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모(지방팀장)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란 충격 속에서 날아든 북한의 전격적인 2차 핵실험 소식. 일련의 초대형 사건 사고가 이어지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최근 겪는 심리적 정신적인 긴장감과 압박감은 전쟁을 제외하곤 아마 유사 이래 최고치가 아닌가 싶다.
온 나라와 국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란 뉴스와 함께 극도의 정신적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가운데 뒤통수를 후려치듯 불쑥 다가온 북한의 핵실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부 보수적인 인사들은 즉각"대한민국이 힘들 때 북한이 핵실험을 자행, 남남 갈등을 증폭시키려 한다"며 흥분하고 있다.
하지만 남북한이 피를 나눈 동포라는 점, 최소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 전 대통령 유가족에게 조전을 보내 사실 등에서 북한이 국상 중인 남한에 그렇게 비열하고 얄팍한 의도로 핵실험을 강행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된다.
격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핵실험에 내재된 외교적 정치적인 남북한의 현재 위치를 냉철하게 가늠해 보자. 보수 측이 주장하는 남남 갈등 부추기가 북핵의 핵심이 아니라면 북한이 핵실험을 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이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게 무엇일까.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대외 정책이 이미 짜여진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돌발 변수가 터졌다는 설명이 사리에 맞지 않을까.
그렇다면 북한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란 중대한 변수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이미 계획된 프로그램을 수정하는 게 마땅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자연스레 이어질 수 있다. 북핵에 비교적 정통한 인사들과 관련 학자들은 이미 진행 중인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기 힘든 기술적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지만 일반인들은 이에 대한 과학적 판단 근거가 취약하다.
하지만 두가지 초대형 사건 사이에서 유추되는 남북 관계의 현주소를 부인하기 힘들다. 북한이 대외적 주요 변수의 첫 번째로 꼽는 대상이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 장례기간의 핵실험은 남북 관계에 전혀 실익이 없다는 것을 북한이 모를 리 없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 강행으로 상당히 얻은 게 많았다는 분석이 제기돼 왔다. 당시 유엔 안보리가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며 강경 대응을 외쳤지만, 미국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 결국 6자 회담 개최는 핵실험 2개월만에 이뤄졌다.
북한은 그때의 학습효과를 다시 떠올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이번 핵실험은 그런 가능성에서 진행됐다는 설명에 큰 무리는 없다. 더욱이 현 상황은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 여기자 2명에 대한 재판이 내달 4일로 예정된 시점이기도 하다. 유엔의 움직임도 1차 핵실험 때와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잇단 초대형 사건은 남북한 관계의 한 축인자 당사자인 남한이 철저히 소외되었다는 엄연한 현실을 웅변해 주는 듯해 그렇잖아도 슬픔의 심연을 헤매는 국민들의 자존심마저 여지없이 짓밟는다.
한반도를 동강내고 살아가는 남북한이 이젠 서로가 상대방을 무시한 채 머나먼 타국과 선을 연결시키는 형국으로 외교 전선을 진행시킨다는 사실이 또 다른 슬픔을 터뜨린다.
/김경모(지방팀장)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