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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가 사는 꽃마을

편성희

정화를 보러갔다.

 

창문 가득 스며든 한 낮 햇살이 정화가 있는 곳까지 내려앉아 따스하다. 정화가 있는 곳은 꽃밭이다. 지지 않는 꽃 속에서 웃고만 있는 모습, 정화는 평소에 웃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보는 대로 웃고만 있다.

 

정화는 시고모의 고명딸이다. 내가 시집을 와서 처음 정화를 보았을 때 정화는 초등학생이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철둑 옆 어느 집에선가 고모의 늦은 딸이 되어 가난하지만 행복한 모습으로 한창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그때는 이야기 상대가 될 수 없다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새 자라서 처음으로 부모님의 말에 거역을 하면서까지 결혼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 씩씩하게 잘 사는 날은 얼마나 되었을까, 이혼이라는 것을 하고 딸 둘을 데리고 나와 온갖 고생을 할 때 우리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유일하게 나의 모든 고통을 잘도 들어주었던 정화, 나보다 열 살 쯤 어리지만 세상을 힘들게 헤쳐 나가는 모습이 어느 때는 나보다 더 어른스러워 보이고 내가 어떤 말을 하든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내 편이 되어 왜 그럴까, 하며 가벼운 탄식을 하곤 했었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정화는 그 생활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갈라져 나와 살면서 번번한 차림새를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거의 운동복 차림으로 직장을 나가고 낡은 신발위로 불거져 나온 발등을 보이기가 일쑤였을 만큼 힘든 생활을 이어갔다.

 

딸 아이 둘을 성구면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한탄을 쏟아내기도 하고 이따금씩 술 한 잔으로 자신을 위로하면서 하루하루를 그래도 잘 버텨나갔다.

 

그의 일터에서 가끔 만나 서로에게 툭툭 안부를 전하면 가슴에 내려앉아 있던 내 너울들이 쑥 벗겨져 어디론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일터에서 만나면 항상 밝은 모습으로 언니, 언니하면서 이런 저런 말을 던지곤 했었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외로움을 나는 알고 있다. 친척 누구와도 가까워 질 수가 없었고 자신의 엄마에게 조차도 말할 수 없었던 어떤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깊은 속내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그의 외로움만큼 내 외로움도 커지면 그날 저녁 정화를 찾아가면 되었다.

 

이불을 깔고 누워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는 거의 막막한 것들이었다. 누구도 만날 수 없는 늦은 밤에 마음 터놓고 오고가는 말은 간절하기도 했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별이 마당에 내려와 앉아 있는 듯 아련한 불빛이 창가에 비치고 먼 곳에서 컹컹거리며 우는 한 마리의 개는 우리를 더 쓸쓸하게 만들었다.

 

그때 마냥 힘들어 했던 시간들, 삶이 바빠서 푸념보다는 눈물 몇 방울이 전부였던 그 시절, 나보다 더 힘든 생활이었을 텐데 정화는 내 얘기를 들어주기만 하고 자신의 얘기는 미쳐 꺼내 놓지 못했었다.

 

그런 정화가 갑자기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시간을 이어주던 고리가 순식간에 풀리어 빠져나가버리고 머물렀던 자리가 순간 빈 공간이 되어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그 빈자리를 헤어진 남자가 다시 나타나 두 아이와 남겨진 모든 것을 가지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정화가 생전에 알았던 유일한 그 남자는 자신의 정당성을 드러내며 정화가 남기고 간 모든 것을 챙겨가지고 사라졌다.

 

이 모든 일은 순간에 일어났지만 나의 기억은 멈추지 않고 있다.

 

낮고 음울한 내 말을 더 들어줄 사람이 멀리 가버리고 그런 밤의 시간을 같이 보내며 창문에 와 닿는 덜컹거리는 바람소리와 멀리서 자박자박 거리며 걸어가는 낯선 사람의 발소리에 숨죽였던 모습도 이제는 기억에만 있게 되었다.

 

고모는 어제도 오늘도 그냥 온종일 정화의 모습만 보인다고 하며 만사가 귀찮다고 하신다. 그 마음을 다 아는 나는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십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을 모습인데 그것을 미리 말해 줄 수가 없다.

 

바람도 없고 햇볕이 따뜻한 날, 정화를 보러 나선다.

 

산모퉁이를 돌아 그가 있는 언덕의 집에 들어선다. 미리 열린 유리문 뒤로 활짝 핀 꽃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정화가 머문 곳 끝 유리 창문 앞에 등을 보인 낯선 남자가 멈칫하다가 조용히 빠져 나간다.

 

웃고 있는 정화의 모습 뒤로 과거가 되살아난다. 마치 지금 내가 무슨 말인가를 하면 왜 그랬대, 하면서 다시 내게 어떤 위안을 줄 것만 같다. 그것이 너무도 선명하게 현실과 부딪히면서 다가와 무슨 말로도 대신할 수가 없다.

 

남아있는 자를 향한 사진 속의 정화는 밝기만 하다.

 

이제는 다 용서했을 정화, 그 넓은 마음 안으로 저녁 햇살이 조용히 스며들고 있다.

 

 

*수필가 편성희씨는 2001년 <우리 문학> 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꽃지는 오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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