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켜진 성매매 집결지(上)...군산 대명동 성매매 성업 '6년전 화재참사 무색'
오는 23일로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지 2년째를 맞는다. 이 법이 제정되는데에는 지난 2002년 14명의 꽃다운 젊음여성을 앗아간 군산 개복동 화재와 5명이 희생된 2000년 군산 대명동 화재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젠 군산 개복동(일명 감둑)과 대명동(일명 쉬파리골목) 집창촌은 거의 사라졌지만 다른 지역의 홍등가는 여전히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더욱이 경찰의 성매매 집결지에 대한 집중 단속이후 안마시술소와 휴면텔 노래방 인터넷 채팅 등을 파고들은 변종 성매매가 활개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른바 ‘풍선효과’로 인해 우리 사회에 은밀한 성매매만 자극한 셈이다. 이에 성매매특별법 시행이후 드러난 문제점과 성매매 실상, 대책 등을 3차례에 걸쳐 진단해 본다. (편집자 주)
“술 마실 데 찾으세요.”
18일 밤 10시 군산시 대명동 쉬파리골목 어귀.
6년 전 화재로 인해 불법 성매매 업소가 가득했던 쉬파리골목으로 향하는 좁다란 통로는 이미 오래 전에 폐쇄됐다.
그러나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택시기사는 6년 전 쉬파리골목같은 집창촌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너무 쉽게 안내해 주고 있었다.
한 팀 데려갈 때마다 성매매 업소에서 3만원을 받는다는 이 택시기사는 “함께 갈 업소에는 젊은 아가씨가 17명이나 돼 얼마든지 ‘초이스’할 수 있다”고 끈질기게 일행을 설득했다.
쉬파리골목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에는 성매매업소 6곳이 문을 열고 있었다.
“서울의 미아리하고 똑같다고 보면 돼요. 두당 10만원이면 술 먹고 2차도 할 수 있고 모든 게 해결돼요.”
문을 연 업소 앞에는 어김없이 ‘삐끼’가 진을 치고 있다가 조심스레 행인들에게 접촉을 시도했다. 손님도 끌고 경찰 단속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두가지 역할이 이들 삐끼의 몫이었다.
지난 2000년 9월 19일 불법 성매매업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20대 여성 5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대명동은 이 여성들의 죽음과는 아랑곳없이 성매매가 여전히 이뤄지고 있었다.
대명동 화재 후 1년 반만을 지난 2002년 1월 29일 유흥주점에서 화재가 발생해 14명의 여성들이 숨진 군산시 개복동.
이곳은 이제 슈퍼마켓과 세탁소 등이 들어선 평범한 주택가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일부 건물에는 예전에 성매매업소들이 폐허로 남아있어 마치 숨진 여성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보존된 듯 했다.
하지만 성매매가 근절된 것은 아니었다. 잇단 화재와 경찰의 단속으로 군산에 자리 잡고 있던 성매매업주들은 인근 익산지역으로 오래전 자리를 옮겨 성매매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속칭 ‘남부지역’이라 통하는 익산시 평화동 일대는 번득이는 네온사인과 화려한 건물로 단장한 채 또 다른 대명동이 되었다.
이곳에서도 택시기사가 다가왔다.
“2명이면 25, 3명이면 35만원 이구요, 2차로 여관에 올라갈 때 대실비 1만원만 내면 됩니다.”
30대 후반의 택시기사 말 역시 군산 대명동의 택시기사와 다를 바 없었다.
최근에는 택시영업은 접어둔 채 손님 호객행위를 주 직업으로 삼은 택시기사가 꽤 있다는 얘기다.
이날 자정께 찾아간 전주시 선미촌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성업 중이었다.
‘예쁜 언니’들은 최소한의 옷차림으로 뭇 남성들을 유혹하고 있었고 술 취한 남성 몇몇은 자연스럽게 업소 안으로 발을 디뎠다.
특별법 시행 초기 성매매와의 전쟁에 나섰던 경찰의 단속이 시간이 지날수록 뜸해진 틈새를 이용, 성매매가 다시 횡행하며 꽃다운 여성들이 다시금 성매매업소로 내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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