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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이수홍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다. 또 어머니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 부모의 아들이다. 우리 부모는 딸 둘에 아들 둘을 낳으시고, 딸·아들 순으로 질서 있게 전부 열 명을 낳으셨다. 그중에서도 나는 막둥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내 위의 누나는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났다. 내가 두 살 때 저 세상으로 갔으니까 나는 그 누나를 잘 모른다. 단 한 사람 살아계시는 내 형님은 나와 다섯 살 차이다. 그 형님은 바로 밑의 동생인 그 누나를 잘 안다. 그래서 형님은 우리가 10남매라 하고 나는 9남매라고 한다.

 

아버지는 내가 아홉 살이던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나는 9년간 함께 살았지만 내가 3살 때부터 일을 기억하고 있으니 정확하게는 6년간 같이 산 셈이다. 어머니는 26년간 함께 살았다. 그래서 어머니에 대해서는 생생한 기억들이 참 많다. 그런데 오늘은 아버지가 더 그리워진다. 아버지가 내가 대학교에 들어갈 열아홉 살 때까지만 사셨더라도 내가 대학에 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한 맺힌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말라리아라는 병으로 시달렸다. 오후가 되어 몸에 열이 나고 덜덜 떨리기 시작하면 어머니가 더 걱정을 하셨다. 말라리아는 그 시절 많이 유행했던 병이다. 어머니는 그 병을 낫게 하려고 나에게 깅계랍(키니네)이라는 약을 먹이려고 하시고 나는 그 약이 너무 써서 안 먹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면 배추김치 잎에다 싸서 주시기도 하고 약 먹은 다음에 설탕가루를 얼른 입에다 수저로 떠 넣으셨다.

 

초등학교 2학년 때다. 이른 아침 동이 트기 전에 따라오라고 하셨다. 학질을 낫게 해주시려고 그런 줄로 짐작을 했다. 이삿짐 뒤 강아지 따라가듯 졸래졸래 따라 갔더니 앞 냇가 징검다리를 건너 청년등이라는 야산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 산에는 큰 무덤과 비석이 있었다. 대낮에도 혼자 그 앞을 지나려면 간이 콩알만 해지고 오싹오싹해져서 달음질 쳐서 지나다니던 곳이다. 아버지는 나더러 그 무덤 옆 잔디에다 머리를 대고 재주를 한 바퀴 넘으면 학질이 떨어진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내가 머리를 대고 막 한 바퀴를 구르자마자, 아버지는 "귀신 나온다!"라고 외치면서 도망치듯 달음박질로 뛰어가셨다. 나는 너무도 무서워서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아버지는 거친 손마디로 내 눈물을 닦아주시고 나를 등에 업고 징검다리를 건너 집으로 갔다. 학질이라는 병이 놀라게 하면 낫는다는 속설을 믿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아버지는 다음해 겨울 위장병이 생겼다. 약도 쓰고 체를 내린다는 사람이 배를 주무르기도 했지만 낫지 않았다. 어머니와 안방을 쓰지 못하고 사랑채에서 혼자 밥도 제대로 못 드시고 무릎을 세우고 앉거나 누워 계셨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우리 집에 좀도둑이 들었다. 사랑채에 아픈 아버지만 계신다는 것을 안 좀도둑이 사랑채 앞에서 훔칠 물건을 찾는 것을 본 아버지는 기침을 해서 돌려보내셨다. 다음날 아침 그 얘기를 들은 우리 가족은 그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알 것 없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그가 누구란 걸 아시면서도 끝내 알려주지 않고 다음해 이승을 떠나셨다.

 

아버지는 말씀이 적고 퍽 조용한 분이셨다. 나도 아버지를 닮아 말이 많지 않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그런데 경찰관 생활 37년간 하면서 나이 이순을 넘기자 여자들 앞에서 수줍음도 타지 않고 말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른다. 이런 성격은 어머니를 닮았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더 많이 닮고 싶어했던 것은 아버지가 더 사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를 낳고 비록 일찍 가셨지만, 내가 그 분을 많이 닮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 전북경찰청 경정으로 정년 퇴직한 수필가 이수홍 씨는 2007년 '대한문학'으로 등단해 수필집'노래하는 산수유 '(2008),'춤추는 산수유'(2010)에 이어 '북창구 치는 산수유나무'(2012)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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