고 전해진다.
박복실과 함께 노동운동을 벌여온 박영숙 전북여성노동자회 전 회장은 "언니는 병상에 누워서도 '할일이 많은데 먼저 가서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들려줬다.
그가 몸 담았던 전주 및 익산 군산노동자의 집과 천주교전주교구는 2002년3월11일 전주가톨릭노동자센터에서 제 10주기 고 박복실 요안나 추모 미사를 가졌으며, 2001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은 박복실을 천주교 열사로 선정했다.
이들은 박 열사의 투쟁이 역사적으로 재조명되고 명예회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추진 중이다.
전북지역 노동운동의 살아있는 역사, 박복실은 현재 완주군 소양 천주교 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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