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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窓] 머머리즘과 헌재 판결 - 김성중

김성중(정치팀장)

산을 향한 인간의 도전은 그칠 줄 모른다. 얼마 전 전북출신 여성 산악인 고미영 씨가 조난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를 두고 등정주의(登頂主義:정상을 목표로 가용 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해 쉬운 코스를 단기간에 오르는 방식)가 빚어낸 참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고산을 오르는 방식에는 이 같은 등정주의와 달리 얼마나 어려운 도전 과정을 거치느냐에 방점을 찍는 등로주의(登路主義)가 있다. 등로주의는 영국의 등반가 알버트 프레드릭 머머리가 1880년 주창한 등반 사상으로 가이드를 앞세워 쉬운 루트를 선택해 정상에 오르는 기존 방식을 거부한다. 주창자의 이름을 따 '머머리즘'으로 명명된 등로주의는 험준한 암릉과 암벽 등 보다 위험한 신 루트를 타인과 장비의 도움을 최소화해 등반하는 데 가치를 둔다.

 

극단적으로 비유하면 등정주의는 수단, 방법에 개의치 않고 정상을 정복하는 결과·목표지향적 등반인데 반해 머머리즘은 전인미답의 난코스를 자력으로 개척하고 도전하면서 그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는 등반이다.

 

지난 달 29일 있은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판결 후유증이 극심하다. 헌재는 이날 '법안 처리 절차는 위법했지만 법의 효력은 유효'하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야당의 의결·표결권한 침해, 일사부재의 원칙 위배, 대리·재투표 등 위법을 인정해놓고도 그 같은 판결을 내린 헌재를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판결 이후 '대리시험은 위법이지만 합격은 유효하다', '도박은 불법이지만 딴 돈은 가져도 된다', '위조지폐가 분명하지만 화폐로 인정해야 한다', '술 먹고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등 헌재를 조롱하는 댓글 패러디가 봇물을 이룬다.

 

이는 '절차가 위법이면 결과도 당연히 위법이어야 맞다'고 생각하는 국민적 법감정의 표현이다. 실제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59.8%가 '언론법을 재개정해야 한다'고 대답했고 '헌재 결정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도 60.4%나 됐다. 하지만 정부 여당은 요지부동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우리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가르침은 삶에 있어서 '목표보다는 절차, 결과보다는 과정이 훨씬 소중하다'는 의미와 함께 절차의 적법성을 최고 가치로 삼는 민주주의의 이론적 토대다 된다.

 

그래서다. 헌재가 밝힌 '절차 위법'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헌재 판단은 국회가 파생시킨 절차 위법을 국회 스스로가 개선해야 한다는 주문이기도 하다. 여야가 미디어법 재개정 논의를 시작해야 할 근거가 여기에 있다.

 

위법한 절차를 처음으로 되돌리기는 불가능하지만 여야가 새롭게 적법 절차를 거쳐 흠결이 생긴 법률의 효력을 다시 완성할 수는 있다. 지난 1997년 헌재가 노동법 권한쟁의심판 청구사건에서 권한침해판정을 내렸으나 여야가 노동법 재개정을 논의한 뒤 재입법한 사례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의원직을 던진 정세균, 천정배, 최문순, 장세환 의원은 사퇴를 철회하고 국회에 돌아가야 맞다. 왜냐면 미디어법 처리에 대한 이들의 반발이 옳았음이 헌재의 '절차 위법' 판단에서 역설적으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앞에 놓인 제1과제는 절차의 위법을 바로잡는 일이다.

 

헌재 판결이 일으킨 혼돈 정국을 벗어날 나침반은 절차와 과정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민주주의의 정신, 머머리즘에 있다.

 

/김성중(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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