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철호(익산본부장)
고려 무신 정권시대 백운거사 이규보(李奎報) 선생의 시 한수가 생각난다.
"인간사 자질구레한 일 탈도 많아서/ 움직였다 하면 마음에 어긋나 뜻대로 되는 게 없구나/ 풍년 시절에 집안 가난해 마누라는 노상 업신여기고/ 말년에 봉급 많으니 기생들만 따르려 한다/…/ 목에 탈나 못 마실 때 깊은 술잔 만나고/ 오랜 병 낫고 보면 이웃에 의원이 있네."(違心).
세상 일이란 만만한게 단 하나도 없다.
얼핏 간단하게 넘어갈 일도 하다 보면 의외의 복병을 만나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어 엉뚱한 결말이 만들어지고 만다.
예전에도 그러 했으니 복잡 다단한 현대사회에서는 일이 얼마나 더 꼬여가겠는가.
가지가지가 예상하거나 의도한 바와 반대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게 우리들이 요즘사는 세상사다.
중국 송나라 때 시인 후산거사 진사도(陳師道) 역시 만만찮은 세상사를 빗대어 비슷한 한 편의 절구(絶句)를 남겼다.
"마음을 상쾌하게 하는 책은 쉽게 읽히고/ 아름다운 나그네는 약속해도 오지 않네/ 세상 일 어긋남은 언제나 이와 같아/ 백 년 인생에 좋은 심회 몇 번이나 열어 젖힐까."
정말 우리네 인생을 돌이켜보면 좋았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으며, 즐거웠던 시절 또한 얼마나 오래였던가.
정말 세상사는 탈이 많고 말도 많은 만만치않은 세상사임이 분명한것 같다.
지난 20일 군산지원 제1형사부는 승진 사례비를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前 익산시장 비서실장 이 모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서 뇌물을 건냈다는 박모 피고인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검찰이 앞서 이 전 실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6천만원, 추징금 3천만원을 구형했던 형량에 비춰볼때 재판부의 이날 무죄 선고는 이 전실장에 있어 명예를 회복할수 있는 크나큰 선물임이 분명했다.
이 전실장을 둘러싼 검찰 수사에서 이날의 선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세상 일이 결코 간단치 않음을 엿보았다.
특히나 선출직 시장을 보필하는 자리에 있는 비서실장이란 직책은 시장 못지않게 만만찮은 온갖 세상사를 견뎌내야하는 자리로 모든 행동과 처신에 있어 보다 분명하고 정확해야 한다는것을 새삼 일깨워 줬다.
이는 시장이란 자리가 치열한 선거전선을 통해 일궈낸 자리이기 때문이다.
권력이란 냉혹한것이다.
그만큼 권력의 정점을 향한 끊임없는 감시와 모략이 늘상 존재하기에 시장을 보필하는 공신들 역시 처신에 각별히 신경썼어야 했다.
권력은 양날의 칼과 같다.
권력 싸움에서 이긴 자의 손에 그 칼이 주어지는 순간부터 만인의 칼날 같은 주목은 시작된다.
모든 견제와 감시, 질시와 모략이 권력자를 겨냥해 관습적으로 맴돈다는 세상사 이치를 일찌감치 깨달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쪼록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시장의 주변을 맴도는 공신(功臣)들은 다시한번 마음자세를 가다듬고 그 어떤 구설수에도 휘말리지 않는 올바른 처신에 전념해주길 바란다.
진의가 왜곡돼 예기치 않은 역풍을 맞았다고 세상사를 한탄하고 푸념하기에 앞서 세상이 달라진 기준으로 권력자와 그 주위를 맴도는 공신들을 지켜본다는 만만찮은 세상사를 부디 직시하여 앞으로 모든 행동에 조심하길 거듭 당부한다.
/엄철호(익산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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