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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귀농 1번지 진안숲속마을 '새울터'

화려한 도시생활 접고 흙내음 선택한 삶 "그들이 아름답다"

진안마을 주식회사 상품인 '산나물 세트' (desk@jjan.kr)

대표적인'귀농 1번지'인 진안 동향면 학선지구 숲속마을 '새울터'. 마을이 꾸려지기 이전부터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 모았으며, 그 관심은 이 곳이 열린지 2년째인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꼭, 화려한 도심생활을 접고 농촌을 택해서만은 아니다. 상당수가 기존에 해 왔던 일을 놓지 않은 채 귀농·귀촌에 녹아들고 있기 때문이다.

 

'생계형 귀농'이라든가, '은퇴자 휴양단지'라는 기존의 귀농형태를 뛰어넘는 이들만의 색다른 삶의 방식은 그래서 전국적인'롤모델'이 되고 있다.

 

진안 동향면 학선지구 숲속마을 '새울터' 전경 (desk@jjan.kr)

 

차별화 된 귀농형태도 형태지만, 새울터를 이루는 구성원 자체 또한 세간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은퇴 이후 귀농·귀촌을 하는 게 보편적이지만, 이들은 한참 일할 나이인 30~50대에 작심을 했다. 뿐만 아니라 전직도 중견간부, 만화가, 프로그램 개발자, 영화감독, 화가 등 다양하고도 화려하다.

 

귀농 4년차인 '화임이네 유정란' 대표 송영철씨가 양계장에서 달걀을 꺼내고 있다. (desk@jjan.kr)

 

서울과 경기출신이 태반인 이들 가운데에는 박사학위 소지자만도 10명이나 된다. 인텔리 그룹인 셈이다.

 

그야말로 융숭한 대접을 받던 이들이 고액 연봉과 번듯한 직장 등 화려한 삶을 뿌리치고 스스로 농촌을 선택한 데는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어하는 '생태적 귀농심리'가 자리하고 있다.

 

바쁘게 사는 도시생활 대신 적게 벌어 덜 쓰면서 흙을 밟고 사는 소박한 삶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아름답다. 그들만의 이 같은 삶의 철학은 이달 5일 하루종일 이어진 인터뷰 내내 묻어났다.

 

◆ 귀농 4년차인 송영철씨(44). 경기도 부천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했던 송씨네 가족은 귀농 가족이 모여사는 새울터에서'화음인의 환상곡'으로 통한다.

 

인터넷 블로그에 올려진 고유 네임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기도 하지만, 송씨네의 생계를 책임지는 유정란의 상표가'화임이네 유정란'이어서다.

 

현재 송씨네가 인근 농장에서 키우는 산란닭은 500여 마리. 이들 닭이 하루에 낳은 알은 대략 250개에 불과하지만, 개당 350원하는 고가인 탓에 수입은 그런대로 짭짤하다.

 

예전 금융보험업을 했을 때 벌었던 연봉 1억원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덜 버는 만큼 덜 쓰면 되죠"라는 그는 "시골에서 살다보니 교육비도 거의 안 들어가고, 1주일에 한번 생필품을 사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유가 묻어났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죠. 도시에서 살 때는 한달 카드비만도 300만원이 넘게 나왔어요. 농촌에 내려와 그 씀씀이를 줄이는 일이 그래서 큰 일이었다"고 전했다.

 

숲속마을 새울터 열리는 날 행사에서 송영선 군수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desk@jjan.kr)

그래도 사는 재미는 솔솔하다. 농촌에 적응못할까 걱정했던 둘째 딸 유선(11)이가 "도시에 나가지 않겠다"고 하면서다.

 

"얼마나 기특한 지 몰라요. 알아서 적응해주니…."

 

농촌 삶에 녹아든 그의 철학이 딸에게 먹힌 셈이다.

 

귀농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딜레마인 교육문제에 있어 그렇게 한 시름놓게 된 송씨는 "궁극적으로 '오픈마켓'을 열어 주민들이 생산한 유통루트를 구축해 내는 게 꿈"이라고 바람을 비쳤다.

 

그는 "보다 많은 유정란을 생산해 '로컬푸드'를 통해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소비자들은 손쉽게 이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정보화마을서 배운 사이버 판매 마인드가 그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귀농. 우선 잘난 척하는 것부터 버려야 해요. 그래야 괴리가 생길 수 있는 토착민과 동화될 수 있고, 그들이 '무시당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게 되죠"라며 선배로서 나름의 길을 일러줬다.

 

그러면서 "농사만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본업을 하면서 농사를 연계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2년전인 지난 2009년 새울터에 입주한 최영씨(39). 만화가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그가 귀농을 결심한 데는 농촌의 정을 나누는 포근함 때문이었다.

 

최씨의 귀농·귀촌생활은 동네 형과 2500㎡규모의 텃밭을 일구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감자만 심다가 직접 김장을 할 욕심에 배추와 무도 같이 재배하면서 농촌 삶에 스며들었다.

 

"돈 주고 사먹던 채소를 직접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데요. 그래서 내친김에 김장까지 해 봤죠. 그런대로 맛이 괜찮더라고요"라는 그의 너스레에서 어엿한 농부티가 났다.

 

뭇 사람들과의 만남이 그리운 게 문제였다. 그래서 진안한방약초센터 내에 들어선 '(사)농촌으로 가는 길' 일원이 됐다. 거기에서 그는 귀농상담과 함께 귀농관련 현장교육을 도우며 사람 냄새를 맡고 있다.

 

물론, 생계도 걱정거리 중 하나. 농사만으론 가계를 책임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일은 계속해 오던 만화가의 일뿐이었다.

 

주로 삽화를 그려 돈을 벌고는 있지만, 수입이 예전만은 못하다. 도시 사람들을 만나야 비즈니스를 하는데 그럴 여건이 못되서다. "그 것만 빼면 지금의 농촌생활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다.

 

◆ 최영씨 보다 1년 앞서 귀농한 백창혁씨(50)는 3년 전만해도 금융회사에서 잘 나가던 중견 간부였다. 서울대 영문과를 나와 증권회사에 입사, 펀드매니저를 거쳐 자산운용사의 이사를 지냈다.

 

연봉도 1억원 이상을 받았다. 귀한 대접을 받던 그가 부인과 함께 새울터로 들어온 것은 늘 쫓기던 도시생활이 싫어서였다. 영혼의 목마름을 채울 수 있는 곳은 농촌밖에 없었다.

 

20년 넘게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게 만든 요인도 바로 그 것. "50살 이후 인생의 후반전은 심신을 풀고 평화롭게 살고파 농촌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 대학 졸업후 인천에서 직장을 다녔고, 5년간 개인사업까지 했던 김오수씨(43). 농촌 삶에 녹아든 지 벌써 4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김씨는 "아이들이 밤 늦도록 학원을 뺑뺑이 도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며 "주변 환경이 비슷한 도시의 아파트에 살면서 이 같은 생활구조를 바꾸기 힘들어 농촌행을 택했다"고 귀농배경을 밝혔다.

 

이들은 4~5년 전부터 귀농운동본부와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만남을 갖고 친목을 다져왔다. 그러다 "귀농자들을 위한 전원마을을 조성하겠다"는 진안군의 제의를 받아들여 지난 2008년에 귀농을 결정했다. 전체 주민은 29세대 96명이다.

 

진안군은 마을 부지 및 도로 등 기반시설을 제공했고, 입주민들은 1억4000만~1억5000만원을 들여 100㎡ 크기의 주택을 짓고, 900㎡의 가구별 텃밭을 구입했다.

 

서울 KBS 출신인 이장 염흥수씨는 "주변의 산·들을 활용해 임산물을 가공하고, 도시 아이들을 위한 산촌 유학 프로그램도 마련하겠다"며 토착민과의 상생방안을 제시했다.

 

이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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