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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窓] 정치와 이미지 - 이성원

이성원(문화콘텐츠팀장)

요즘에는 아침 출근길에 선거분위기를 느끼는 때가 많다. 색깔있는 옷을 차려입고 네거리에 나와서 두 손을 흔들며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이 많다. 유권자로서 제대로 대접받는 것 같아서 흐뭇하기도 하다.

 

그런데 선거사무소에 내걸린 현수막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누구를 위해 어떻게 일하겠다는 다짐과 각오보다는 특정 국회의원과의 인연을 더 강조하는 듯하다. 아니, 그렇다면 나의 표를 달라는 것도 주민을 위해, 지역을 위해 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닐까? 이런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흐뭇했던 마음이 불쾌해진다. 괜히 속아서 우쭐한 것은 아닐까….

 

현대인들은 이미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한다. 현대 정치를 이미지 정치라고도 한다. 후보자들이 모든 유권자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정책을 홍보하고 지지를 호소할 수 없으니 자신의 이미지를 내세우게 된다.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조작하고 포장한다. 교육계 선거에서도 특정 정당색깔의 옷은 이미 보편화됐고, 특정 정당과의 인연을 암시하는 듯 한 구호와 정책을 흩뿌리는가 하면, 심지어는 60~70년대 교복을 입고 나선 후보도 있다.

 

장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시뮬라크르(simulacre)는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미지화된 가상인데도 실재보다 더 생생하고 힘이 있다. 가령, 5공화국 시절에 '평화의댐'이라는 것이 있었다. 북한의 '금강산댐'에 대응해서 만들었다. 북한이 금강산댐을 터뜨려 물로 공격하면 서울에 있는 63빌딩이 40층까지 잠긴다는 등의 모형을 TV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국민을 겁박하고 성금을 갈취했다. 코흘리개들의 고사리손에 쥔 푼돈까지 빼앗아갔다. 지금이야 금강산댐의 수공(水攻) 따윈 애초부터 없었고, 평화의댐이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당시로서는 평화의댐 건설이 진실이었고 일종의 종교였다.

 

물론 후보자가 특정인과 인연이 깊다고해서 나쁠 것은 없다.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교육계 후보가 특정 정당과 조금 가깝다고해서 문제되지도 않을 듯하다. 그러나 특정인과의 인연이나 교육계 후보의 정치적 인연이 선거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이미지가 본질을 가려서는 안된다. 설사 그러한 인연이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해도 그 것은 곁가지 장식품의 역할에 그쳐야 한다.

 

선거는 축제라고 한다.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주민의 욕구가 표출되고 수렴되고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 그러나 선거때마다 투표율이 매번 높은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포기한다. 그 바탕에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누구를 뽑아도 마찬가지라는 식의 비아냥이 깔려있다. 이러한 풍토를 낳은 것도 과잉된 이미지 정치 때문이다. 말로는 정책선거를 외치면서도 이미지만을 쫓고, 근거도 희박한 가십성 소식에만 귀를 기울이고, 건전하고 온당한 비판마저도 비방 흑색선전으로 몰아붙이고, 토론과 논쟁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이미 우리 주변에 만연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뮬라크르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위력을 발휘한다. 후보자의 소신과 철학, 정책보다는 알맹이 없는 이미지만 넘쳐흐를까 우려된다.

 

/이성원(문화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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