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사회부장)
해를 넘긴 버스파업이 40일을 지나고 있다. 노사 양측이 마련한 대화창구도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운행 정상화가 늦어지는 배경에는 '불편한 진실'이 자리한다. 역설적이지만 불편한 진실에 파업 해법이 숨어 있다.
#장면 1. 버스파업 원인을 버스 기사들의 열악한 처우에서 찾는 것은 난센스다. 발단은 이렇다. 도내 버스 업계는 그동안 한국노총이 주류였다. 지난 해 6월 임금·단체협상에서 통상임금 문제가 불거졌지만 100만원 수령에 합의했다. 한노총 노조원들의 불만이 컸다. 개인별 통상임금 소송도 있었다.
민노총은 이 대목을 놓치지 않았다. 소송으로 1천~3천만원을 받아내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노조원들이 한노총에서 민노총으로 대거 말을 갈아탔다. '버스 파업'의 서곡이 울린 것이다.
#장면 2. 다수의 노조원을 확보한 민노총은 사측에 교섭을 요구했다. 이미 한노총과 임단협을 끝낸 사측은 복수노조를 인정 못한다며 거부했고 민노총은 파업 수순을 밟았다. 12월 8일, 기습 파업으로 인한 시민 불편을 염두에 둔 듯 민노총은 '버스 기사가 하루 17시간 일하고 월 150만원을 받는다'고 여론전을 폈다. 발이 묶인 시민들도 이에 공분했다.
그러나 이 전략은 '9년차 월 평균 임금 240만원, 기본 근무 일수 1달에 12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부메랑이 된다. 민심이 돌아서고 교통약자들의 아우성이 민노총을 질타했다. 이 와중에 '민노총도 교섭권이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파업 전선은 다시 뜨거워진다.
#장면 3. 올 7월 1일부터 시작되는 복수노조 시대는 교섭 주도권이 조합의 명운을 가른다. 그러려면 민노총은 경쟁 노조인 한노총 세력을 압도해야 한다. 조합원의 수적 우세는 당장 중요한 게 아니다. 노조로 인정받는 게 절체절명의 과제다.
때문에 민노총은 사측에 '기본합의서를 체결하자'고 배수진을 친다. 합의서는 복수노조 시행에서 민노총이 '교섭 대표'로 인정받는 법적 보증수표다. 합의서를 얻지 못하면 민노총은 향후 노사교섭에서 배제돼 파업은 사실상 실패하고 존재감을 잃는다.
최근 노사 회동에서 노측 관계자가 "임금 몇 푼 더 받자고 파업하는 게 아니다"고 한 말은 이번 파업의 진짜 목표가 민노총의 주도권 확보임을 웅변한다.
#장면 4. 지친 시민들은 노사가 양보해 교섭하길 원한다. 시민단체와 전주시의회도 이를 촉구했다. 법률 자문과 법원 판결이 근거다. 법리상, 논리상 맞다. 그러나 회사측은 펄쩍 뛴다. 합의서만 아니면 웬만한 요구는 들어줄 태세다. 합의서 의미는 그만큼 중요하다. 합의서에 도장찍는 순간 회사는 민노총과 교섭을 해야 한다. 회사는 강성 노조를 파트너로 삼느니 망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회사가 손해 나고 욕을 먹어도 버티는 이유다.
#장면 5. 장기 파업에 따른 시민불편 해소책이 관건으로 떠올랐다. 버스운행을 늘리면 불편은 크게 준다. 전세버스 증차와 차고지에 묶인 버스 217대를 푸는 방법이 있다. 그렇지만 둘 다 문제가 있다. 전세버스 운행도 법적 근거가 약하고 차고지 버스를 빼내는 일도 노동법 위반 소지가 있어서다.
어느 쪽의 선택도 노측에게는 치명적이다. 때문에 전주시와 전북도, 공권력의 상징인 전북경찰도 뾰족수를 내지 못한다. 행정과 단체장을 질타하는 일도 그래서 부질없다.
하지만 파업이 길어질수록 전세버스가 손님을 실어나르듯 차고지 버스도 빼내 운행해야 한다는 '공익(시민 편익) 최우선의 논리'가 힘을 얻어가고 있다.
파업은 노사에 맡기고 버스를 증차할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다.
/ 김성중(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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