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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마중

공순혜

 

잔설이 흩뿌려지고 삭풍이 불어도 정녕 봄은 오는가 보다. 입춘 전후가 되면 그는 어김없이 고개를 내밀고 보아달라고 눈짓을 한다. 신의를 꼭 지키고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군자 같은 풍모다.

 

나는 그와 만날 때 한없는 설렘과 기쁨과 감격으로 생명의 환희를 만끽한다. 20여 년이 넘었건만 한 해도 거른 적 없이 때맞춰 가까운 우리 집 거실에서 봄 마중을 하게 만든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그는 화사한 봄차림으로 나에게 생기를 돋게 하고 우중충했던 겨울옷을 벗게 해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늘 푸른 모습으로 사시사철 내 곁에 있다. 그것은 그이가 남겨준 보물이다.

 

남겨준 이의 애틋한 정과 그리움이 더해져 아침에 눈을 뜨면 맨 먼저 인사를 건넨다. 새해가 오고 1월이 가고 2월이 되면 나는 더 눈[目]을 맞추려고 일어나자마자 베란다 문을 열고 쳐다본다. 입춘이 가까이 오면 배가 불러오다 어느 날 갑자기 고개를 쑥 내민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목을 빼고 기다린다. 사람이나 기계도 실수를 하고 고장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보물은 20년을 훨씬 넘도록 한 번도 고장이 나거나 실수를 한 적이 없다. 날짜도 어기지 않는다. 이름은 그저 붙여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꼭 이름값을 한다.

 

꽃 중의 꽃 군자란! 멀리 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일찍 봄 마중을 시켜주는 이 군자란을 나는 자식 다음으로 아낀다. 후일 쓸쓸해 할 나를 위해 정성들여 만들어 준 남편의 사랑이 묻은 이 화분은 잔설이 녹기도 전 화사한 봄빛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생명의 경이와 신비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다.

 

작년에는 며느리가 만들어준 감자 순이 올라온 유리접시와 함께 봄맞이를 했었다. 이제 며칠 지나면 설 명절이다. 올해는 며늘애가 또 어떤 봄을 가지고 올지 기다려진다. 며느리 희정이는 센스가 있다. 내가 꽃 화분을 좋아하는 걸 알고 전주에 올 때는 꼭 작은 꽃 화분 하나씩을 들고 온다. 멀리 가지 않아도 봄 마중을 하게 만들어 준 남편과 며느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맹자는 고자상에서 '사람은 자기 몸에 대해서는 어느 것이나 다 사랑한다. 어느 것이나 다 똑같이 사랑하면 기르는 것도 똑같이 한다. 잘 기르고 잘못 기름을 상고(살펴봄)하는 것이 어찌 다른 것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은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잘 가꾸어야 한다는 애정과 도리를 가르쳤다. 요즘 생명경시 풍조는 끔찍한 일들을 연출한다. 부모는 자식을 버리고 자식은 부모를 모욕하며 내치고, 인륜의 끝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무서운 세상이다.

 

뒤쪽 창문을 열어보니 작년 가을에 파종한 텃밭의 마늘 싹도 겨우내 움츠리고 있더니 봄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기지개를 켜며 파릇한 몸짓으로 곧 주인에게 성찬을 차려 주겠다고 미소를 짓는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 봄에 따뜻한 연민의 정과 생명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봄을 마중하려고 한다.

 

*수필가 공순혜씨는 2008년 〈대한문학〉 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아침 햇살 가득 번지던 그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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