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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 우는 마음

송순녀

 

제 아버지께서는 어쩌다 막걸리 한잔? 을 마셨다 하면 동네가 떠나가도록 노래를 부르며 들어오시곤 하였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께서는 차마 대문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마당가를 서성거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싶으면 "아이고, 동네 챙피해서 못살것다. 술을 쳐먹을라면 곱게 쳐드실 일이지 동네 우세는 다시키고…. 야야, 막내야. 니가 얼릉 좀 나가 보거라."

 

'칫, 엄니가 창피스러우면 나도 창피스러운 것인디. 어리다고 왜 나만 시켜쌓는대. 나도 알 것은 다 아는 나인디….'

 

뒤따라오는 누렁이에게 맥없이 화풀이를 해대며 어둑한 고샅길을 걸어 나오면 아버지의 희미한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비틀비틀 팔자걸음에 분명 앞으로 걸어오는 듯 한데 뒷걸음을 치시고, 다시 앞으로 걷다가 또 옆으로, 다시 또 뒷걸음…. 분명 걸어오는 것은 맞는데 도통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빙빙 돌고만 계셨습니다. 그러다가는 금방이라도 넘어질듯 비틀거리다가 용케 몸을 가누시며

 

"싸~랑에 약~한것~이 싸나이 마~음, 울~~지를~~말어~라~~~~~."

 

목청껏 울부짖으시다가, "아~~~아~~~아~~~아~~"에 이르러서는 목이 갈라져 쿨룩거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는 한 손으로는 광덕이네 담벼락을 짚으면서 요샛말로 오바이트를 하셨습니다. 동네 개들은 왈왈 짖어대고 고샅에서 광덕이도 나오고 길자도 나오고 오늘따라 하필이면 보름달은 밝고……. 정말로 쪽팔려 죽을 맛이었습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했던가요. 담벼락을 짚고 구토를 하시던 아버지는 지금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십니다. 이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누구인지, 정확한 제목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말이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왜 아버지께서 이 노래를 그렇게 울부짖듯 부르셔야 했는지를. 그리고 그때는 진정 몰랐습니다. '사나이 우는 마음' 이 어떠한 것인지를.

 

이제 저도 무람하게도 어른이 되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만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비록 반쪽짜리 부모 노릇으로나마 한 아이를 키우며 가장의 눈물, 사나이의 눈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데서 흘러나오는가도 알게 되었습니다.

 

평생 농부이셨던 아버지께서 살아 계시다면 지금은 백번이라도 술 마중을 나갈 터인데. 그 옛날처럼 '착하게 살아라. 베풀며 살아라. 지는 게 이기는 거란다.' 이르며 연신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어머니께서 살아 계시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착하고 어질며 베풀 줄 아는 참사람으로 잘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이만 먹은 거짓 어른이 되어 제 스스로 마음을 곧추세우며 어루만지며 다독이며 살려하니 가슴으로 피눈물을 흘릴 때 가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 슬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세상살이가 서러울수록 어른노릇 부모노릇이 너무 힘들어 부모님 무덤가에라도 찾아가 온갖 설움을 맘 놓고 쏟아내며 통곡하고 싶을 때 도 많이 있습니다.

 

저녁 예불을 하러 가는 길에 꽃샘바람이 매섭습니다. 아직도 날이 선 차가운 바람에 금방이라도 코피가 터질 것만 같습니다. 법당에 오르다 말고 뒤를 돌아봅니다. 저 멀리 푸른 보리가 넘실거리는 들녘이 한 눈에 들여 다 보입니다.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는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분들이 새삼 부럽게만 느껴집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그렇다면 이미 저는 진 사람입니다. 아마 저도 늙는 가 봅니다. 어쩌자고 저 들녘이 아닌 절간에서 보리(菩提)를 찾으려 하는 것인지 아마도 오늘은 쉬이 기도가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수필가 송순녀씨는 2004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했다. 완주 송광사에서 차(茶)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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