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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유감

김동수 시인

▲ * 김동수 시인은 1981년 '시문학'으로 등단. '하나의 창을 위하여' 등 6권의 시집과 '시적 발상과 창작' 등 4권의 시창작 이론서를 냈다.
지난 주말 제 24회 전북 문학상(시 부문)을 받게 되었다. 문단에 등단한 지 32년만의 일이다. 1965년 대학 1학년 때 박범신, 강상기 등과 '지하수'란 문학 동인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합치면 꽤 오랜 세월이 지난 셈이다. 근래에는 1년에 3명씩 이 상을 받게 된다. 그래서인지 근자에 와서는 후배문인들이 대부분 이 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문학상이란 게 꼭 등단 순서나 선후배를 따져 주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좁은 지역에서 고만 고만한 얼굴로 형님 동생하고 지내는 처지에, 후배들이 그것도 내 또래를 지나 저 멀리 훌쩍 지나가버리자, 이젠 설령 누가 챙겨 준다고 하더라도 후배들 뒤에 서서 나도 이 상을 받겠노라고 얼굴을 내밀기가 쉽지 않은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예기치도 않는 그 예의 '전북 문학상' 통보를 받게 된 것이다. 당황스럽고 착잡해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고 있다가 몇 주 전 전북시인상을 수상하시게 된 J선배 문인 한 분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어 몇 십 년 전, 작고하신 전북대 K 교수님께서 전북 문화상을 제자들과 한 자리에 서서 받으시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과공비례'(過恭非禮)라고 못 이긴 체 받아들이고 말았다.

 

상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마는, 상을 탔다고 해서, 그것도 남보다 먼저,탔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라고 본다. 어떻게 그 상을 받게 되었느냐가 먼저 생각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받기는 받아도 별로 고맙지 않게 생각되는 상도 있고, 또 생각지도 않았는데 주변에서 챙겨주어, 받으면서도 누군가에게 좀 미안하고 그러면서도 한편 고맙기도 한 그런 상이 있기 마련이다. 한 20년 전의 일이다. 내가 근무하던 대학에 문예창작과가 생겨 내가 그 과의 학과장이 되고 또 초대 교무처장이 되어 얼마 안 되던 날이었다. 서울에 있는 어느 문예지 발행인이 찾아와 우리 과 학생의 외삼촌인가가 된다고 했다. 연구실에 꽂혀 있는 내 시들을 읽어보더니 시집을 한 권 내주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이 정도 수준이면 제1회 문학상, 그것도 그 유명한 청록파 시인 중의 한 사람 이름의 '제 1회 문학상'을 주겠노라고 했다. 시골 학교에 있는, 그것도 문예창작과 교수인 나로서는 솔깃하지 않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날부터 열심히 시를 썼고, 쓰면서 종종 그 약속을 확인해 가면서 일 년 후에 이전의 시와 합쳐 한 권 분량의 시가 모아지자 부푼 기대감으로 원고를 올려 보냈다. 표지에 올릴 프로필 사진도 수십 여장을 찍어 그 중에 한 장을 골라 보냈고, 시집의 제목도 '산행일기'로 정하여, 발문까지 서울 모 대학 국문과 K교수께 어렵게 부탁하여 받았다. 초고를 찍어 교정본을 마무리하여 올려 보내놓고도 다시 읽어보면 볼 때마다 고칠 데가 또 생기고 또 생겨났다. 이렇게 수정에 또 수정을 거듭하다 보니 출판사에서 난색을 표명하여 그만 인쇄에 부치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시집이 집으로 배달되었는데 다시 보아도 시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시가 우선 내 마음에 들지 않는데 누가 내 시를 즐겨 읽겠는가? 도저히 그대로 시집을 세상에 내놓을 수가 없었다. 문학상에 그만 눈이 멀어 서둘러 책을 낸 게 잘 못이었다. 책 1000권을 고스란히 폐기처분하고 말았다. 하도 아쉬워 그 중 한 권은 지금도 내 서재에 꽂혀 있다. 그래서인지 이후 문학상에 대한 나의 반응은 소극적이었다.

 

준다고 해서 덥퍽 덥퍽 상을 받을 일이 아니다. 탈만한 사람이 상을 타면 상을 타는 사람도 상을 주는 사람도 또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즐겁고 기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 상을 받는 사람도 애써 상을 마련해 주는 사람도 뒤에 가서 욕을 먹게 된다. 주저리 주저리 훈장을 가슴에 달고 뽐내는 후진국 지도자들의 모습처럼, 각종 문학상을 휩쓸고 다니는 문학상 사냥꾼들도 있다. 요즘에 와선 신문사 신춘문예에까지 이런 풍조가 번지고 있어 연말만 되면 신문사마다 쫓아다니는 신종 신춘문예 사냥꾼 문인들도 등장하고 있다.

 

이번 나의 문학상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 것인지 모를 일이다. 평생을 문학의 길에 들어 이 길을 걸어왔건만 나이가 들어 그것도 상을 하도 오랜만에 타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 마냥 기뻐 할 수만 없어 무거운 마음으로 한 번 해 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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